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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Nov 19. 2023

행복한 백수가 얼떨결에 개인사업자가 되었다

올해 초, 불안함에 휩쓸려서 금방 일을 시작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이후로 쭉 일을 쉬고 있었다. 그 전까지는 회사가 잘 맞지 않아도 놀고 있다는 불안감에 길게 쉬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이미 꽤 늦게 낮은 학점으로 졸업을 해서 마이너스 요소가 있었고, 일에 대한 자존감도 낮았으며, 내게 맞지 않는 곳에서 버틸 수 없는 성격이었다. 그러니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애쓴다고 금방 안정을 찾지도 못할거라면, 그냥 불안한 마음이라도 내려놓고 한번 내게 충분히 여유를 줘보자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렇게 일을 쉬는 동안 마음이 시키는 것들을 충분히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랑하는 취미였지만 충분히 시간을 쏟지 못했던 컨택즉흥도 집중해서 해보고, 연초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글쓰기 수업을 듣고 글 전시를 했고, 유럽의 공동체를 경험하는 여행을 다녀왔다. 또한 오랫동안 내려놓고 지냈던 연애사업도 꽤나 힘을 내서 다양한 이성을 만나보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순간순간에 느껴지던 긴장감이 새삼 떠오른다. 처음으로 틴더에서 남들에게 말을 걸었을때(맨 처음에는 왠지 너무 무서워서 친구한테 대신 채팅을 해달라고 했다), 생애 첫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 여행기를 뉴스레터로 발행하겠다고 SNS에 글을 올렸을 때···. 매번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해 볼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장 두려운 고비를 지나고 나면 다음번은 항상 조금이라도 더 수월해졌다. 점점 쉬워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가장 두려운 순간에 여기가 제일 힘든 부분이겠구나 믿는 힘도 생겨났다.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을 지나온 내가 그 전의 나보다 꽤 단단해졌다고 느껴질 무렵, 남들이 먼저 내게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늘상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일을 맞기고 싶다고 하긴 했었는데,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딱 기간이 짧고 간단한 일이 주어졌다. 게다가 장소에 매달릴 필요도 없는 문서작업이 주였어서 나에게 딱 맞았다. 


그 일이 마무리되어갈 즈음, 새로이 알게된 지인이 내게 편집디자인을 해줄 수 있냐고 제안을 했다. 지역의 문화기획자이신 분께 신세를 진 일이 있어, 내가 몇년 전에 만들었던 독립출판물 '당신의 몸에 맞길게요'를 선물로 드린 게 몇주 전이었다. 책을 드릴때 마다 좀 자의식과잉인 선물이 아닌가 고민을 하는데, 독서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래도 괜찮지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컨택즉흥이라는 춤에 대해 쓴 에세이

그런데 마침 기획자님이 책을 만들어야하는 상황이라 내 책과 비슷하게 디자인을 해줄 수 있겠냐며 제안하신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얼떨떨했다. 나는 늘 디자인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독학을 했을 뿐이어서, 프리로 일을 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굉장히 기뻤고, 최선을 다 할 자신이 있었다.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는 걸 알린 후에는 전 직장에서 꽤 많은 양의 책자를 만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디자인한 적도 몇번 있었고, 디자인 업체를 끼고 하기도 했었어서 편집디자인의 일련의 흐름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디자인을 하는 일은 자연스레 내게 맡겨졌었다. 감각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나서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메인으로 해본 적은 없었지만, 업무 중 조금이라도 무언가 만들어내는 일을 할때 엄청나게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우연히 글감을 큐레이션하고 편집해야 했을때, 책자나 홍보물을 만들어야 할 때 나는 시키지 않아도 고치고 또 고쳤다. 회사 밖에서 혼자 독립출판물을 만들었을 때에도 글쓰기부터 표지와 내지 디자인, 인쇄까지 모든걸 고르고 다듬는 일이 정말 기뻤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더없이 설레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마음을 열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좋아하는 걸 해나가는 시간이 나에게 선물을 준 것 같았다. 함께 일을 하려면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고민없이 사업자를 발급받았다. 나에게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도, 동시에 참 알맞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무엇을 하던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할 수 있고, 그런 일들은 누구보다 몰입해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나에게 이제 너 스스로의 사장님이 된 걸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당장에 자리를 잡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가온 기회를 잘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이끄는 삶에 좀더 다가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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