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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an 20. 2024

언제나, 내 곁엔 내가 있었지.

나, 그리고 나와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언제나

- 모든 시간 범위에 걸쳐서.

- 때에 따라 달라짐이 없이 항상.


부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제나'를 몇 번이나 마음속에 떠올렸었다. 나도 모르게 I will always love you 란 노래 가사를 흥얼거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언제나'라고 명명할 수 있상황에 대해 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원한 사랑? 그건 껄끄러운 모래가 뒤섞여 삼킬 수 없게  침처럼 입안을 이리저리 겉돌기만 다. 그런 사랑이 어디 있겠? 결국 퉤 퉤 퉤. 언제나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 리 .   상대가 비록 자식일지라도 말이다.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 답답함이 밀려오면 '언제나'를  쓰윽 먼발치로 밀어두곤 했다. 언젠간 할 말이 생각나겠지 하면서.


낯선 곳에서 눈을 뜬 새벽, 검게 일렁이고 있는 창밖의 풍경에 화들짝  놀랐다.  저건 나무의 그림자일 뿐이야. 그러다 뜬금없이 떠올랐다. '언제나'성립하겠구나.  나무와 나무의 그림자처럼!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미우나 고우나 내가 견디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지 않은가? 그건 바로 그림자 같은 '나' 자신이었.


언제나, 내 곁엔 내가 있었지.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대상은 누구일까? 아마도 '나'일 것이다. 우리생의 모든 순간들마다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하면서 살아왔다. 죽도록 힘든 순간에도, 기뻐서 가슴이 터질  같은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나는 나와 은밀히 공모하면서 살아왔다.  또 다른 내가 그림자처럼 함께 있어 주었다.  


심리학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거창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내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때로 나를 대상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특히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에 나와의 대화는 절정으로 치닫곤 한다. 나는 지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지 말지를 가지고 삼십 분째 나와 대화를 하다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비스듬히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또 다른 나는 이런 내가 맘에 안 드는지 뾰로통해져서는 아무 말이 없다.


이렇게 와 내가 다투는 사소한 순간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 끔찍한 고독이란 내가 나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 되었을 때 들이닥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늘 속이 시끄러운 편이다. 그래서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은가 보다. 나와의 대화가 유독 진지하고 무겁게 흘러가는 때도 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그러할 것이다. 내가 나에게 기필코 답을 줘야만 하는 일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와 직관되는 굵직한 문제들. 그 앞에서 나는 최대한 공손하고 겸손하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한껏 신중하고 심각하게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으려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대상이므로. 나는 나를 외면하지도 않으려 한다. 나를 외면하는 순간 인생의 소중한 답들도 더 이상 못하게 될 테니까. 잘난 사람의 조언도 위대한 성인의 가르침도 절대적인 신의 말씀도 내 안의 내가 하는 말보다 나에게 절실하지는 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존중해야만 한다. 내가 하는 소리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더라도 일단은 경청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나와 다정한 어깨동무를 하고 눈앞의 생을 씩씩하게 헤쳐나가 보기로 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때때로 나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 파묻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세상은 온통 암흑뿐이고 고독은 뼈에 사무친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을 때이다. 나는 나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보이지 않아도 내 안 어딘가에 내가 유배당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저자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지로 의료 봉사를 떠난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의사였다. 마치 죽음에 이끌리기라도 하듯이 그는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는 곳으로만 찾아 들어갔고 사력을 다해 죽음과 맞서 싸웠다. 그러고 나서 그가 발견한 것은 자기 안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살아야만 하는 의무였다. 자신을 잃고 살았던 날들을 죽음으로 인식했다. 반면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은 날들을 진짜 삶으로 인식했다. 육신의 생사보다 절실했던, 나를 찾기 위한 그의 처절한 사투가 책을 읽는 내내 눈물겨웠다.


나는 오늘도 나와 함께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비스듬히 누워 있던 몸을 절반쯤 더 일으켜 바로 앉는다. 또 다른 내가 잘했다고 웃어준다.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한다. 글을 썼으니 밥을 먹자. 어때? 밥과 글은 내게 동격이니까! 나의 기특한 제안에 내가 박수를 친다.

알잖아.


언제나, 내 곁엔 내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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