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 입문기 (핫팩 세개로 버틴 겨울 밤)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남편의 동계 차박에 동행하게 되었다. 원래 나의 일정에는 없었다. 남편은 몇 주 전부터 딸과 차박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추울 것을 대비해서 가스히터도 사고, 분위기를 위한 조명도 사다 나른다. 매일매일 택배가 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여행이 시작되면, 나도 나름의 여행 계획이 있었다. 요즘 책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 도서관에서 보낼 생각이었는데, 완전히 틀어져 버려 화가 좀 난 상태이다. 계획했던 것을 타인에 의해 포기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짜증 났다.
동행하기로 한 딸은 며칠 전, 친구를 만나고 오더니 감기도 함께 데리고 왔다. 아픈 딸을 데리고 못 가니 남편은 혼자 간다고 했지만, 근무 중이던 오후 2시쯤 전화가 왔다.
"반차 내고 갈 수 있으면 함께 차박하자..”
“왜? 딸은 아파서 못 간대?”
“응, 자기 빨리 올 수 있어?” 물음에 들떠있다.
며칠을 준비한 시간이 안돼 보여서 동행하기로 했다.
'이 추운 날 밖에서 자다니, 동사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목적지는 실미도 유원지라고 했다. 해가 곧 떨어진다고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계획은 이렇다. 실미도 유원지로 출발하는 길에 회와 매운탕을 사고, 노을을 보며 술 한잔 하는 것이다. 석양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준비된 회를 가지고 유원지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이미 몇 대의 차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차들이 하나씩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다. 남편이 차에서 내려 이리저리 확인해 본다. 내게로 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현수막에 크게 걸려 있는 글씨는 “1월 ~2월은 캠핑을 하지 않습니다.”
"아.. 뭐냐.. 이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 보지도 않았어?"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더니,
“어.. 유튜브 보고 왔어"하며 머쓱해한다.
“아.. 이 황당함…"
두 번째 목적지를 빠르게 검색했다. 다행히 을왕리에 캠핑장겸 차박지가 있다. 바다라도 볼 수 있으니 좋은 선택이라 생각되었다. 차박 요금은 텐트 치는 비용과 같이 육만 원이 넘는 값을 지불했다.
이 금액이면 근처 모텔에서 자도 되는데…. 굳이 지불을 하는구나.
좀 아쉽다.
차 안은 좁고 추웠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회도 먹어야 하고 찌개도 차 안에서 끓여야 하고, 마지막에 라면도 먹어야 했다. 동선이 답답하다.
그래도 그는 좋은가 보다. 내 눈치를 살피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다리를 펴지도 못하겠다. 평탄화가 잘 안 되어서 높아진 곳에 앉았더니 머리가 천장에 닿는다. 나보다 키가 큰 그는 얼마나 답답할까?
"허리 안 아파?"라고 묻자
" 응, 나는 굽은 등이라 괜찮아."
하하. 귀여운 답변에 큰 웃음이 나왔다.
그래, 라면이 맛있어서 나도 모든 것이 좋아졌다.
육만 원이라는 비싼 자리 값은 결국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비용인가 보다. 화장실이 따뜻하고 깨끗하고 넓고 쾌적하다. 잠자리에 들려고 세수하러 왔다가 나가기가 싫어졌다.
차에 돌아와 보니 침구가 잘 정돈되어 있다. 세수한 얼굴은 땡땡 얼 것만 같다.
지난번에 캠핑은 다시는 안 할 거라고 내다 버린 초록색 미제 침낭이 몹시 그리워졌다.
남편은 집에서 덮던 오리털 이불과 담요를 통째로 옮겨왔다.
황금색 보자기에 질끈 묶은 이불 보따리는 마치 피난살이의 그 모습이다. 그 모습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나를 따뜻하게 해 주려는 남편의 마음도 느껴졌다.
우리는 침대보다 좁은 차 안에서 잠을 잔다. 바닥에 매트 한 장과 모포 두 장을 깔았어도 딱딱하다. 차의 바닥을 뚫고 올라온 냉기 덕에 숨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머리가 시리다.
영하 5도의 추위 속에서,
조그마한 핫팩 3개를 의지하고
그를 의지하고
또 나를 의지하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