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링로드 투어
매년 한 군데씩 해외로 여행을 가자. 그럼 죽을 때까지 50군데는 다녀올 수 있을 거야.
결혼하기 전 했던 약속 한 가지. 작은 소망처럼 했던 약속은 목표가 되었고,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현실이 되고 추억이 되어간다. 미국 생활 2년 차에 접어들던 2017년.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녀왔다.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에.
우리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아이슬란드의 가장 유명한 여행지인 골든 서클부터 시작한다.
골든 서클(Golden Circle)은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 이렇게 세 관광지를 묶어 부르는 명칭이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관광객의 대부분이 골든 서클을 무조건 관람하고 돌아간다고 해도 무방한데, 수도인 레이캬비크와 비교적 가까운 것도 인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새벽 4시에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캠퍼밴을 픽업하고 주의사항을 숙지한 후 바로 싱벨리어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유라시아대륙판과 북아메리카대륙판이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각운동의 결과로 지금의 웅장하고도 신비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지각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른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마 성수기인 7-8월에 왔다면 이른 시간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주차를 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싱벨리어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웅장한 협곡이 우리를 맞이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세계 최초의 의회가 열린 곳. 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930년부터 1798년까지 야외 의회가 계속 지속되었다고 한다. 930년이면 통일신라 말기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의회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다. 바이킹들은 합의체인 "씽(Thing, 영어의 Nothing, Something 등도 이 단어에서 기원했다)"을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다고 한다.
물론 바이킹 전사들의 의회이니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의회와는 많이 다를 듯 싶다. 고성과 주먹질을 감안하면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협곡을 지나면, 오른쪽 평원 위에 하얀 건물들이 보인다. 아이슬란드 총리의 여름 별장과 공원 관리인의 집이라고 한다. 국립공원 한가운데의 하얀 집들이 예쁘게 보였지만, 속세에 찌든 우리는 인터넷은 잘 터질지, 전기는 잘 들어올지 걱정부터 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멋진 협곡과 그림 같은 풍경이 있었지만, 특별히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첫날 골든서클을 정복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해야 했기에, 멋진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은 후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꽃보다 청춘에도 나와 유명해진 게이시르였다.
영어로는 게이셔라고도 하는 게이시르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물을 뿜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활발한 화산활동 때문에 아이슬란드 전역에 온천을 비롯한 간헐천들이 있다고 하는데, 수만 년 된 빙하와 뜨거운 간헐천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아이슬란드를 왜 불과 얼음의 나라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그레이트 게이시르의 경우 온천수가 최대 40미터 상공까지 분출된다고 하는데, 나올 듯 말 듯 감질나게 하다가 한 번에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이시르 앞쪽에는 관광안내소 겸 편의시설이 있는데, 아이슬란드 여행 중에 보았던 관광안내소 중에 가장 시설이 좋았다. 카페는 물론이고 각종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이상한 캔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바로 아이슬란드의 깨끗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고 있었던 것.
현대판 봉이김선달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아래 기사를 보면 아이슬란드 국민조차도 이 괴상한 아이디어를 어이없게 생각하는 것 같다.
https://grapevine.is/icelandic-culture/food/2019/08/07/food-of-iceland-icelandic-glacial-air/
아이슬란드에 커피 붐이 일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게이시르 관광안내소에서 마신 커피조차도 상당히 맛있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뒤로하고 우리는 굴포스로 향했다.
아이슬란드에는 포스(Foss)라고 불리는 지명이 상당히 많은데, 포스란 다름 아닌 폭포를 의미한다.
굴포스는 고다포스, 데티포스와 함께 아이슬란드 3대 폭포라고 불리는데, 과연 유량뿐만 아니라 모양도 빼어나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예전에 보았던 나이아가라 폭포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시원한 물살을 보고 있으면 굴포스가 아니라 겔포스(?)라도 되는 듯,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골든 서클 관광을 마치고 동쪽으로 차를 달려 이번에는 해안가 작은 마을인 Vik 근처의 검은 해변과 주상절리를 감상했다. 주상절리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신기하지는 않았다.
주상절리 동굴을 보고 코끼리 바위가 있는 디르홀레이(Dyrhólaey)라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코끼리 바위 사진도 찍고, 검은 해변의 석양을 감상했다.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맞이하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노을을 끝으로 우리는 Vik 근처의 캠핑사이트에서 숙박을 했다.
처음 해보는 차박(?) 이라 준비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 때문에 잘 준비를 마쳤을 때는 둘 다 녹초가 되고 말았다. 마침 다른 한국인 일행이 캠핑사이트에서 묵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나눠준 김치 덕분에 라면과 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먹었던 라면 중에 가장 맛있는 라면이 아니었을까.
이 짓을 앞으로 9번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오면서도, 피로에 지친 채로 건조한 히터의 공기에 코가 막혀가며 간신히 잠에 들었다.
그렇게 첫날은 바쁘게 지나갔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스카프타펠 빙하 하이킹 투어를 예약해놨기 때문이다.
도착하자 투어 사무실에서 따뜻한 커피와 함께 아이젠 같은 장비를 건네준다. 어딜 둘러봐도 한국인은 우리뿐. 그 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은 다 어딜 갔을까?
가이드에 따르면 오래된 빙하의 경우는 수만 년이 넘은 것들도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얼음의 평균 깊이는 380미터, 최대 깊이는 거의 1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커다란 규모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스카프타펠 빙하 하이킹의 가장 첫 번째 규칙은 다름 아닌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것.
얼음 사이에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를 피하기 위함인데, 겨울철 비수기가 끝나면 가이드들은 빙하 위를 돌아다니며 안전한 길을 미리 찾아놓는다고 한다.
이렇게 얼음 위를 한참 걷다가, 잠시 앉아서 쉬고 돌아오는 것이 투어의 전부였다. 지루할 법도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투어를 마치고 이번에는 빙하호인 요쿨살론으로 향한다. 스카프타펠에서 빙하를 질리도록 봐서 그런지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다만 보트 위에서 먹는 수 만년된 얼음 조각의 맛은 깨끗함 그 자체였다.
빙하호 투어를 마지막으로 둘째 날도 막을 내렸다. 오늘 만났던 빙하 하이킹 가이드는 6개월은 아이슬란드에서, 6개월은 다른 나라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돈보다 낭만과, 꿈을 쫓는 그들의 삶이 한편으로 부러웠다.
회픈이라는 이름 없는 작은 항구마을의 캠핑장에서 하루를 묵었다. 항구마을의 아침은 조용했다. 떠나는 배도, 들어오는 배도 없었다. 4시간가량을 달려 세이디스피외르뒤르라는 어려운 이름의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쉬멍 놀멍 가는 길 중간에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다. 세이디르피외르뒤르로 향하는 고갯길은 바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내려온 곳이었다. 영화에서 월터는 종종 공상에 빠지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직장인이다. 그러다 어딘가 사라져 버린 작가의 사진을 찾기 위해 상상으로만 하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도 아이슬란드로.
영화는 잔잔하지만 삶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영화의 울림을 간직한 대사를 한번 전해본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위험을 넘어, 벽 너머를 바라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굴포스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라면, 섬의 동북부에 위치한 데티포스는 가장 웅장한 폭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유량이 많은 폭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3대 폭포인 굴포스, 데티포스, 고다포스 중 가장 좋았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나왔던 폭포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모기 호수라는 이름의 미바튼 호수를 돌아 고다포스에 갔다.
신들의 폭포라는 고다포스는 굴포스만큼 유명하지도, 데티포스만큼 웅장하지도 않았지만, 이름에 걸맞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보였다.
아이슬란드는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척박하고 황량한 이 땅이야말로 스타크 가문의 '북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로타지아 동굴은 원래 인기 많은 온천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화산활동이 강해지면서, 물이 너무 뜨거워져 문을 닫았고, 그 이후 다른 온천들이 개발되면서 온천의 역할은 안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역시 왕좌의 게임에 나왔던 장소인 디무보기르로 간다. 신기한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동굴 속 온천,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 기묘한 돌무덤을 지나다 보면 옛사람들이 이곳에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겠구나 싶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인 아큐에이리에서 캠핑을 했다.
그렇다. 아이슬란드는 척박하다. 강한 바람과 추운 날씨 때문에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다. 종종 보이는 나무는 전부 외국에서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척박한 가운데에서 풍요를 찾는 법을 배웠다. 그 풍요를 경험하기 위해 웨일 와칭(배를 타고 고래를 발견하는 액티비티)에 나섰다.
추운 날씨에 무덤덤하던 손님들도 바다에 나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고래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선장이 '몇 시 방향에 고래가 있습니다'라고 안내방송을 해주면 어린아이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아주 가까운 거리에 고래가 나타났던 것이다. 배 위의 모두는 신기한 광경에 탄성을 지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고래를 만나다니!
고래 투어가 끝나고, 보트 위에서 우리는 한가롭게 낚시를 했다.
직접 잡은 고기를 구워 먹는 맛은 별다른 감미료가 필요 없을 정도로 특별했다. 뱃사람답게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의 선장님이었지만, 우리의 계속되는 질문에도 짜증 내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줬다. 겉은 무뚝뚝해도 속정이 깊은 아이슬란드의 남자였다. 바베큐로 배를 채우고 길을 나섰다.
아이슬란드 링로드 여행 중 만났던 풍요로운 풍경들을 담아봤다.
아이슬란드 전역에 양들이 돌아다닌다. 추운 날씨에도 잘 견디는 동물이기 때문인지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가축이기도 하다. 길을 가던 길에 손자를 안고 트랙터로 양을 모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여유 있게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미처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여유 있는 환영의 손짓이야말로 아이슬란드의 풍요가 아닐까 싶었다.
날이 좋았다. 오로라를 보려면 세 가지 조건을 맞춰야 한다. 구름이 없을 것, 날이 어두울 것, 그리고 오로라 활동이 활발할 것. 여행 내내 오로라 지수를 체크하던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이다.
오전 일정을 대충 (뭘 봤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소화하고, 구름이 없는 곳을 향해 장장 여섯 시간을 달리자 주변이 캄캄해졌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연신 별이 예쁘다며 탄성을 질렀다. 괜히 심술이 났다. 나는 온통 운전만 하고 있는데. 그래서 차를 세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서히 하늘이 출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우리를 따라 차를 세우고 하늘이 보여주는 지상 최대의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껏 살아온 삼십여 년의 세월은 마치 이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세상의 경이를 발견하기 위해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첫 키스를 했을 때, 버진 로드를 걸어오는 신부를 보았을 때, 첫 아이의 울음을 들었을 때, 그리고 이처럼 여행을 통해 세상의 신비를 발견했을 때.
그런 경이와 경이가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말이 삶에 대한 지침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매 순간순간 경이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도 삶이 풍요롭지 않을까? 아이슬란드는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
마지막 이틀은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보냈다. 역시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인들인지라 도시가 주는 편리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레이캬비크에서의 며칠이 휴식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볼 건 봐야지.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 교회로 향한다. 주상절리를 본떠 만든 교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교회 전망대를 올라간다. 아이슬란드 인들의 취향이랄까, 집들을 아기자기하게 칠해놨는데, 높은 데서 보니 장난감마을처럼 느껴졌다.
정처 없이 도시를 구경하다가 '하르파'라는 멋진 건물에 들어섰다. 초현대적인 건물 안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였다.
마침 센터 안에서는 무료 피아노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잘 가라는 작별인사였을까, 아니면 이곳을 잊지 말라는 바람이었을까.같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시민들과 여행자들은 서로 다른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며 마지막 행선지인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아이슬란드 링로드 여행의 마무리는 역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중 하나인 블루라군이었다.
블루라군은 천연온천이 아닌, 지열발전소에서 증기와 온수를 위해 추출해 낸 지하수로 만든 인공온천이다. 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물이지만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피부에 좋은 미네랄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서양에 있는 온천들이 그러하듯이, 물이 생각만큼 뜨끈하지는 않았다. 대신 적당히 따뜻해서 오랫동안 온천욕을 즐기기에는 제격이었다.
블루라군 온천에서 몸을 녹이면서도 드는 생각은 아쉬움 한 가지뿐이었다. 아마 며칠 더 머문다 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행기에 싣지 못한 여행지까지 포함하면 거의 모든 것을 다 보고 온 셈이니까.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짐 정리를 마치자 집에 돌아갈 생각에 심란해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여행에는 늘 끝이 있는 법이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솔직히 말해 아이슬란드는 미식의 나라와 거리가 멀다.
유럽식 고기 스튜인 굴라쉬 작은 컵 하나에 삼만 원 가까이 한다. 비싸고 맛도 없다. 우리도 여행 내내 대부분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수도를 벗어나면 식당 자체가 별로 없다. 그러니 직접 해 먹을 수밖에...
어쨌든 먹고사는 것이, 특히 먹는 것이 무척 중요하니, 아이슬란드에서 먹은 음식 사진들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아이슬란드 링로드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아름다운 사진과 즐거운 추억들, 그리고 지독한 감기까지. 여행을 끝마칠 때쯤엔 세상의 경이를 마주하고 키가 아주 조금 자라난 느낌이었다.
세상에 여행지는 많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아이슬란드와 같은 여행지는 없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안녕, 아이슬란드.
와 정말 멋진곳 입니다
@이순열지금까지 가본 여행지 중 가장 좋았습니다. 강추합니다ㅎㅎ
제 버킷리스트에 담아 두었어요
작가님 글 읽고
@이순열감사합니다. 캠핑카로 여행하시면 좀 힘들지만 더 기억에 남으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인문여행 책을 출간하는 인문산책입니다. 올해는 저희 출판사가 참여를 못해서 선택권이 없고, 혹 기회가 된다면 아이슬란드 책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연락처 남겨드립니다. inmunwalk@naver.com
안녕하세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