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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u Nov 17. 2019

결혼 생활 개선 제안서



다시 잘 해보자



며칠 전, 내가 일하고 있는 채널이 어느 플랫폼의 자체 평가 결과 낮은 점수를 받았으니,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제안서를 내라고 연락받았다. 보통 플랫폼이 원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고, 그를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페널티가 있다. 개선 제안서를 통해 페널티를 받게 될 시점을 보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플랫폼에서는 채널이 ‘초방 비율’이라고 표현되는 ‘새로운 콘텐츠의 비율’을 높이기 원한다. 그렇다면 채널은 ‘콘텐츠 제작 또는 구매를 얼만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열심히 하겠다’라는 개선안을 제출해야 한다.



나의 결혼 생활에서도 남편이 나에게 원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고, 내가 그 기준을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하여 페널티(이혼)를 받기 직전까지 갔다가, 결혼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로 페널티 적용 시점을 잠정 보류하게 된 내용을 ‘개선 제안서’ 형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 결혼 생활의 평가 기준과 현재 점수

남편 인정률 60% :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점수 - 현재 30점 미만

집안 안정률 30% : 집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점수 - 현재 10점 수준

남편 자율성 10% : 남편이 사회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점수 - 현재 5점 수준

총 45점 수준..


*위 기준은 남편이 나에게 두서없이 흩트려놓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임의로 잡은 것이다. 대략 항목과 그의 중요도, 그리고 내 점수가 저 정도쯤 되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개선 제안서는 마케팅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임으로 사실에 근거하되 최대한 멋들어지게 쓰는 것이 좋지 않은가.





결혼 생활 개선 제안서



1. 결혼 생활 자체 평가


- 웬만한 친구보다 남부럽지 않은 찐우정!

15년 세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와 나이가 들수록 서로 외에 좁아지는 인간관계로 증명된 차별화된 찐우정 & 트루럽 결혼 생활


- 원하는 일이 있다면 물심양면 전폭 지원!

퇴사도, 대학원도 원한다면 가능! 혼자일 때보다 강해진 알 수 없는 심적 든든함과 혼자여서 걱정이었던 재정 문제도 둘이면 물적 문제없이 원하는 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결혼 생활


개선 제안서에 지적받은 문제점을 괜히 적어서 상대에게 한 번 더 각인시킬 필요는 없으니, 쓸데없는 반성 코드는 생략하세요.




2. 결혼 생활 개선 계획


- 결혼 생활 전격 개선으로 향후 최소 50년 유지 목표!


- ‘남편 인정률’ 대폭 확대

셀프 조정기간을 통해 깨달은 객관적 문제점 도출 및 남편이 나와 전혀 다름을 전적으로 인정! 추후 남편이 나와 다른 생각 또는 나와 다른 에너지를 표출 시에도 ‘남편 인정률’ 대폭 확대 가능


[증빙자료]

https://brunch.co.kr/@june0733/1



- 집안 안정률 만점 목표

남편 입맛 100% 활용! 내가 만든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 남편 입맛 집중 공략! 마음까지 녹이는 레시피로 집에서 최상의 편안함을 선사!


아침에 고기가 먹고싶다면 새벽배송 감행!
분식과 파스타가 동시에 먹고싶어도 가능
가볍게 먹고 싶은 날은 바지락 술찜, 명란덮밥, 토마토 절임 샐러드 제공
레트로트로 시간 단축과 취향 저격 동시에!
콩나물밥&감자전 세트와 같은 건강한 한상까지


그 외, 집안 안정률 제고를 위해 남편에게 집안일 잔소리 횟수 기존 대비 30% 수준으로 축소 운영 중.



- 남편 자율성 10% 달성 가능!

남편이 먼저 연락하기 때문에 신뢰도 확보 상태. 남편 밖에 있을 때 먼저 연락할 때까지 냅둠으로 자율성 100% 보장.







이혼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그간의 내 노력들을 다소 장난처럼 풀어댔으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이게 무슨 노력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 부부는 사실 ‘결혼 생활 개선 기간’ 동안 살얼음같이 바삭거리는 집안 분위기를 누가 먼저 깨트릴까 봐 조마조마하며 숨을 죽이고 살았다.


나는 ‘남편 인정률’을 높이는 행동이 때론 버겁고, 속이 미어지게 답답하여 세탁실에 튀어 들어가 욕과 눈물이 터진 적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그에게도 ‘결혼 생활 향후 50년 유지’라는 명확한 목표가 힘겹지만 있었어서 우리는 그 바삭거리는 살얼음을 서로 조심하며 봄이 그리고 여름이 오기를 각자 처절하게 노력하며 기다렸다. 이혼은 혼자의 결심으로 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도 내가 막고자 하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고, 내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들 남편에게 막연하게라도 같은 목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장에 내가 몸 담은 채널의 페널티 적용 시점이 보류됐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결혼 생활 페널티는 잠정 보류로 결정이 됐다. 다음 평가기간에 몇 점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를 해본다.




결혼 생활의 목표를 함께 공유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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