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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Sep 12. 2024

내가 먹은 것들이 모여 내가 된다.

먹는 것에 대한 생각.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짧은 질문에 내 지식의 약 80%를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 "구글"은 다음과 같은 검색 결과를 들고 왔다.


산소 65%, 탄소 18%, 수소 9.5%, 질소 3.2%, 칼슘 1.5%, 인 1.2%.
(출처: 고등과학원)


같은 질문에 [칼의 노래]의 저자인 김훈 작가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과 항문이다. 나머지는 다 부속기관이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먹고 싸는 존재라는 것.


데카르트는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나뉘어있으며, 뇌의 중앙에 있는 송과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삼각형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와 같은 단순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아마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인간은 그가 먹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식도락가이자 영어로는 푸디(Foodie)라 자처하는 나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인간은 그가 먹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나)


근거는 충분하다. 굳이 복잡한 과학적 검증절차를 겪을 필요도 없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안 먹으면 빠진다.


이 사실만 놓고 봐도 인간은 음식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치킨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내 몸의 70% 정도는 치킨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정의하자면 30%는 양념, 30%는 후라이드, 나머지 10%는 간장, 까르보나라, 바베큐 같은 다른 치킨들이 차지할 것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내의 몸은 한 50% 정도 떡볶이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젤리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몸의 30% 정도는 젤리로 구성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서커스단원같이 몸이 유연하다.


그렇게 보면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몸도 달라지고 성격도 달라질지도 모른다. 성격은 결국 뇌의 성격인 것이고, 그 뇌는 결국 또 음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술에 절은 뇌”라는 표현이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술을 달고 사는 사람의 뇌는 아마 20% 정도는 술로 이루어져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술을 안 마셔도 취한 느낌이 들지도... (그래도 술을 마신다)


[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채식을 하는 그에게 핀잔을 준 농부 이야기를 썼다. 농부는 “야채만 먹고는 살 수 없지요. 뼈를 만들만한 음식을 못 먹게 되니까요 “라고 말한다. 농부는 초식이지만 튼튼한 소를 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농부는 먹는 것들이 그대로 몸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만약 먹는 대로 몸이 구성되었다면 이미 내 다리와 팔은 각각 치킨 닭다리와 날개로 구성되어 있었을 테니까.


인간의 몸이 먹은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정신은 그가 섭취한 다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읽은 책. 그가 본 만화. 그가 다른 사람과 나눈 이야기 등으로 말이다.


재료가 변하면 음식이 달라지듯, 인간의 정신과 육체 또한 무엇을 주로 섭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린 시절의 정신은 만화와 게임으로 만들어졌고, 자라면서 접해온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과 글, 이야기들이 지금 나의 정신을 만들어왔다. 물론 아직도 20-30% 정도는 만화와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맛있는 음식이 더 많이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은 심증이 있지만), 맛있는 이야기(?)는 확실히 정신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던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책들은 낱권의 책들이지만 학창 시절 읽은 교과서 모두를 합친 것보다 나의 정신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학 공식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이 책들의 내용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을 보면 그건 확실한 사실이다.


예전에 어떤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아이가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신혼 초에 일부러 잠자리를 가지기 전마다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대로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술기운을 빌어 태어난 아이들도 잘 자라는 걸 보면, 아마 별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딜레마가 있다.


나는 치킨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그런데 후라이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 살이 찐다. 몸이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치맥을 즐기는 순간은 너무 행복하고, 내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어렵게 써놔서 그렇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말이다.


치킨을 못 먹어서 몸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치킨을 먹어서 몸이 안 좋아지고 대신 스트레스를 줄여 정신이 건강해져야 할지. 몇 세기가 지나도 풀리지 않을 진정한 딜레마라고 하겠다.


다이어트가 필요해!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보던 가필드(Garfield)는 먹는 것을 좋아하는 뚱보 고양이 만화다. 지금은 만화영화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짤막한 4컷 이하의 만화였다.


한 에피소드에서 가필드는 다이어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힘들면 “Die (죽음)” + “T"일까라고.


영어 철자를 이용한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음식은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안 먹으면? 죽는다. 죽으면? 못 먹는다.


유사 이래 인류는 못 먹어서는 죽었어도 많이 먹어서 죽은 적은 없었다. 아마 지금이야말로 많이 먹어서 죽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대일 것이다.


물론 배 터지게 먹다가 결국 우물 안 개구리의 일화처럼 배가 터져서 죽는단 말은 아니다. 위는 원래 크기의 50배까지 늘어난다고 하니, 그렇게 쉽게 배가 터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많이 먹으면 비만이 오고,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원래 인간은 모두 죽지만, 비만으로 아프면 더 일찍 죽는다. 즉, 많이 먹으면 일찍 죽는다.


그래서 생명연장의 꿈을 안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아마 내 인생에서 157번째 다이어트이지싶다.


이번에는 예전 직장 동료가 열심히 해서 성과를 톡톡히 본 키토 다이어트 + 간헐적 단식을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그 친구는 몸무게가 160킬로가 넘었었는데, 키토와 간헐적 단식을 병행하자 6개월 만에 60킬로 감량에 성공했다.


요즘에는 잘 알려져 있지만, 키토 다이어트는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 그렇게 되면 몸에서 “키토시스”라는 반응이 일어나며 몸이 체지방을 연료로 쓰기 시작한다고 한다.


여기에 하루에 8시간은 먹고, 16시간은 공복으로 두는 간헐적 단식을 같이한다. 원래 간헐적 단식은 저녁을 굶는 게 효과가 더 좋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아침에 굶는 게 더 편했다. 매일 12시에서 8시 사이에만 먹고, 8시부터 다음날 12시까지 굶는 것이다.


이제 2주째 하고 있는데, 효과가 장난이 아니다. 뱃살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피부도 좋아진다. 부작용으로 가끔 현기증이 오지만, 물을 많이 마시니 괜찮아졌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면 살이 빠지고 체질이 개선되어 몸이 좋아진다. 그런데 정신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 채널이 3-4개에 불과했다. 5시쯤 시작하는 만화를 놓치면 다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만화 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곤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텔레비전은 잘 틀지도 않는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스마트폰에서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어떠한가? 온갖 전자책이 범람해, 예전처럼 도서관 구석에 숨어 책을 읽거나, 도서대여점에서 누군가 반납하지 않은 다음 권 때문에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책장을 넘기는 것도 귀찮으면 책을 읽어주는 영상을 읽으면 된다. AI가 책을 깔끔하게 요약해주기도 한다.


지나친 과식이 비만을 불러오듯, 지나친 문화와 정보의 홍수가 정신을 비만하게 만들지 않을까?


누군가 정신의 비만을 정의한 적은 없지만, 도파민 중독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진득하게 앉아 맛이 덜 자극적인 매체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키토 다이어트를 하면서 단식을 하고 곡기를 끊자, 입맛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간이 안되어있는 아몬드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던 것.


마찬가지로, 지나친 미디어 접촉을 끊는 정신 다이어트도 필요하다. 간헐적 단식처럼 시간을 정해 완전히 스마트폰을 끄고, 키토 다이어트처럼 양질의 글만 읽어야 한다.


이처럼 정신의 다이어트를 하면, 다시 책이 재미있어질지도 모른다. 국가적으로 도입하는 게 어렵다면 한 번 개인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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