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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순 Jun 19. 2024

보톡스보단 외국어

중년덕후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8. 우리는 서로가 이방인이다


여행을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실제로 있다) 나에겐 여행은 인생의 로망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전국 일주를 하다시피 많이 쏘다녔다. 휴전선 아래에 좋다고 하는 곳은 주말이든 방학이든 기름값 아끼지 않고 도장을 찍었다. 덕분에 큰 아이는 여행을 좋아하고 낭만을 추구하며 산다. 엄마의 유전자를 다분히 물려받은 셈이다. 해외여행을 싫어하는 남편 덕에 나홀로 짬짬히 배낭을 달랑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내 언어생활 덕에 그렇게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부러움 반 질투 반을 섞어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다시피 여행에 언어란 그리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언어를 완벽히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분의 취향이 바뀌는 건 아니다. 무조건 '언어 = 여행모드'가 공식처럼 성립되지 않는다. 굳이 말한다면 여행은 '용기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비빔밥 위에 '언어'라는 계란프라이를 얹은 상차림이다.


내가 막연히 기대하는 여행에 대한 로망은 '이방인'의 페르소나를 써 보는 것이다. 어쩌면 떠나지 않고도 나는 늘 이방인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기꺼이 섞이는 데 자신이 없고, 달갑지 않은 종이다. 사람들 틈에서도 나만의 방을 지어놓고 모노드라마를 한다. 고로 내겐 홀로 떠난다는 것에 특별히 용기가 필요치 않다.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이방인다운 가면을 쓴 나를 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십여 년 전 홀로 일주일 가량 유럽여행을 갔다. 동경해왔던 유럽 땅을 밟아 본다는 설렘과 함께 살짝 두려움도 있었다. 방문할 나라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프랑스와 이태리였기 때문이었다. 불어의 불자도 모르고 이태리어의 이자도 몰랐다.(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이태리에 비해 파리 일정은 상대적으로 짧은 2박3일이었는데 지금도 그 짧은 여정을 생각하면 아쉽다. 첫날을 보내고 이틀째 호기롭게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것도 잠깐, 표지판이며 간판들을 보니 까막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엄습하며 십이지장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어떡하나. 발음을 할 줄 알아야지 단어로라도 물을텐데.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K 아줌마의 본능을 살리기로 결심했다.


오가는 젊은이들을 그냥 보내며 기다리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성을 포착했다. 파리의 지하철은 개미굴처럼 좁고 복잡했다. 널찍널찍한 K 지하철을 떠올리며 멘붕이 왔다. 007 가방을 든 코트 차림의 남자에게 돌진했다. 파리 지도를 들이대며 손가락으로 내가 가려는 동그라미 표시를 가리키며 영어로 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랑스인들은(여기선 보통의 프랑스인이리라)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완벽한 영어가 필요없다. 그는 나의 간단한 영어에도 당황하고 수줍어했다. 바쁜데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나와 동행하자는 몸짓을 했다. 영어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란! 그것도 이토록 유명하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황당했지만 서로가 이방인인 두 남녀는 인간에 대한 예의로 소통을 했다. 그도(파리지엔인 듯했지만) 파리 지하철 노선을 잘 몰랐다. 건너갔다 되돌아왔다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반복하고 난 후 급기야 지나가는 두 남자를 붙잡았다. 무슨 코메딘가. 합세한 남자들은 미지의 길을 개척하듯 똑같은 루트를 반복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개미굴을 따라 드나들며 잔뜩 껴입은 겨울 파카 아래비지땀이 흘렀다. 


마침내 이방인들은 성공했다. 세 명의 남자 중 하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큰 일 해냈다. 속으로 특급칭찬을 퍼부으며 난 입꼬리만 올린 채 땡큐만 연발했다. 파리는 내가 꿈꿔왔고 예상했던 그대로 아름다웠다. 그 도시에선 그냥 걷다가 서서 강 위의 다리를 바라보거나, 노천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만 봐도 시간이 멈추었다. 하지만 십 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더욱 내 기억을 고급지게 하는 추억은 그 세 명의 남자와 나란 이방인 사이의 시간이었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마음과 진심이 내 짧았던 파리의 시간을 영원히 아름답게 저장했다.


우리는 어차피 이방인이다. 언어생활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 사실을 간과한다. 완벽해야하며, 원어민이 되어야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수줍어도 내 진심을 다하면 된다. 프랑스인들은 자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할지도 모르겠지만) 반평생 영어만을 해온 나 또한 부지불식간에 언어 사대주의에 쩔어 있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내 모국어가 이리도 아름다운지 정교한지 온몸으로 알아가고 있다. 더불어 글을 쓰면 쓸수록 무지한 나도 알아가고 있다.


우리의 시간은 언어로 시작해 언어로 끝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언어를 매일매일 갈고 닦으며 성장해간다. 우린 하나라지만 동시에 이방인이다. 결국 나를 대면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낯선 곳에서 마주친 그도, 나도 이방인일 뿐이다. 언어란 신기하지만 엄마의 품처럼 너그럽기도 해서 형식이란 장벽마저 무너뜨릴 수도 있다. 늘 넉넉하고 자유로운 마음의 방을 만들어 두고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오늘도 해 나간다.


#파리 #이방인 #언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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