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라는 연재를 시작한 지어느새 두 달이 넘었다. 그야말로 '문득' 떠오른 발상하나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그동안 나는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처럼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심지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절반은 부사에매달려전전긍긍할수밖에 없었다. 부사에 대해 쓰는 것은재미있고 색다른 경험이었지만한편으론무척이나 힘들고 부담스러운일이기도 했다.쓰고 싶은 걸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써온 내가 주제를정해놓고 정해진 날짜에 맞춰글을 쓰려니 울타리 안에 갇힌 야생마처럼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연재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철저히영감에 의존해 글을 쓰고 있다. '문득' 떠오르는 부사 하나를 낚아채어 '문득' 떠오르는 내 안의 이야기와 함께엮어 한 편의 글로 지어내는 것이다. 그런데이게 참 희한한 일이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않는부사의 세계를 유영하다가 느닷없이 걸려드는 부사 하나로 한 편의글을 완성해 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황홀감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나는 오늘도창작의 고통과 환희 사이를끝없이 오가며, 심폐소생술 하듯 연재의생명줄을 연장해가고있는 것이다.
나는 '문득'의 힘을 믿는다.
문득, 떠오르는 모든 것들은강렬하다.
'문득'은 다분히 충동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갑자기 떠오른생각, 느닷없이하게 되는 행동! 우리는생각지도 못했던갑작스러운일들에 '문득'이라는 표현을 붙인다. 하지만 뜬금없다고 여겨지는생각이나 행동 속에 진짜 내가 숨어있는경우도 심심찮게 많다. 나는 '문득' 떠올렸다고믿고 있지만실제로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생각했거나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문득'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새삼스럽지만 아주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모든 창작활동의 원천은 영감에서 비롯된다. 영감이야말로'문득'과 단짝이라 할 수 있다. 비단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문득'의 세계와 만나곤 한다.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뜬금없는 생각들, 맥락 없이 하게 되는 충동적인행동들,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로잡히는 감정이나 욕망들! '문득'은 도발적이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매력적이기도 하다. 사람이 모든 걸 이성적인 판단과 계획에 의해서만 한다면 기계나 컴퓨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지만심연에서 튀어나오는 뜬금없고 허황된 '문득'의 세계가, 때로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엉뚱한 '문득'의 세계가 우리를 좀 더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문제는 '문득'이 지닌 강렬함에 있다. 시작은 '문득'이었지만 어느새 덫에 걸린 듯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때가 바로 '문득'이 '항상'으로 바뀌는 순간들이다. 내겐 글쓰기가 그러했다. 어느 날 문득 글쓰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지금은 삶 자체가 되어버렸다. 문득 떠오른 그 남자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문득 떠난 여행지에서 진로가 바뀌어버릴 수도 있고, 문득 느낀 감정 때문에 지금 사는 곳을 떠나버릴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이다. 이렇게 '문득'의 힘은 그 결말을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하다.
그런데 늘 함께하는 사람들은 '문득'의 세계와 거리가 멀다.반복적으로 하는 생각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무엇이든 일상이 된 후엔 더 이상 '문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없게되는 것이다.'문득'은 전혀 보이지 않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삶의 지반을 흔들어놓는 지진과도 같다.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아무렇지도 않게 원래로 되돌아가는 사람, 갈라진 땅의 낭떠러지 밑으로추락해 버리는 사람, 이쪽 땅에서 저쪽 땅으로 가벼이 넘어가는 사람,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공포에 잠식당해 버리는 사람, 애초에 아무런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사람 등반응의 양상도천차만별일 것이다.
내가'문득' 벌어진 일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문득'이 나를 어디로데리고갈 것이며 '문득' 떠오른생각과 감정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도예측할 수가없다. '문득' 저지른 나의 행동이 인생의 미래를 파괴할지 창조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