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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Mar 27. 2024

왜 여행은 우리를 들뜨게 하는가?

여행에 대한 개똥철학 한사발

남프랑스에는 안시(Annecy)라는 숨은 보석 같은 도시가 있다.


구시가지를 거닐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에메랄드 빛 호수를 발견하면 아름다운 풍경에 숨이 멎는다. 고물 시트로앵 자동차를 빌려 떠난, 당일치기 남프랑스 여행은 그렇게 의외의 발견들로 가득했다.


안시 호수의 숨막히는 풍경


여행이 우리를 들뜨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의외의 발견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나란 사람을 일상에서 멀리 떨어뜨려놓으면, 당연하게도 낯선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 낯섦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발견들을 하고, 그 발견들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우리는 처음 학교에 가는 아이처럼 여행을 갈 때면 들뜨곤 할지도 모른다.




소렌토에서 만난 예쁜 거리


2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


여행은 골목이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골목에 숨어있다. 그래서 여행을 골목이라고 불러도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


교토 골목을 거닐다 우연히 초등학교 운동회에 처음 관중으로 참석한 외국인이 되기도 하고, 프라하의 골목에서 인생 사진을 건지기도 한다.


진정 아름다운 도시들은 골목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런던, 베니스, 소렌토, 로마는 골목이 관광지보다 더 예쁜 도시였다.


골목이란 이동을 위해 주택 사이에 난 길이다.


즉, 구태여 꾸밀 이유가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이 예쁘다면 그 도시는 정말 아름다운 곳일 수밖에 없다.


다음번 여행을 가걸랑 도장 깨기처럼 주요 관광지만 돌지 말고, 골목을 거닐어보자.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안전은 항상 조심하자. 한국만큼 안전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어쩌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섬나라(3면이 바다 + 북쪽의 이웃)에 살게 된 우리에게, 여행은 “뽕을 빼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비싼 여행비용이란 금전적인 측면도 있지만, 바쁜 일상에 휴가를 길게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가이드 투어나 패키지여행이 인기다.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관광대국인 영국에 살다 보면 각국에서 온 패키지 여행객들을 자주 본다.


패키지여행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 전제조건인 “뽕을 빼려는 자세“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로마의 골목을 즐기기보단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이 사진 찍기라면 굳이 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그냥 합성사진을 만드는 게 돈도 굳고 좋은 거 아닐까? 아니면 여행 갈 만큼 돈과 시간이 있어요라고 자랑하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 개똥철학에 따르면,


여행이란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뽕을 빼는 것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틀린 일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목적이 크게 잘못되었다. “관광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새로운 나를 찾아간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그건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찾아오는 콜로세움 앞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뉴욕에 여행을 가면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거리를 무작정 걸어보는 거다.


런던에서는 날이 좋은 날에 공원에서 피크닉을 해보자. 아님 펍에서 런더너들처럼 넥오일(런던에서 인기 많은 IPA)을 무작정 주문해 보자.


날 좋은 날의 흔한 영국의 공원


플로리다에선 플로리디안들처럼 접이식 의자를 들고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며 파도멍(?)을 때려보자.




핵심은 이거다.


일상에선 나 자신이 온전한 목적이 되기 어렵다. 일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나는 사라지고 나라는 역할만이 남는다.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면 나는 일상이라는 역할극의 배우가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여행을 하는 이유고, 우리가 여행에서 들뜨는 이유이다.


다음번 여행에서는 조금은 내려놓고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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