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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03. 2023

미니멀라이프 엄마와 맥시멈라이프 아들

정반대지만 함께 해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미니멀이 뭔지 맥시멈이 뭔지는 모르지만 명백히 맥시멈라이프를 지향하고 있다. 좀 전에 아들에게 미니멀리스트가 뭔지 아냐고 물었더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거?"하고 당당히 대답한다. 버킷리스트란 말을 어디서 들어본 모양이다. 아들은 뭐든 많을수록 클수록 좋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는 현재 아들의 소유물이 가장 다. 아들과 나는 정반대의 생활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  Pixabay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특별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책을 통해서였다. 그전엔 소유한 물건들의 양과 종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물건을 둘 공간만 있다면 얼마나 많으냐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책이 아주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모아놓은 책들이 방 한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이사 다닐 때마다 책들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집을 구할 때도 여분의 서재방이 꼭 있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책을 모시고 산 셈이었다. 이사 후엔 또 어떤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책들을 정리하는데 몇 날 며칠이 걸렸고 무거운 책을 넣다 뺐다 하느라 몸살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책은 경제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지적 재산이라 여겨 없애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십 년이 더 된 옷이라 해도 어쩌다 한 번은 입겠지 하는 마음에 선뜻 버리지 못했다. 자꾸 쌓아두니 무슨 옷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버리지 않고 보관만 했다. 게다가 지인들이 주는 옷도 많았다. 내 체구가 작다 보니 대체로 살이 쪄서 못 입게 된 옷들을 내게 주었다. 그것 역시 기쁜 마음으로 받아 열심히 모아두었다. 그게 절약이자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입지 않는 옷은 몇 년이 흘러도 입지 않았고 그저 세월의 흔적이 새겨지면서 바래고 낡기만 했.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간 내 삶의 태도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강렬한 유혹을 느끼기 시작했다. 물건을 정리하고 내가 사는 공간을 워내는 것만으로도 삶이   간결해지고 분명해진다는 말에 크게 감화되었다. 그리고 물건들이 나의  공간을 차지하고 으스대고만 있을 뿐,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설렘도 기쁨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잡함을 비워낸 단순함으로부터 내 삶 전체에 안정과 평화가 깃드리라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그래서 과감히 비움을 도전하기로 했다.

처음엔 덩어리가 큰 것들부터 시작했다. 혼수로 들인 무겁고 화려한 화장대, tv를 보지 않아 장식용이 되어버린 소파, 오래된 책들이 가득 차 있던 책장, 쓸데없이 여러 개인 수납장 등이 차례차례 우리 집에서 떠나갔다.  쓰지 않던 야외 벤치나 테이블, 자전거 등도 모두 보내 주었다. 부피가  것들부터 시작한 정리는 차츰 작은 것들로 옮겨 나갔다. 비우고 싶을 대부분 'oo마켓'의 무료드림을 이용했다. 내게 쓰임이 다 된 것들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정리하는 기준은 그게 커다란 가구든 단지 책 한 권이든 똑같았다. 건이 있는 자리를 비우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서면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처분했다. 동일한 공간에 물건이 있는 것과 여백이 생기는 것을 저울질해서 나를 더 설레고 기쁘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 처음엔 물건과 맺은 인연이나 물건에 얽힌 추억 등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그럴 땐 며칠을 더 바라보면서 판단을 유예했다. 하지만 이별을 예감했던 물건은 간이 아무리 지나결코 그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별의식을 치르듯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물건도 사람과 같다. 나와 맺은 연을 다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을 놓아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순전히 나만몫인 것이다.


가구와 책과 옷, 주방용품까지 최대한 간결하게 비우고 꼭 쓰임이 있는 것들만 남겼다. 희한한 건 비우고 비워도 비울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평소 나는 물욕이 없고 무언가를 많이 사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러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물건들이 왜 필요했으며 왜 이렇게 오래 소유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했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의 경우, 자신의 짐을  개의 가방에 다 넣을 수 있을 만큼 줄이기도 한다. 거의 수도자와 같은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정도는 못 되더라도 몇 년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결과 삶이 꽤 간결해졌음은 자부한다.


이런 나의 지향과 딱 반대로만 가는 존재가 있으니 그는 바로 나의 아들이다. 신랑과 내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물욕과 소유욕이 넘쳐나는 아들은 장난감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논다. 물론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마음에 들면 과자 포장지 한 개 조차도 버리지 않고 수납장에 고이 넣어둔다. 아무리 오래된 장난감이라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 꼴을 꾹꾹 참고 보아주다가도 가끔은 아들과 전쟁을 선포하는 날이 있다. 수납장들이 장난감을 다 수용하지 못해 급기야 토해내기 시작하는 날이 그런 날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엄마의 정리와 비움을 반복적으로 보아와서 그런지, 가끔씩은 어릴 적 장난감들 중 친척동생 줄 것을 추려내기도 하고 버려야 할 건 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엔 여전히 아들의 물건은 과부하고 한도 초과다.


출처  Pixabay


그럼에도 아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권유는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뭔가 시답잖아 보이는 종이 한쪽을 버리려 해도 아이에게 의사를 물어봐야 한다. 퇴짜 맞으면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니 한쪽에선 열심히 비우고 한쪽에선 악착같이 모으는 양극단의 삶이 집안공존하게 되었다. 길거리의 돌멩이 하나도 가져다 보관해 놓아들은 소유욕이 큰 편이고 소유함으로써 얻는 행복도 크다. 그 행복이 나쁘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아들이 아직 어려서일 수도 있고 그냥 타고난 욕심의 총량이 큰 아이일 수도 있다. 크면서 확 달라질 수도 있고 이대로 맥시멈 라이프를 계속해서 즐기며 살 수도 있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이가 선택할 아이의 삶이다.


다만 소유욕이 지나친 물욕으로 치닫지 않게 적당히 가르칠 필요는 느낀다. 우리 집 아이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장난감 천국에 살고 있다. 어른들의 돈벌이 욕심에 휘말려 아이들 모두 장난감 감옥에 갇혀버린 건 아닌가 싶어 속상하기도 하다. 마트에 가보면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장난감이 쏟아져 나오고 장난감의 종류 또한 어마어마하다. 아이의 소유욕만 탓하기에는 오늘날 사회는 탐욕을 기르기에 최적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나 같은 어른이야 문제점을 통찰하고 삶을 올곧게 지키려는 의지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아이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내가 아들에게 아무리 설득력 있게 말을 해도  아이의 눈은 번쩍번쩍하고 있는 신상 포켓몬스터 카드에 이미 붙박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그로부터 얻은 정신적, 경제적 장점이 아무리 많다 해도 아들에겐 그저 소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엄마로서 나는 아이의 행복을 망치지 않는 선에서 이따금 한 번씩 권유하고 설득해 볼 뿐이다. 장난감도 없고 책도 없는 오지에 산다 한들 인간의 소유욕이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돌멩이나 조개껍데기라도 모아서 소유하려 들지 않을까? 살면서 나의 소유욕과 아들의 소유욕이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질 날은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들이 한 집에 사는 동안은 늘 많은 공간을 자신의 물건으로 채우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 엄마와 맥시멈라이프 아들은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평화로이 공존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우선 나의 잔소리부터 좀 줄여야 할 텐데....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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