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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파 유미경 Apr 21. 2020

국물 속에서 발견하는 뜨거움

국 먹기는 여름과 같이


한겨울 추위에 전철을 기다리며 온몸을 떨어봤던 사람은 안다. 호호 불며 마셨던 자판기 커피 한잔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요즘 다들 하루에 커피 한두 잔씩 마시니, 국민 전체를 보면 엄청난 커피가 소비되고 있을 것이다. 혹시, 뜨거운 된장국물을 먹지 못해서 '무의식적으로' 커피를 찾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에게는 아침밥과 된장국’ 중요시하고, 오래 먹어온 문화가 있다. ‘국물 문화’는 오랫동안 한국 문화에 대한 칼럼을 썼던 이규태 평론가가 처음 언급했던 말이다. 그에 따르면 국물 식품의 특성은 '혼자만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 먹는데' 있다. 그는 한국인들이 개체의 선택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내세우는 습성으로 이 비유를 들었다. 하지만 한 그릇의 국이란, 오롯이 내 몫의 음식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가 ‘국물도 없다’라고 할 때는 상대방에게 최후통첩을 보내는 아주 무서운 말이 되는 것이다.

  

이미 국물 문화 속에서 한국인 동질성의 본질이 포착됐다면, 나는 국물 속에서 ‘뜨거움’을 발견하고 싶다. 정확히는 뜨거운 국물의 효용성이다. 국물은 모름지기 뜨거워야 한다. 식은 국은, 식은 죽만큼이나 그 맛이 반감된다. 18세기 빙허각 이 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국 먹기는 여름과 같이'란 말이 있는데, ‘여름처럼 뜨겁게’ 먹으라는 말로 해석되고 있다.    


뜨거운 국이 좋은 과학적인 이유? 일본인 의사가 쓴 <체온을 1도 높이면 면역력은 5배 올라간다>란 책에서 찾아본다.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습관이 바로 '병 없이 사는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온열 동물이다. 정상 체온 36.5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추운 겨울날 소변을 보고 나면 덜덜 떨리는 것은, 몸을 떨어 체온을 올리려는 반사작용이라고 한다. 이로써 체온이 얼마나 외부 변화에 민감한지 짐작할 수 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되는 식품을 주기적으로 먹어 주어야 한다. 가공식품 대신 식이섬유가 많은 자연식품,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찬 음식보다는 따듯한 음식이 좋고, 차가운 탄산음료보다는 따끈한 차가 더 좋다. 체온이 높아지면, 우리 몸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면역작용이 활발해진다. 그것도 5배나. 예를 들어 15분간 빨리 걸으면 체온이 0.5도 올라가고, 5천 미터 장거리를 뛰면 3도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그럼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는 어떨까? 온도 변화를 체크해 보지는 않았지만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는 것을 보아 체온이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건강하려면 체내 면역작용이 활발해야 한다. 그 면역작용의 70~80%는 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장 건강은 장내 유익균에 달려있다. 된장 1g 속에는 10억 마리 유익균이 있다. 된장의 유익균과 장내 세균과는 어떤 교감을 갖고, 어떤 작용을 하는 걸까? 다른 국보다 된장국의 면역작용은 얼마나 뛰어날까? 뜨거운 된장 국물이 장까지 내려갔을 때 우리는 뜨끈한, 시원함을 느낀다. 그 시원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장내 세균의 활성과 관계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많은 부분이 풀리지 않은 채, 의문으로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국물 속에서 '뜨거운,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은 한국인의 DNA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된장국을 먹어온 것은 그만큼 속이 편하고, 몸에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국이 필요하다. 우리 민족의 오래된 국물 문화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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