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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Aug 08. 2024

굳이, 해야 해?

'굳이'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다.

굳이

 -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  고집을 부려 구태여.   


 '굳이'라는 부사 앞에서 사람들은 주로 이런 물음을 떠올린다. "굳이 그걸 해야 해?"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는 사람과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안 하고 마는 사람. 나는 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까?

 

 고개를 숙여 캄캄한 심연 들여다본다. 내가 '굳이?'라고 반문하던 때는 주로 언제였던가? 대체로 그 일이 별로 하고 싶지 않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경우가 많았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굳이?'라는 의문 자체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그다지 동하지 않으면서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일들 앞에서 "굳이 해야 해?"라고 반문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굳이 그렇게 해야 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체로 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해 주거나 하려던 행동을 멈추어버리곤 했다. 상대의 마음이 이미 부정의 방향으로 반쯤 기울어져 있음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그럼 세상에 '굳이' 해야 할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의 기로 앞에서 무수히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를 갈등하며 사는 것이다.


  굳이, 해야 해?

  지금 막 당신의 진심을 눈치챘어요.




 '굳이'를 들여다보던 중 가슴속에 맺혀 있던 아픈 상처 하나가 떠올랐다. 나이 마흔에 유산의 위험을 여러 번 넘기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아이 하나를 낳게 되었을 때, 엄마는 만삭인 내게 물었다. "애 낳을 때 엄마, 아빠가 굳이 가 봐야 해?"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날개가 꺾여버린 새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불과 한 시간 남짓한 거리밖에 되지 않는 친정과 병원. 부모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내어주기를 아까워하지 않던 외동딸에게 되돌아온, 서리보다 차갑고 냉정한 '굳이'.  세상에 어떤 부모가 이리도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없을까 싶었다. 언제나 당신들 편한 대로 하라면서 양보만 하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눈물 섞인 목소리로 단호히 대답했다. "부모라면 굳이 와봐야 해." 그리고 나는 '굳이' 부모님에게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무런 감동도 고마움도 없이.

 

 그때 엄마는 왜 내게 '굳이'를 물었을까?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보려 해도 도저히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귀찮음이나 불필요하다는 생각 아니면 육체적 번거로움이나 힘듦 그 이상의 것은 없었기에.  두 분 다 거동이 불편하던 때가 아니었으니 더더욱 이해하긴 곤란했다. 긁을 만큼 긁어서 더는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냄비 바닥을 들여다보는 거지처럼  굶주린 영혼이 되어 한참을 남몰래 울었다. 그 일로 '굳이'가 가까운 사람에겐 끔찍한 폭력의 칼날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엄마는 기억조차 못할 것이고 별생각 없이 물어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굳이'라는 부사 하나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말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상대에게 내면의 민낯을 끊임없이 들키며 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적나라한 진심은, 삶을 섬뜩하리만큼 외롭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굳이'는 아주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를 내포한 말이기도 하면서 억지나 강요의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긍정의 '굳이'이고 후자의 경우는 부정의 '굳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주로 어느 쪽 '굳이'를 선택하면서 살아왔을까? 그것은 결국 에 대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사람들은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굳이?'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고 그런 의심 따윈 필요 없다며 '굳이' 밀어붙이는 사람도 있다. 학교에 다니는 것, 일을 하는 것, 연애를 하는 것, 결혼을 하는 것, 아이를 낳는 것 등 인생을 세상이 정해 놓은 매뉴얼대로 착착착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 문턱마다 멈춰 서서 자문하고 망설이 사람도 있는 것이다. 굳이 둘 중 어느 쪽이었는지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이었다. 단순히 그 일들이 하기 싫다거나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반드시 내 안에서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나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굳이' 따라 걸었고 그 여정에서 부족하나마 삶의 의미도 찾아냈다. 그렇기에 인생의 굵직굵직한 장면들 속에서 '굳이' 하지 않았거나 '굳이' 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도 않는다. 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굳이'가 문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비슷비슷한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의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굳이 해야 해?'라는 반문이 마음속 소리에 그치지 않고 입 밖으로까지 뱉어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굳이' 너머의 진심을 들켜서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필요하고 귀찮아서 피하고 싶은 마음 소중한 너에 대한 마음을 등가교환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굳이 해야 해?'라는 마음이 한여름 매미 울음소리만큼이나 시끄럽게 아우성을 쳐댈지라도, '굳이'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실망, 더 나아가 절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굳이 해야 해.'라는 다짐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어야 한다. 반대로 '굳이 할 거야.'라는 고집은 잠시 내려놓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하지 않을게.'라는 배려와 수용으로 한 발짝 물러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굳이'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다. 모든 건 내 안의 진심을 드러내거나  들켜버리는 일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길...


 굳이, 해야 해?

 때로는 내 안의 '굳이'를 모두 다 보여주진 않아도 된다.

 당신의 진심이 늘 옳은 건 아니니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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