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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Mar 22. 2024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의 상관관계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을까?

(오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의 상관관계


인류 공통의 문제


"형, 회사 일이 재미없어 죽겠어요. 어떡하죠?"


사무실 모니터에 의미 없는 글자들을 채워 넣다가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같이 일하던 동생이 일에 절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나는 기억 한 구석에서 모범답안 24호를 꺼낸다.

"얌마. 일이 재미있으면 니가 돈을 내야지. x나 재미가 없으니까 돈을 받는 거야."

사실 그 대답은 나 자신에게도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회사 일이 늘 재미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 새로운 걸 배울 때도 있고, 몰입해서 일할 때도, 회의를 하면서 즐거울 때도 있다. 예전엔 한 번 고객사를 방문하던 중,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고 넥타이를 고쳐 메다 갑자기 '이 일도 참 할만하네'라며 자뻑아닌 자뻑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재미가 없다. 그냥 없는 것도 아니고 진짜 더럽게 재미가 없다. 가끔은 양복 입은 소작농이 된 것 같다. 매일 밭을 일구는데 보람도 별로 없고 수확도 별로다.

매일 새로운 일을 하면 재미있을까? 내 업무의 특성상 매번 새로운 산업과 새로운 회사들을 분석한다. 처음에는 흥미 있다가도, 이내 '새로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리면 재미가 급격히 떨어진다. 결국 새로운 식당을 분석하는 게 더 재미있어진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다. 인터넷에는 '퇴사 후의 삶'이라던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기'와 같은 글들이 넘쳐난다. 때로는 '퇴사 후 세계 여행하기'와 같은 글들이 회사를 때려칠 (그런데 왜 꼭 회사는 '때려친다'라고 표현할까?) 용기도 능력도 안 되는 나와 같은 쫄보들에게 부러움을 일으킨다.

그래, 이건 인류 공통의 문제가 분명하다. 5천 년 전 스핑크스를 조각하던 석공도, 매일같이 훈련하던 로마 시대 군인도, 사무실에 처박혀 의미 없는 문서들을 생산해내는 지식노동자도 모두 지겨움에 빠진다. 어쩌면 인간의 수명 자체가 너무 긴 것은 아닐까?





하기는 싫지만 만족스러운 일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재미는 없어도 일은 만족스러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일을 하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또한 일은 사회적 지위가 될 수도 있고, 일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으며, 일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워다 먹고사는, 그것이 직업이라면 직업인 이들조차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직업도 아닐뿐더러 잘못된 사회구조의 곪아 터진 고름이고 반드시 수술이 필요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가 or 아닌가' 문제에만 집중하자는 얘기다.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친구가 "돈은 많이 버는데 재미는 없어"라고 말한다고 치자. 그 불만은 최소한 50% 이상 자부심의 표현이다. '잘난 척하기 위한 질문'과 마찬가지로 '자랑하기 위한 불만'이라고나 할까. (그런 말을 표현하는 정확한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지랄'이라는 멋진 단어가 있기는 하다)

여기서 50% 이상의 자부심을 빼고 '재미는 없어 (혹은 하기 싫어)'에만 집중하자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란 존재하는가.


누가 그랬다.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천국'이라고.

우리의 또 다른 문제는 '어떤 일이 즐거운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더 거지 같은 점은,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연애처럼) 막상 해보면 즐겁지 않거나 짜증 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친구 B가 그런 케이스였다. 사진에 미친 그 친구는 새벽에 20킬로가 넘는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태백산을 올랐다. 수년간 카메라 기사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배웠다. 오래된 명품 카메라가 어떻게 DSLR과 다른 느낌을 주는지, 사진은 왜 크게 인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이른바 '카잘알(카메라 잘 알아)'이었다.

당연히 사진 관련된 일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B는 전자제품 회사를 들어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유를 묻자 친구가 답했다.

"취미가 일이 되니까 좀 그렇더라."

은퇴하신 아버지는 열심히 요리를 배우셨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으셔서 한식, 일식, 중식 조리학원을 다니시고, 결국 꿈꾸시던 작은 민속주점을 여셨다. 그러나 주점을 운영하는 동안 아버지는 행복하지 않았다. 똑같은 메뉴를 반복적으로 만드는 일이 너무나 지겨웠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나는 두 번의 배낭여행을 했다. 한 번은 유럽, 한 번은 미국. 각각 40일간의 배낭여행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체로 즐거웠지만, 중간중간 지겹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숱하게 많았다. 심지어 이건 '일'이 아니었는데도.

결국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파랑새' 마냥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하자.


10년이 넘게 지겹게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세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1. 회사에 내 인생을 맡겨놓으면 안 된다. 회사는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2. 인간의 수명이 지나치게 길어졌다. 은퇴 후 사는 날이 은퇴 전보다 길어졌다.


3.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지하게 많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니다.


꽤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 인생과 타협하기로 결정했다. 내게는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왜 내가 퇴사를 해야 하는지 '와이프를 설득할 용기와 능력'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선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있는 것을 분리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면 회사가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회사에 돈을 줘야 한다.

다음으로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꾸준히 한다. 여행과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하고 싶은 것을 취미의 영역에 남기되 꾸준히 시간을 들여 경험과 경력을 쌓아나간다.

은퇴 전에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면서 살았으니 은퇴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도록 한다. 주말 화가라도 30년 동안 하면 고갱처럼 고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소소하게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타히티로 떠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 분들이나 프리랜서를 선언한 분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부럽다. 그러나 나같이 용기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세상과 타협하는 것도 삶의 지혜이자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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