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성취감에서 벗어나기
헬스장이 가장 붐비는 때는 언제일까? 바로 1월 2일이다. 1월 1일이 아닌 이유는 노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일까? 외국서 오래 살며 지켜본 결과 이건 만국 공통의 현상이다.
보통 이 현상을 두고 사람들의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보여주는 예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사람조차 이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단지 의지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또한 단순히 의지박약으로 생각하면 개인의 문제가 되면서 더 이상 이 문제는 거론할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모든 이유를 개인에게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요즘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는 [나는 걱정이 너무 많아]라는 책에 그 답이 있었다. 바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거짓 성취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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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심리 실험을 했다.
우선 A집단에게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B집단에게는 헬스장에 갈 때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운동을 어떤 식으로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그 후에 실제로 어느 집단이 헬스장을 더 많이 갔는지 조사해 봤더니,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B집단의 헬스장 방문 빈도가 단지 운동하는 것만을 상상했던 A집단보다 훨씬 적었다.
책에서는 이를 시작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바람에, 이미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것처럼 느끼는 가짜 성취감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월 2일에만 헬스장이 제일 붐비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연말연시 송년회를 하다 보면 항상 화두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운동이다. 기름진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괜스레 죄책감 때문에 "진짜 운동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새해가 되면"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그렇게 습관처럼 새해가 되면 운동을 한다고 주문처럼 외우다가, 막상 1월 2일이 되었을 때는 두 가지 중 한 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정말 헬스장에 가거나, 구정 이후로 계획을 미루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계획을 실천했으니 성취감이 매우 크다. 다만 잘못된 성취감이고, 가짜 성취감이다. 운동을 해서 몸이 좋아지는 것의 성취감이 아닌, 계획을 이루었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획을 이루었으니, 더 이상 운동을 할 의욕이 줄어든다.
두 번째의 경우, 계획에 대해 생각해보고, 수정하게 되면서 약간의 가짜 성취감이 느껴진다. 내 계획은 완벽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단순히 미루는 것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구정이 되면? 또다시 선택지에 놓인다. 헬스장에 한 번 가거나, 아니면 계획을 4월 1일 같은 그럴싸한 다른 날짜로 미루거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짜 성취감에서 벗어나 헬스장을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헬스장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헬스장에 가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적이 있었다. 바로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지 않고 출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출근 전에 헬스장에 들러 몸을 씻게 되고, 들른 김에 운동도 간단하게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헬스장이라도 멀리 있거나, 가기가 힘들거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면 무수히 많은 사정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일들을 제거해서 헬스장을 가는 일을 수월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여럿이서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여럿이서 운동을 하다 보면 한 명이 빠질 경우 자연스러운 압박(?)이 들어오면서, 운동을 계속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운동이 끝난 후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게 되는 일인데, 이것은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치게 많은 생각이나 계획보다는 그냥 한 번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두 번 계속 생각 없이 하다 보면,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올바른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어느샌가 운동하는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다.
헬스장을 예로 들었지만, 가짜 성취감 문제는 의지가 필요한 모든 일에 해당한다.
해결법도 그리 다르지 않다. 계획보다는 실천을, 그리고 실천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든다면, 실낱같이 얕은 의지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다.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올 한 해도 벌써 4월이 되었다. 올해 목표했으나 시작조차 못했던 일들이 참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절대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실천해 보는, 생각이나 계획 없는 실천의 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