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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에서 배우는 삶의 이완

억지로 애쓰지 않는 이완된 삶을 향해

 오늘 새벽 5:30분. 요가원에 나가 요가를 하는데 신기한 체험을 했다.

 이전에도 요가를 하면서 세 번 정도 인상 깊은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의 체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요가에서는 호흡과 시선(드리티시)을 중시한다. 한 숨에 한 동작을 하며 동작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오늘은 내가 머무는 시선에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곳의 영상이 펼쳐졌다. 깊이 응시하면 할수록 시간을 거스른 과거의 영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주도 삼무공원의 뒷골목에 있는 우리 집. 세 들어 살던 황토색 대문의 단칸방 집. 주인집에서 키우던 여러 식물들과 그 식물들에게 물을 주던 아저씨. 그리고 네 가족이 함께 쓰던 화장실. 촉촉하게 물을 머금은 식물들의 내음까지 세세하게 펼쳐진 그 영상과 그 영상 안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이 되살아나 따뜻해지기도 했다.


 한 숨에 한 동작. 시선을 옮길 때마다 시간은 멈춘 듯이 고요했고 아주 깊고 또렷하게 영상들이 떠올라 나는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만나고 아이와 안고 아이와 대화하는 모든 것들이 먼 훗 날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무척이나 소중하게 순간순간이 다가왔다.

 

 가끔.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삶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삶이 아득해지고,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눈이 부시다. 오늘의 태양도 너무나 눈이 부시고, 내가 몸담고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나의 가족과 그리고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작지만 아늑한 우리 집. 모든 것이 함께 있으면서도 그립고 아득해진다.

 나를 조금은 돌이켜 볼 여유가 생긴다.


 내 삶을 돌이켜 보면 나는 늘 중요한 문제들로 둘러 싸여 있었고, 바빴다.

 한 번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 내 앞에는 항상 몰입을 요구하는 일들, 아주 중요하여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대학 입시가 그랬고, 회사 입사를 준비할 때에는 회사 입사가 그랬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그랬고, 결혼을 준비할 때, 임신을 준비할 때, 그리고 출산과 육아를 준비할 때 모두 그랬다. 나는 미래의 일들을 준비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늘 다가올 일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의 일들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져 신경질적이 된 적이 많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을 이완시키고 싶어서 술도 많이 마셨다. 위장은 항상 쓰렸고 살이 찔 틈이 없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결과 여러 가지 소득은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았어도 내가 얻을 것들은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가에서는 아사나(동작)가 되지 않을 때 하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이완하여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완하여 들어가면 되지 않던 동작들이 오히려 잘 된다. 하려고 하는 생각을 조금 내려놓음으로써 근육으로 긴장되지 않은 텅 빈 몸에 힘이 아닌 에너지가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잘 하려고 애썼던 지나간 많은 일들 중 뚜렷하게 정말 중요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하나하나 소중한 기억이기는 하지만 안 되는 걸 억지로 애를 쓰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해야 했던 일들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그저 중요한 일에 나의 에너지와 애씀을 갈아 넣어 그것을 성취함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삶의 패턴 속에 살았던 것이 아닐까. 미래에 대한 걱정과 성취와 보람, 타인의 기대와 부응. 그 반복 속에 중요한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100m 달리기를 추구해 왔던 것 같다.

 

 최근의 상태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올해 12월 출간을 앞두고, 나에게는 책을 퇴고하고 마무리하는 것만큼 세상에서 중요하고 큰 일은 없는 것처럼 책 퇴고에 몰입하고 있다. 과하게 아등바등 애를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만큼의 몰입을 하며 한 걸음을 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애를 써야만, 나를 소모적으로 대해야만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익숙한 삶의 패턴으로 인해 머릿속 생각의 흐름을 제어하기가 힘들다.


 오늘 아침, 요가를 하며 과거의 나를 보며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마치 과거 속의 나를 바라보듯 바라본다. 

 매번 중요한 일들이 있었듯 이 일들은 내 삶의 한 과정이자 일부임을 이해한다. 내 몸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직 내가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머리로는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한다. 긴장하고 애쓰고 몰아붙이지 않아도 될 것들은 자연스럽게 성취가 될 것임을. 그리고 내 능력 밖의 것들은 더 많이 빨리 쟁취하고자 해서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노력을 기울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다려야 하는 것임을.


 필요한 것은 오늘의 나, 지금 여기에 숨을 쉬고 있는 이완된 삶의 태도임을 생각해 본다.

 아직 머리로만 어슴프레 알 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현실이지만 이 또한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요가로 이완하듯, 삶의 이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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