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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Mar 24. 2024

꿈, 그까짓 게 그렇게 중요한가?

기억 속의 잡동사니 - 꿈 이야기

"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킹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연설 원고를 수백 번 고민하고 고치고를 반복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전부 잊어버리고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의 위대한 꿈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변화의 물결이 되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손흥민 선수처럼 프리미어리그에서 축구선수로 명성을 날릴 꿈을 꾸고, 어떤 이들은 일론 머스크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번엔 기억 속의 잡동사니들을 끄집어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게 바로 제 드림카예요"


회사 뒤편의 호프집에서 동생 하나가 휴대폰에서 멋진 자동차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얼큰하게 취한 녀석은 침까지 튀겨가며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마력이며 자동차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와! 멋지네!"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혀를 찼다. 고작 자동차가 꿈이라니!


꿈이란 건 뭔가 거창하고 웅장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엄청나게 부자가 된다거나, 아니면 회사의 CEO가 된다던가. 이런 거 말이다.


그런데 자동차라니!


한 날은 연수 중에 같은 팀에 계시던 나이가 지긋하신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제 꿈은 은행원이 되는 거였어요. 은행원이 돼서 이제 나는 꿈이 없네. 흐흐!"


분위기를 띄우려고 농담 삼아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고민스러운 이야기다. 달성가능한 꿈이라니, 그럼 꿈을 달성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허무할까? 아니면 정말 동화 속의 얼버무리는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걸까?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이가 없을 비밀 하나가 있었다. 바로 꿈을 사고파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꿈을 꾸셨다. 그럼 나는 꿈을 돈을 주고 산다. 가격은 정가제로 에누리 없이 5천 원.


회사 임원면접이 있던 날도 그랬다. 그 전날 어머니께서는 꿈을 꾸셨다. 집 뒷마당에 날개 달린 하얀 말을 잡는 꿈을 꾸셨다고. 아파트에 사느라 없는 뒷마당이 꿈속에 나온 것도 신기했지만, 보통 좋은 꿈이 아니라 당장 외상으로 꿈을 샀다.


임원면접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갑자기 인사부 과장님이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하신다. 바로 자신의 꿈에 대해서 "1분 스피치"를 준비하라는 것. 갑작스러운 소식에 면접장은 술렁였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 결국 내 차례가 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면접자들을 한 명씩 째려보던 임원들을 상대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어머니가 꿈을 꾸셨고, 내가 그 꿈을 샀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XX은행이 저를 고용하는 것은 단순히 저의 시간과 능력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머니의 꿈을 돈을 주고 샀듯이, 바로 제 꿈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얘기하고 포부에 대해서 당당한 밝히자 임원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요놈 봐라~ 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렇게 입사에 성공했던 것이다.


입사 합격통보도 기가 막혔다. 그날 나는 교양 수업의 일환으로 경복궁 안의 국립고궁박물관을 혼자 거닐고 있었다. 평일 낮이라 아무도 없이 한가한 박물관을 혼자 거닐다가, 복원해 놓은 자격루 앞에서 물시계가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흐르다가 시간이 되면 종과 북이 울린단다.


그렇게 종과 북이 울리는 순간,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다름 아닌 입사 합격을 알리는 전화였다.


무슨 인생이 이렇게 작위적이어도 되나 싶었다. 이런 게 운명이라는 건가 싶기도 했다. 회사가 운명이라니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내 커리어는 어머니의 꿈과 함께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가 제법 들고 머리에 흰머리도 조금씩 자라면서 내 꿈의 밀도도 옅어졌다. 웅장했던 꿈은 초라해지고 조그마해졌다. 그날 당당하게 임원들 앞에서 밝혔던 포부는 이제는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이렇게 꿈이 삶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삶이 삶을 움직이는 나이가 된 걸까?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이제는 아내가 꿈을 꿔준다. 여전히 때론 작위적인 내 인생은 새로운 꿈 공급망(?)을 발견해 내고야 말았다. 어머니보다는 꿈빨(?)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꿈을 꿔준다.


어렸을 때는 참 꿈이 많았는데, 이제는 꿈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는다. 꿈보다 이제는 목표라고 부르고, 계획이라 부른다. 바쁜 현실을 살아가면서 점점 미몽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꿈, 그까짓 게 그렇게 중요한가?


어머니께서 내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마다 꿈을 꿔주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본인 자신보다 자식인 나의 행복을 꿈꾸셨던 것이다.


이제는 나의 꿈을 좇기보단, 앞으로 많은 꿈들을 꾸며 살아갈 딸아이의 행복을 좇는다. 나의 꿈을 꾸던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만, 세상 더없이 행복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문 안에서 들려오는 아빠를 반기러 후다닥 뛰어오는 아이의 발소리, 오랜만에 한 산책에서 꽃을 따고 놀던 행복한 시간을 그린 그림일기, 아이스크림 하나에 만세를 부르는 그 웃음소리. 이제는 그런 것들을 나는 꿈이라 부르고, 행복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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