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휴대폰 없이 살아보니 얻어지는 것들
요즘 내가 사는 런던에는 소매치기가 극성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소매치기(Pickpoket) 주의"라고 쓰여있는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에는 소매치기 외에도 가젯 그래버(Gadet Grabber)를 조심하라는 안내문도 볼 수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들고 있는 휴대폰을 낚아채가는 신종 수법을 말한다. 그만큼 소매치기도 많아지고 수법도 다양해진 것이다.
왜 갑자기 소매치기 얘기를 하냐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런던 시내에 갔다가, 그만 와이프가 휴대폰을 도둑맞았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러 아이와 함께 하필이면 사람이 제일 붐비는 소호의 사람이 더 붐비는 리버티 백화점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한참 장식을 구경하고 밥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휴대폰이 없어진 것.
그 이후로 찾아온 멘붕과 혼란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은 재정적인 타격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진이나 데이터와 같은 더 중요한 무형의 것들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와이프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미국에서 새 휴대폰을 받기 위해 (그렇다, 우리는 영국에 사는 한국사람이지만 미국 휴대폰을 쓰고 있다) 기다리는 동안 와이프에게 내 휴대폰을 뺏기면서, 일주일 간 반강제로 휴대폰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영국에서 휴대폰 잃어버린 썰]도 물론 일대 사건이고 흥미 있는 기록이겠지만, [일주일간 휴대폰 없이 살아본 썰]은 아마 요즘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척 경험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일주일간 휴대폰 없이 살아봤더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휴대폰 없이 살아봤더니 벌어진 놀라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얼마 전에 있었던 어이없는 일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일을 하는 카나리 워프는 런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런던 남서부에서 카나리 워프까지 출근하려면 무척 고된 여정을 거쳐야 하는데, 먼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간 후, 기차를 타고 런던 중심부의 워털루 역으로, 워털루 역에서 쥬빌리 라인이라는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 1시간에서 1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을 거치고 나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녹초가 돼버린다.
이때, 동네 기차역까지만 차를 타고 가도 훨씬 여정이 수월해지는데, 하루는 어쩌다 보니 일정이 맞는 관계로 와이프가 차로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기차역 앞에 차를 오래 세워두면 벌금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 얼른 와이프를 떠내 보낸 후, 오랜만에 예전에 좋아했던 베이시스트 마커스 밀러(Marcus Miller)와 코린 베일리 레이(Corinne Bailey Rae)의 콜라보 곡인 '프리(Free)'를 들으려고 에어팟을 귀에 꼈다. 그리고 기차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에어팟을 귀에 끼면 휴대폰과 연동이 되면서 '둥'하는 무겁지만 경쾌한 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휴대폰을 집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일단 우주 명곡인 '프리'를 듣고 이어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DK94DsS3dTI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애플페이로 교통 카드와 신용카드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도 체크카드도 전혀 가져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와이프에게 휴대폰을 가져달라고 전화도 할 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듯, 영국에 사는 한국사람이지만 미국 전화번호를 쓰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국제 전화 한 통 화만 해도 될까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난감함을 뒤로하고, 30분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버스에 그냥 올라타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돈을 내라고 말하면 미친 사람인 척 연기를 할까도 생각하다, 영국 BBC뉴스를 장식한 어글리 코리안이 될까 꾹 참았다. 그렇게 30분 거리를 돌아왔고, 하이브리드 근무의 장점을 만끽하면서 집에서 일을 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버렸는지 보여준다.
휴대폰이 없으면 얼마나 바보가 되는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얼마나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있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부터 업무, 금융활동을 비롯해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휴대폰과 연결이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잠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와이프가 동네 기차역에 내려줬으니 망정이지,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걸어서 한 시간이 걸리는 다른 기차역에 내려주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기차역에서부터 집까지 털레털레 걸어오면서도 계속 들었던 생각은, 혹시나 휴대폰을 놓고 온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무서운 일이라는 얘기가 공감이 되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와이프가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한 후(정황상 소매치기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휴대폰을 다시 구하는 과정에서 한동안 반강제로 휴대폰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일주일간 휴대폰이 없는, 폰리스(Phoneless)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폰리스의 하루는 무척 힘이 든다.
우선 출근길부터가 문제다. 휴대폰 대신 옛날처럼 신용카드를 이용하는데, 혹여나 신용카드라도 잃어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휴대폰이 없어 전화도 못하니, 최악의 경우에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걸리는 거리를 4-5시간을 걸어와야 할 수도 있다. (나름 엄청난 모험일지도...)
출근길의 지루함은 어떠한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곤 했는데, 휴대폰이 없으니 출근길에는 그저 멍하니 생각에 잠기거나, 눈을 붙이거나, 아니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마치 인터넷이 없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도 마찬가지의 대사건이다.
회사에서 점심 약속을 하면 이제는 온전히 상대방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나올 것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급한 일이 있어서 되돌아가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저 10분 넘게 기다리다가 나중에 사무실에 돌아가면 급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안해하는 상대에게 속으로는 쓴웃음을 삼키면서 괜찮다고 하는 수밖에.
사무실 복도에서 만난 멕시코 출신 동료에게 맛있는 멕시칸 레스토랑을 갔다며 자랑하고 싶은데, 위치를 알려줄 방법도, 먹었던 음식을 보여줄 방법도, 정확한 이름을 알려줄 방법도 없다. 그저 두리뭉실한 이야기만 전할 뿐. 마치 예전에 세계의 다양한 요리들이 나온 요리책을 보면서, 어떤 맛일까 상상해 보는 것과도 같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계속되는 "불안".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마치 없어진 휴대폰을 찾는 것과도 같은 불안감.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잡히는 차가운 감촉의 얇고 네모난 물건이 없다는 것에 대한 허전함. 이런 것들이 한동안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폰리스의 삶에 적응되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없어지자 점점 폰리스의 삶에서 긍정적인 측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어차피 예전에는 휴대폰 없이 살지 않았던가.
삶은 결국 하나의 관점이다. 삶의 정성적인 면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같은 사건과 상황을 개인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 관점에 따라 같은 상황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또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렇게 지속적인 불안감에 적응이 되자, 긍정적인 관점들이 서서히 수면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얼마나 긍정적인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인데, 그냥 "긍정적"이 아니라,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올해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일이었다.
비견될만한 사건이래 봤자 올해 생애 첫 책을 출판한 일일 정도이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떤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을까?
우선, 집중력이 말도 못 하게 좋아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특히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날아오는 휴대폰 문자나 메일을 확인하느라 집중력을 빼앗기곤 한다. 그것도 아니면 갑자기 무언가 궁금해져서 휴대폰을 검색해 본다던가,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다가 지겨워져서 다른 음악을 튼다던가, 하다못해 지루해져서 휴대폰 게임을 살짝살짝 하곤 했는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자 온전히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시시 때때로 날아오는 문자나 메일 때문에 집중력이 많이 저하되었는데, 신경을 쓸 수도, 신경을 쓰지도 않고 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한 번에 처리하니, 원래 이렇게 바로바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집중력이 좋아지자 성과로 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새로 만든 프로세스에 대한 복잡한 문서를 만드는 작업이 있었는데, 이 지루한 작업을 5시간을 쉬지 않고 하루 만에 끝내버렸으니, 얼마나 생산성이 좋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평소 같았으면, 1주에서 2주는 걸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집중력이 좋아지니 또한 평소에 보이지 않던 이슈들에 대해서 더 깊게 파고들 수 있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배우는 것도 훨씬 많아졌다. 일을 하는 중에 무언가를 배워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요즘 놓치고 있었던 '배워가는 느낌'이 다시 들자, 14년 차 직원인 나에게도, 놀랍게도 일하는 '보람'이라는 것이 다시 생겨났다.
다음으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의 질도, 양도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읽다 지루해지면 책의 내용을 곱씹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업무 중에 있었던 해결 못한 일도, 출퇴근 시간에 곰곰이 생각해 보며 해답을 얻을 수도 있었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항상 "온라인" 상태인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모든 연결을 끊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만큼 들어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일 것이다. 다른 말로는 관조하는 시간, 나와의 대화, 혹은 그냥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만히 앉아서 혼자 생각에 잠겼던 것이 언제였는가? 혹시 생각에 잠긴다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지는 않았는가? 도파민 중독은 결국 빠르게 즐거움을 얻는 방법에 대한 중독인 셈인데, 도파민으로 뇌가 빠르게 절여졌던 것만큼이나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빨랐다. 폰리스로 산지 단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지루하게 느껴졌던 책들이 재미있고, 가만히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또한, 과도한 인구 덕에 메말랐던 우물처럼 메마른 아이디어의 샘에서, 다시 새로운 영감들이 샘솟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브런치에 쓸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겠다며 빈 노트를 들고 방에 들어가 휴대폰만 가지고 놀다가 빈 노트로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디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노트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니면 원래 있었던 아이디어들인데, 뇌가 절여진 탓에 출력이 안되었다고 해야 할까.
가족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제일 긍정적이었던 것은,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점이다.
우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을 하게 되니, 아이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자기 전에 아이에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일들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들을 짤막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아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특히, 어렸을 때 놀다가 길을 잃었을 때 마주쳤던 펭귄 모양의 쓰레기통 (종량제 시행 전이라, 그때만 해도 거리에 쓰레기통이 있었다) 이야기는 거의 매일 다시 들려달라고 할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다.
회사에서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대화를 하면서도 휴대폰을 계속 체크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 대화에 온전히 집중을 하게 되니, 그들에게 더욱 공감을 해줄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소통이 훨씬 좋아졌다. 한 직원은 최근에 이혼을 했는데, 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모퉁이 카페에서 우리도 모르게 한 시간이나 결혼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원래도 친했던 직원이지만, 이제는 '내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다못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생면부지의 타인에게도 친절해지고, 타인들도 내게 친절해졌다. 이게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 하면,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을 때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휴대폰을 언제든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휴대폰이 없다 보니 휴대폰이 차지하던 내 주의집중의 10%가 온전히 남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생면부지의 남에게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 기차에서는 안에서 버튼을 눌러야 나가는 문이 열리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쩌다 보니 버튼을 내가 몸으로 막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예전처럼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면, 누군가 요청을 하고 나서야 대신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런데 휴대폰이 없다 보니 이미 누군가 내리려는 동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이 요청을 하기 전에 미리 버튼을 누르게 되었던 것이다.
무척이나 작은 배려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보라.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간다는 사실을 누군가 미리 파악하고 버튼을 눌러준다면. 말하지 않아도 불편한 사람을 위해 배려를 해주거나, 작은 정성을 쏟아부어준다면. 이 작고 작은 배려들이 매일 같이 조금씩 쌓인다면. 결국 차가운 사람과 사람 간의 벽들도 녹아내리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삶의 보람과 영감의 폭발, 그리고 지구 평화에 보태는 일까지, 휴대폰 없이 산지 단 일주일 만에 벌어졌다. 어찌 보면 영화 [월-E]에서 로봇기술이 주는 편안함에 절여져 아무것도 못하는 돼지가 되어버린 인류처럼, 휴대폰이 주는 편안함에 절여져 우리 자신도 점점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이제부터 휴대폰 없이 살 거야.
나의 '폰리스 선언'에 아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휴대폰 없이 사는 것은 요즘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은행 업무나 다른 사소한 생활까지, 휴대폰 없이 사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노트북 컴퓨터가 없이 살거나 신용카드 없이 살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이 없이 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나의 폰리스 선언은 그래서 결국 [수정 폰리스주의]에 가깝다. 하이브리드 근무 덕에 일주일에 이틀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그 이틀간은 완전히 폰리스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 그리고 집에서는 아침과 저녁의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휴대폰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마 모든 것에는 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것처럼, 일주일 간의 폰리스의 삶이 주었던 긍정적인 변화들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갑자기 샘솟기 시작했던 영감의 샘도 곧 말라갈 것이고, 아이가 좋아하던 펭귄 쓰레기통 이야기도 아마 점점 지겨워질 것이다.
그러나 식생활에서 '탄수화물'을 빼는 키토 다이어트가 3개월 만에 18Kg 감량이라는 지속적으로 의미가 있는 결과를 주었듯이, 삶에서 '휴대폰'을 빼는 도파민 다이어트도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더더욱 모두가 예전이 더 좋았다는 말을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있었고, 새로운 신기술들이 새로 발명되었고, 또한 건강한 부모님 덕분에 걱정 없이 마음껏 꿈꾸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휴대폰이 없었어서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소수의견을 내보면서,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혹시나 지금 이 글을 휴대폰으로 읽고 있다면, 지금부터 잘 때까지, 휴대폰을 찾기 어렵진 않지만 찾기가 엄청 귀찮은 장소에 숨겨놓고, 폰리스의 삶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