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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27. 2023

엄마를 키우는 아들의 말말말!

인생은 단순하고 투명한 공 같다

나는 아들과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날 아들과 거실 바닥에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내가 대뜸 물었다.


"아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엄마는 가지고 싶은 거 없어?"


"엄마는  욕심이 별로 없어.

갖고 싶은 것도 거의 없어 진짜로.

근데....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삶이 있거든?

그저 회사에 안 다니고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 그게 바로 욕심이야!!

원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어딨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엄마, 나는 장난감 갖고 싶은 거 밖에는 욕심이 없어."


순간 나는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네.

엄마가 진짜로 욕심이 많은 거였네.

우리 아들은 그저 사소한 장난감 갖고 싶은 게 다인데.

엄마는 인생을 엄마 마음대로 살고 싶어 했으니......"


아이에게서 욕심이 무엇인지 배운다.


© skygeeshan, 출처 Pixabay


어느 날 욕실에서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들은 초1인데 아기를 어떻게 낳는 건지 물었고 나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남자의 아기씨가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샬라샬라...)

아들은 아기씨가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는 과정보다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에 엄청 놀라워했다.

아들 머릿속엔 옷 벗은 맨몸의 창피함만이 가장 먼저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지금도 아빠 사랑해?


"그럼, 사랑하지!

옛날보다 더 사랑해.

살면 살수록 더 좋아져."


"에이...  젊은 사람들 사랑이 더 큰 거 아냐?"


"글쎄.... 사랑의 모습이 조금 변하는 거뿐이지.

엄마는 지금도 아빠를 사랑해."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던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나이 들수록 더 사랑해야 하는 게 맞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이 들면 아프니까 서로 치료해 주고 챙겨줘야 하잖아.

그러니까 더 많이 사랑해야 하는 게 맞지."


"아...

네 말이 맞구나."


아이에게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


© EddieKphoto, 출처 Pixabay


잠자리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들과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자 아들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빠, 들어오지 마. 엄마랑 단둘이 있어야 해."


"아니 왜? 아빠는 왜 같이 있으면 안 돼?"


"나는 엄마랑 둘이 살 시간이 아빠보다 짧잖아.

그러니까 단둘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


"무슨 소리야. 앞으로 평생 같이 살 건데...."


"나는 20살이 되면 어른이니 집을 나가야 하잖아.

그러니 앞으로 12년 밖에 같이 못 살아.

그때까지는 엄마랑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해.

아빠는 그 뒤로도 평생 엄마랑 같이 살 거잖아."


아이에게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 apsprudente, 출처 Unsplash


"아들은 언제까지 엄마를 이렇게 사랑해 줄 거야?"


"앞으로 계속이지. 평생....


근데 엄마는 같은 걸 왜 이렇게 자꾸 물어봐?

한 50번은 된 거 같아."


"아들,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행복하단다.

자꾸자꾸 듣고 싶어서 물어보는 거야".


"아~~~.

엄마는 내가 늘 보고 싶고 그리워?"


"그럼 엄마는 언제나 네 생각을 하지."


"엄마, 나도 늘 엄마가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빨리 만나고 싶고 그래."


"아들, 너는 엄마를 잊어버려야 해."


"잊어버려? 왜 잊어버려?"


"아예 잊으란 말이 아니라...

아들이 친구들이랑 놀 때나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처럼 진짜 재미있는 일을 할 때는 엄마를 잠시 잊어버려야 해."


"그러기 싫은데?

그럼 엄마도 회사 가면 나를 잊어버려??"


"자식과 부모는 다른 거야.

엄마는 너를 낳은 순간부터 한시도 너를 잊을 수가 없단다.

하지만 너는 엄마를 잊어버려도 돼.

그래야 네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야.

언젠가 너도 결혼을 하고 너처럼 예쁜 아이를 낳을 거잖아?

그럼 그 아이를 언제나 가슴에 품는 거야. 엄마처럼....."


아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조막만 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에게서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배운다.


© bruno_nascimento, 출처 Unsplash


이렇게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속닥거리고 있으면 남편은 부러우면서도 뿌듯한 눈길로 먼발치서 지켜보아준다. 아들과의 정서적 소통과 공감은 주로 엄마인 내 몫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들이 하는 말에 놀라고 감동하는 순간들이 많다. 무심히 던지는 듯한 말 한마디 안에 놀라운 인생의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살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하지만 생각들이 수많은 모래알처럼 서로 부딪히면서 손 안에서  스르르 빠져나갈 뿐 선명하게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럴 때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 신기하게도 아주 간단하게 문제의 답을 찾을 때가 있다.


어른들은 인생을 한없이 복잡하게만 본다. 실타래를 푼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더 헝클어 놓기도 한다. 애초에 인생은 뒤엉킨 실타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8살짜리 아이가 바라보는 인생은  동그랗고 투명한 공 같다. 그 단순함과 투명함 속에 인생의 진짜 진리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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