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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0. 2023

6화 완벽주의 말고 최적주의

'나는 어쩌다 완벽주의자가 되었을까?' 저를 오랫동안 괴롭힌 질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예민하고 강박적인 제 자신이 참 싫었습니다. 자신의 기준보다 세상이나 타인(특히 부모)의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컸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과정을 즐기지 못했고 결과나 성과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부지기수였고요. 결혼 전 남편과 함께 살 때는 제 자신의 엄격한 기준들을 상대에게도 적용하여 항상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제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의 끝은 결혼이 아니었겠죠.


완벽주의를 극단적이고 병리적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강박증에 가깝습니다. 강박증은 불안 장애의 일종이므로 완벽주의 역시 불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그 불안을 감소하려는 방향으로 행동이나 사고가 격려되고 반복되는 것, 그 '강박'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완벽한 상태)를 희망할 때 우리는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완벽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요, 어떤 사람이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두고 계속해서 노력하여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정도의 완벽주의라면, 성장을 위한 건강한 동기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높은 기대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혹은 결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패가 너무 두려워 시도조차 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게으른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불안에 압도되어 시작과 선택을 계속해서 미루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한 번 마음만 먹으면, 시작만 하면,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어'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허황된 신념은 아닐 거예요. 정말 마음먹고 시작하면 완벽주의의 장점을 한 껏 발휘하여 훌륭하고 알찬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겁니다. 시작만 하면요. 하지만 그 사이 어느 누군가(최적주의자)는 이미 일을 시작하여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단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과정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그렇게 겪어 나가는 작은 실패와 성공들이 결국 자신을 성장시킨 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최적주의의 핵심은 '인정하기'입니다. 실수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기, 결과가 좋지 않아도 노력했다면 결과에 승복하기, 자신을 압박해 왔던 기준들을 돌아보고 비현실적인 것들을 수정해 나가기, 그렇게 변화해 나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완벽이 아닌 최선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기. 이렇게 최적주의는 현실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크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실망은 하겠죠. 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무를 심지도 않는 완벽주의와는 다릅니다. 시작은 했더라도 '내가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나무를 심으면 난 반드시 열매를 얻게 될 거야'라고 믿어 버린다면,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얼마나 크게 실망하고 좌절할까요? 과연 나무가 커 가는 걸 지켜보며 열매를 기다리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 모호하고 불확실한 삶 속에서 '휘어지느니 끊어지겠다'의 자세로 살아가는 건 나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습니다. 우울한 삶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최적주의자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지하고 '그럴 수 있지, 그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할 때, 완벽주의자들은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에(부정적인 감정을 삶의 오류라고 생각) 삶에 대한 탄력적인 태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극도로 민감해지며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이 나에게 있지 않다'는 착각 속에 좌절과 허무감에 빠져 우울해집니다. 하지만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은 늘 나에게 있었습니다. 어디 간 적이 없어요. 힘을 내어 한 번 손을 꽉 쥐어 보세요.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 주고 다독여 주세요. 계속해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너무 자신을 채찍질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예뻐해 주세요. 내가 나를 예뻐하지 않으면 그 결핍을 바깥에서 찾게 되지만 그 허기는 외부로부터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저는 타고나기를, 예민하고 조금은 신경질적이며 우울감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성격(personality)은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들 하지만, 특질(trait)은 바꿀 수 없다고 하죠. 최적주의자인 남편을 만나 조금 느슨한 아들을 키우면서 삶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저와는 다른 기질로 태어나, 예민하거나 신경질적이지 않고, 문제점보다는 장점을 먼저 보고(그래서 어질러진 방의 문제점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들만 있으면 그저 행복해집니다) 자기에게 잘못을 한 사람을 쉽게 용서해 줍니다. 저와는 다른 유형의 두 사람과 살아가면서 예민한 제 자신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고 계획을  세우고 계획이 틀어지면 목표를 위해 재빨리 계획을 변경해 몰두하고, 이런 제 성격이 항상 저를 힘들게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몰아세우고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 불만족스러워하는 불행한 삶을 사는 이유라고요. 하지만 제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할 건 하나였습니다. 성격 개조를 해서 완전히 다른처럼 바뀌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방법이 아닌 그저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해 주기. 가지고 있는 조건들 내에서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하기. 그랬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하다. 충분히 행복하다. 저는 그거면 된 것 같습니다. 매일이 충분하고 매일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렇게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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