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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Sep 09. 2024

팀장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사 평가 꿀팁

인사 평가에 대해 말하다

연말에 있을 인사평가 시즌이 다가오면 슬슬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올해 내가 무슨 일을 잘했지?"


"저번 술자리에서 실수한 게 반영되지는 않을까?"


"이번에 잘 받아야 승진할 텐데..."


누구나 해봤을 고민이다. 매번 인사 평가 시즌마다 내가 했던 고민이기도 하다.


직장생활 14년 차, 인사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도 했고 인사 평가를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지난 14년간 늘 높은 인사평가를 받아오면서 매 3년간 승진할 수 있었던, 인사 평가의 꿀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상사의 마음을 읽어라


너무 뻔한 얘기 아니에요?


그렇다. 꿀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그렇게까지 뻔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은행을 다니면 주 업무 외에 "캠페인"이라고 해서 신용카드나 상품을 팔아오게 시킨다. 은행 다니는 지인이, 신용카드나 통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온 경험이 있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당시 1년 차 직원이었던 나의 업무는 기업영업지점의 부심사역. 뭔가 있어 보이지만, 기업 영업을 하는 심사역들의 보조를 하는 역할이다. 보조 역할이라고 하지만 심사 보고서 작성부터 서류 준비까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주 7일 근무는 기본이고 매일 야근을 했다.


캠페인의 특징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적이 철저하게 모니터링된다는 점이다.


월화수목금금금 코피 터져가며 일하던 내게 신용카드 실적을 올릴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고 덜 중요한 것은 나중에 미뤄두는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캠페인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지점장님이 나를 호출했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언짢은 표정의 지점장님 앞에는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숫자들이 빽빽하게 적혀있었다. 다름 아닌 캠페인 성적이었던 것.


우리 지점은 전 지점 중에 꼴찌를 하고 있었고, 제일 밑바닥에는 전국에서 캠페인 실적 꼴찌를 하고 있었던 내가 있었던 것이다.


종이에는 한 달간 하루 평균 몇 장의 신용카드를 만들었는지가 나와있었는데, 내 실적은 0에 가까웠다. 부모님께 부탁한 게 전부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김 주임, 이해는 가지만 0장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인사평가에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려워."


'인사평가'라는 단어를 듣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과 저녁을 다 팔아가며 일만 하고 있었는데, 고작 캠페인 실적 때문에 인사평가에 불이익을 준다니?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다음 날, 고민 끝에 다시 한번 지점장 면담을 신청했다.


"지점장님, 오늘부터 3-4일 동안 외근을 하겠습니다. 카드 좀 팔고 오려고요."


지점장이 거절을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며칠 동안 당장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학교 동창, 군대 동기, 친척 가릴 것 없이 찾아다니며 카드를 만들었다. 수원, 오산, 의정부, 가리지 않고 발에 땀나게 돌아다니며 카드 만드는데 올인했다.


결국 며칠 사이에 20장의 카드를 만드는 기염을 토하며, 전국 꼴찌에서 벗어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점장님이 만족하신 것은 당연지사. 덕분에 그 해 인사 평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길었던 이야기의 교훈은 결코 평가를 위해 미친 짓을 해라! 가 아니다. 상사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지점장이라면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직원들도 나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캠페인 실적에서 지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내게 좋은 평가를 주면 다른 직원들이 불공평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다른 직원들이 평가를 알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또한 심사역 보조 업무는 그 자체로는 성과를 드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국 꼴찌의 캠페인 실적을 가진 내게 좋은 평가를 준다면 나중에 인사팀이나 감사팀에 책잡힐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담 때문에 그는 좋은 평가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던 것.


그런데 내가 갑자기 카드 실적을 만들어왔으니, 그의 걱정을 완전히 덜어준 셈이 되었다. 여기에 적지는 않았지만, 바자회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해서 전반적인 지점의 실적을 올려주기도 했다.


결국 인사 평가는 상사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사의 마음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항상 상사에게 피드백을 구하고, 상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하라는 일은 다 열심히 잘했는데 왜 평가가 이 모양?


인사 평가의 등급 시스템은 각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예를 들면 S부터 D까지의 5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은 4등급으로 바뀌었다).


회사에서는 등급 별로 정해진 비율이 없다고 하지만, 등급 별로 어느 정도 비중이 있는 것은 안 말해도 다 아는 사실이다.


보통 B와 C가 제일 많고, A는 잘한 직원에게, S는 특별히 잘한 직원에게 준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D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얘기다. 아니면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거나.


14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주변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이런 불만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잘했는데, 왜 B등급 밖에 안될까?

이런 질문에 나의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시키는 대로만 했으니까 당연히 B 지!"


조금 더 자세히 파고들어 보자.


이런 불만을 가진 직원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1) 자신이 정말 잘했다고 착각한다. 팀장이 보기에는 별로였는데.

2) 자신의 직급에 비해 모자란 성과를 냈다. 아직도 자신이 대리, 주임인 줄 안다.

3) 시킨 일만 잘하면 되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하냐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했음에도 B등급을 받고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팀장의 입장에서 직원들을 보면,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일을 못하는지가 금방 보인다. 일을 잘하는 직원들은 보통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하게 일을 한다. 똑같이 시킨 일을 하더라도 우직하게 시킨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더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일을 못하는 직원들은 시킨 일만 열심히 한다. 물론 결과물은 가져오지만, 팀장의 시간을 더 빼앗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문제는 이런 직원들도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 시킨 일도 제대로 안 했다면 C등급을 줬을 것이다. B등급을 줬다는 것은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다고 여긴 것이다.


꿀팁이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일잘러가 되고 좋은 인사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런 팀장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 안되면 이 것만 기억하자.


"시킨 일만 잘하면 B등급을 받는다."




팀장의 시간을 아껴주는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나무꾼인 여러분에게 두 개의 도끼가 주어졌다고 하자. 첫 번째 도끼는 나무 베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준다. 두 번째 도끼는 보기엔 예쁘지만 나무 베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다고 하자.


여러분이라면 어떤 도끼를 고르겠는가?


물론 취향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첫 번째 도끼를 선택할 것이다.


무슨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 싶겠지만, 이것이 팀장이 여러분을 보는 관점이다.


일을 잘해서 팀장의 시간을 줄여주는 직원과 오히려 팀장의 시간을 까먹는 직원. 누가 더 나은 인사평가를 받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팀장이 되어 팀원들에게 일을 시킬 때 늘 이런 경우가 있다. 해당 팀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보다, 팀장이 직접 하는 게 오히려 나은 경우 말이다.


“팀장이 그 직원을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물을 수 있겠지만, 팀장 자신도 매 년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에, 일 못하는 직원을 일 잘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가 없다. 또한 팀에 일 잘하는 다른 직원이 있다면, 그 직원에게 중요한 일을 계속 시키게 된다.


인사 평가가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한 일.


만약, 나 자신이 일 잘하는 직원으로 여겨져 팀장이 중요한 업무를 계속 맡긴다면 상관이 없다. 좋은 인사 평가는 따놓은 당상이니까.


그러나 자신이 일못러라면?


우선순위를 조정해 팀장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중요한 일을 못 맡았다고 맡은 일을 대충 해버리면, 더 안 좋은 결과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라.


아무도 없는 숲 속에, 나무가 한 그루 쓰러졌다. 이 나무는 쓰러진 것일까? 안 쓰러진 것일까?


선문답 같은 이야기이지만, 회사 생활에 적용해 보면 의미가 있다. 보이지 않는 성과는 성과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면 상사가 알아서 우리를 제대로 평가해 줄 거라 생각한다. 이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상사가 업무시간 내내 붙어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성과들을 다 알 수 있겠는가?


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상사에게 자신의 성과를 어필할 필요가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마다, 상사마다 어필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과의 문서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매 달, 무슨 성과를 냈는지 기록했다가 인사 평가 시에 제출하는 것이다.


성과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여러 업무들의 마감에 맞춰 8월에는 프로젝트 A, 9월에는 B, 이런 식으로 목표관리에도 쓸 수 있는 방법이다.


한 달에 한 개씩, 1년에 12개의 성과는 결코 적은 양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다. 작은 성과나 연수나 트레이닝을 넣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이렇게 문서화했을 때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우선 다른 팀원들이 자신의 성과를 기억에 의존해 이야기할 때, 여러분은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12개나 되는 성과를 말이다.


또한 상사가 인사 평가 등급을 깎으려 할 때, 방어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객인적으로도 성과관리에 무척 도움이 된다. 내 경우, 분기마다 한 개의 큰 성과, 두 개의 작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데, 미리 1년 치를 채워보면,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충분할지 부족할지 알기가 쉬워진다.


마찬가지로 팀장 입장에서도 여러분의 성과관리에 도움이 된다. 12개의 성과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대화하기가 너무 편해지는 것이다.


너무 쉬운 방법이라 효과가 있을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과를 문서화하면 당장의 인사 평가 등급이 안 오를지는 몰라도, 앞으로 성과관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해야 할지 감이 올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신용카드 이야기에는 숨은 뒷 이야기가 있다.


그다음 해에 지점장님이 은퇴를 하면서 자기 고향 후배이자 학교 후배인 신입직원에게 은퇴 선물로 인사 평가 S등급을 주었던 것이다. 별 다른 성과가 없었는데도!


이렇게 보면 인사 평가만큼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것도 없다. 결국 “상사 맴대로”라는 얘기니까.


그러나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일수록 우리에겐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부디 이 꿀팁들을 잘 활용해 억울하지 않은 회사생활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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