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바닥은 어디인가.
2024. 8. 6. 화
아이들에게 즐겁고 나에게는 부담인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직장은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한시간정도 가야한다.
전남편의 직장이 집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에 방학 동안 아이들 점심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전남편이 집에 와서 아이들과 같이 먹곤 했었다.
이제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으니 점심한끼 정도는 스스로 챙겨먹을 줄 알아야 한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했지만 어릴적 나처럼 벌써 애어른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둘째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야 전남편이 바람난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큰아이는 홀수일 둘째아이는 짝수일
태어난 순서에 맞게 밥 당번 장금이를 정했다. 걱정스러워 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냉장고만 열면 꺼내먹을 반찬이 있는데 세상에 이렇게 편한 장금이가 어디 있냐며 엄마는 걱정 말고 일만 잘하고 오라고 오히려 아이들이 날 안심시켜줬다.
내년에 중학교에 올라가는 큰아이는 올 여름 방학특강을 다 듣고 싶다고 했다. 덩달아 둘째도 여름방학 특강을 듣고 싶단다. 그리고 지난 겨울방학때부터 우울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보내기 시작한 배드민턴 강습도 계속 받고 싶다고 했다. 급여는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데 학원비 지출이 갑자기 늘게 되었다.
배드민턴을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야반도주 하듯이 집을 나가버린 아빠를 보고 아이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매일매일이 위태롭던 지난해 둘째 아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둘째가 친구들에게 신경질을 많이 내고 다툼이 잦으며 선생님이 조금만 뭐라고 해도 자주 운다고 했다. 하루하루 버거운 것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였다. 스트레스를 풀고 기분 전환도 하고 배워두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것저것 찾아보다 시작한 것이 배드민턴이었다.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나서 둘이서 싸우는 것도 줄었고 표정도 밝아졌고 자신감이 생긴게 눈에 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고단한 하루도 눈 녹듯 사라졌다.
빠뜻한 살림이었지만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정 엄마도 그러셨다. 저녁 지을 쌀을 팔더라고 공부하고 싶다면 책을 구해오셨다. 친정 엄마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동네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시키고 공장으로 보내라고 하셨지만 동네사람들한테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한이 있더라고 6남매 모두를 대학공부까지 시키셨다. 한글만 겨우 깨친 여자 혼자 시골에서 남편없이 6남매를 키운다는 것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고달프고 서글픈 삶이셨을 것이다. 그런 엄마 덕분에 나도 지금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나도 엄마가 되고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니 그때의 엄마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간다. 갑자기 남편을 사고로 잃은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의 반찬으로 구워 줄 삼겹살을 알아보던 중 인터넷에서 싸게 판다는 글을 발견했다. 리뷰도 괜찮았고 주문건수도 많은거 같았다. 판매된다는 고기 사진도 좋아보였다. 땡잡았다는 라는 생각에 나도 얼른 주문했다.
아이들은 방학 기념으로 엄마가 고기를 구워준다니 엄청 신이났다. 나도 득템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사는게 뭐 별거냐, 애들하고 맛있게 먹고 즐겁게 살면 되지’ 이혼 후 잘 살고 있는 내자신이 대견했다. 그런데 막상 택배로 온 고기는 인터넷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신선해 보이지 않았고 비계도 많았다. 한푼이라도 아껴볼 생각으로 알아보고 산게 고작 이정도라니.... 속은 기분이었다. 역시 고기는 인터넷으로 사는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이건 내가 먹고 아이들 먹일 고기는 동네 정육점에서 새로 사서 구워주기로했다.
바로 사온 고기와 달리 내가 인터넷으로 산 고기는 정말 상태가 별로였다. 지방도 흰색이 아니고 누리끼리했으며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이 다 먹으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본전 생각에 속이 쓰렸지만 결국 다 버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데 아깝다고 먹은 고기가 결국 탈이 났는지 속이 울렁거리면서 너무 안좋았다. 어지럽고 머리가 날카로운 것에 찔리듯이 아팠다. 결국 뒷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쓰러지듯 먼저 잠이 들었다. 토할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에 눈을 뜨니 어스름하게 해가 뜨고 있었다.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잤다. 입술이 마른 것 같아 물 한잔 마셨더니 순간 속이 뒤집어지더니 구토가 나왔다.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했다. 방금 먹은 물이랑 노란 액체가 나왔다. 단단히 체한 것 같았다.
일찍 병원을 다녀오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출근하자마자 외출을 내고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내과를 갔다. 월요일이라 대기환자들이 많았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식중독인거 같아서 소화제 좀 처방 받을려구요“
‘죄송한데요, 저희는 소화기쪽은 안봐서요, 길 건너에도 내과 있거든요 거기로 가보세요”
소화제 처방 좀 받고 싶어서 왔는데 길 건너 내과로 가라니. 접수대 직원의 말에 빈정이 상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손으로 짚은채 길건너 내과로 갔다.
길 건너 내과에도 대기환자가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찾으시는 원장님 있냐는 물음에 최대한 빠른 원장님으로 해달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원장님이셨다. 나이가 너무 들어보이셔서 제대로 된 처방을 해주실지 걱정이었다. 체한 것 같으니 소화제만 처방받을 생각이니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빨리 약타고 회사가야지. 어디가 아파서 왔냐는 물음에 어제 저녁에 상한 고기를 먹어서 체했는지 머리도 깨질 듯이 아프고 어지럽고 오늘 아침에는 물을 마셨더니 속이 역해서 먹은 물을 다 토했다.고 말하며 소화제 처방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 원장님의 반응이 의외였다.
“내가 그깟 소화제는 얼마든지 처방해 줄 수 있는데, 겁 주는 건 아니고 단순히 체한게 아닌거 같아. 신경쪽이나 심하면 뇌쪽에 문제가 있는거 같아”
그러면서 간호사를 호출하셨다.
“여기 이 환자 진료의뢰서 발급해줄테니깐 그거 주고 그냥 천원만 받고 보내세요.”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나는 어제 상한 고기를 먹고 체했는데 이 의사 할아버지는 지금 신경이나 뇌쪽에 문제가 생긴거 같다고 큰병원으로 가보란다.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나이가 많아 실력이 녹슨 할아버지 의사의 말이라고 무시하자니 찝찝했다. 결국 회사앞 대학병원에 신경과 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ct, 심전도,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비용도 상당했다. 나는 지금 돈 한푼도 허투루 쓰면 안되는 빚쟁이인데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 싶었다. ct결과를 들으러 가면서도 건강하다는 확인을 이렇게 비싸게 하다니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내 뇌사진을 보던 신경과 교수님은 두통이 언제부터 있었냐부터 가족중에 뇌질환을 앓는 사람이 있는지, 뇌ct는 처음 찍어본거냐고 물었다.
“뇌에 종양이 있어요. 신경외과 쪽으로 연결을 해줄테니 그쪽 교수님께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세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신경외과까지 갔다
뇌에 종양이 있는게 맞으며, 저번에 체한 것 같은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뇌mri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나를 암환자 산정특례 등록을 해주셨다.
그동안 지옥 같았던 전남편과의 이혼소송이 이제 막 끝나고
뻔뻔한 그여자와의 상간소도 끝났다.
과거는 잊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잘 지낼 날만 남은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은 뭐가 그렇게 역동적인지 눈물이 났다.
남편이 상간녀에 미쳐 처자식 버리고 집 나갔을때가 내 인생 바닥인줄 알았는데,
상간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 어이없게 끝났을 때 그때가 내 인생의 진짜 바닥인줄 알았는데,
내 인생의 비참한 바닥은 거기가 끝이 아니였다.
내 나이 40대 중반, 키워야 할 2명의 자녀는 이제 겨우 초등학생, 갚아야 할 빚 1억 몇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쌍한 이 여자는 오늘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