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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2시간전

재능과 성공의 상관관계

재능 = 성공?

얼마 전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다섯 살 딸아이가 런던에서 같은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우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였다.


우리 아이는 가장 어리다 보니 제일 먼저 공연을 했다. 당연히 ‘맥도날드 아저씨 농장‘ 같은 쉬운 곡으로 공연을 했다. 뒤로 이어질수록 아이들의 나이도 올라가고 수준도 급격히 올라갔다.


관객의 대부분이 자기 아이의 공연을 보러 온 부모들이다 보니, 자기 아이가 공연을 할 때는 녹화도 하고 눈빛을 빛내며 보다가도, 다른 아이가 공연을 할 때는 졸거나 딴짓을 하다 예의상 박수만 쳤다. 나도 중간중간 졸았으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한 아이의 피아노가 울리자 관객들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딴짓을 하던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을 하고, 공연이 끝나자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 엄청난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천재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기교적으로 훌륭한 다른 아이들과 달리, 천재는 아이들 공연장을 본인의 콘서트장으로 바꿔버렸다. 재즈풍의 두 번째 곡을 들을 땐 마치 외진 골목길, 홀로 불이 켜진 재즈 바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 그것을 우리는 재능이라 부르고, 그런 재능이 특출 난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질까?




교육학 이론에 따르면 타고난 머리의 영향이 공부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실컷 노는데도 성적이 잘 나오는 친구가 있는 반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데도 공부를 못하는 친구가 있다.


공부도 재능의 영역이지만, 예체능은 그야말로 재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분야다. 희대의 천재 모짜르트는 6살에 처음 작곡을 했다. 피카소는 입체파의 대가이지만, 그의 어렸을 적 그림을 보면 쉽게 천재성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지금 예를 들은 이들은 100년이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들이다. 모짜르트의 경우는 음악 역사상 최대의 천재로 손꼽히기도 한다. 이런 재능은 인류 역사에 손꼽히므로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약간은 벗어난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재능은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재능이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으며, 재능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까?


이 의문에 답하려면, 먼저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공은 상대적이다. 올림픽만 봐도 메달의 수는 한정적이다. 한정적인 수의 메달을 따려면? 다른 사람보다 잘하면 된다. 10점 만점인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이 3점을 받았다면, 4점만 받아도 메달을 딸 수 있다.


미술이나 음악은 상대적인 성공의 개념이 약간 모호하다. 솔로이스트가 되는 것. 유명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 부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군침을 흘리는 잘 나가는 화가가 되는 것. 체육에 비해 기준이 모호하지만, 결국 이 분야도 기회는 한정적이다. 빈 필하모닉의 정원이 무한대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성공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의 피아노 천재로 돌아와 보자.


그 아이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 아이가 공연장을 자신의 콘서트로 만들고 있을 무렵, 수 없이 많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자기의 집을, 음악학원을, 유튜브를 자신의 콘서트장으로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재능을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자동차에는 제로백이라 불리는 가속도가 있고 또한 최고속력이 있다.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가속도가 높은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빠르게 그리고 쉽게 천재성을 보이며 주변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신동들이 결국 평범한 범재로 전락해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속력이 낮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서는 상대적으로 천재였을지 모르지만, 그 재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낮다면 어느 순간부터 어린 시절 평범한 범재들에게 추월당하고야 만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피아노 천재는 얼마만큼 천재일지 알 수가 없다. 그대로 빠르게 성장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지, 아니면 어느 순간 범재로 전락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는 나와 같이 (우리라고 썼다가 나로 고쳤다) 재능이 부족한 범재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못 생각한 것을 깨닫고 놀라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 전직 뮤지컬 배우와의 대화가 그 중의 하나였다.


뮤지컬을 보면 주연 배우들이 있고, 주연 배우들을 빛나게 하는 조연들인 앙상블이 있다. 때로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늘 생각했다. 그들이 행복할까?


늘 경쟁적으로 살아왔던 나는 그들이 늘 주연배우들을 부러워하며 행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늘 성공을 위해 달리던 나처럼, 주연배우가 되기 위해 악을 쓰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플로리다에서 만났던 전직 뮤지컬 배우는 나의 그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런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팀으로 활동하는 앙상블은 공연의 성공에서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뮤지컬 배우가 그들의 직업이지만, 유일한 직업은 아니라는 것. 댄스 스쿨을 차리기도 하고, 보컬 코치를 하거나 음악을 공부하는 등, 무대 밖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인 뮤지컬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행복하다는 것.


이 이야기는 성공에 대한 내 관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무조건적인 한 분야에서의 성공이 아닌, 행복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은 내게 있어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재능과는 무관한 세계에 가깝다. 상대적인 성공의 세계에서 경쟁은 끊임이 없다. 제일 앞에 있으면서도 언제든 뒤처지지 않게 달려야 하는 삶은 빛날지언정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우리의 피아노 천재로 돌아와 보자. 그 아이는 진심으로 피아노를 즐기고 있었고, 공연을 마친 후 자리로 돌아왔을 때 웃으며 안아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 아이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성공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브런치에 연재를 하고 곧 출판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한 지인이 아이의 글을 봐줄 것을 부탁했다. 식사자리에서 나온 가벼운 부탁이었지만, 한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순간이었기에 절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재능이 넘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확신이 들었다. 토끼인 주인공이 가족들의 죽음과 끝내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는 무거운 주제의 글을 담담하게 이끌어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조언들이 떠올랐다. 오감을 자극하는 어휘를 사용해라, 충격적인 오프닝을 만들어라, 이런 표현은 진부하다, 기타 등등.


그러나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지금 이 아이는 성공적인 글을 쓰는 것보단, 글을 쓰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까. 당장의 글이 조금 나아지는 것보다,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면서 글 쓰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깐 말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를 관찰하며 재능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잘 안 되는 법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우리 아이에게서 이 재능 하나만은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행복해지는 재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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