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기뻤던 날들이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분명 있었을 텐데요.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컸어도 성향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삶의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다 큰 마당에 양육 환경만을 탓하며 '난 행복하긴 글렀어'라는 비관으로 남은 인생을 황폐하게 살아내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부모와의 갈등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주저앉히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난 사랑받고 있어, 난 좋은 사람이야'를 되뇝니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매일 노력하고 연습해야 어느 순간 내 것이 되는, 긍정적 태도가 몸에 벨 때까지 기간이 얼마나 될 지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힘든 여정입니다. 그래도 저는 마치 이불을 정리하거나 머리를 빗듯 매일 잊어버리지 않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합니다. '이 정도면 훌륭했어. 오늘 잘 보냈어. 내일도 괜찮을 거야'
한창 긍정심리학을 공부하던 시절, 서은국 선생님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인간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이라는 행복의 목적론적이고 철학적인 역할에만 익숙해 있던 제게 다른 관점에서 인간의 행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간단했지만 신선했고 책을 읽는 내내 많이 안도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행복은 삶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 즉 수단이었습니다. 고차원적인 삶의 목표 또는 내가 노력해서 죽기 전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 순간 실현 가능한 것이었다니. 그렇게 저자는 우리가 'becoming에 집착하여 살지만 정작 행복을 경험하는 곳은 being이다'라는 단순하지만 대부분의 우리가 잊고 사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줍니다. 그러자 갑자기 행복해지는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창하게 이루어 내야 할 어떤 것이 아닌 그저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함께 웃고 먹고 잠들고 하는 사소한 일상이 모두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감사의 마음이 오래 머물지는 않습니다. 비관주의자인 제게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거든요. 아차 하는 순간에 이미 마음이 비관의 강을 건너 하염없이 극단으로 떠내려 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내어 예상? 하고 있어야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제게,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현재에 머물기'는 어떠한 과제 보다도 어려운 난제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연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궁금증(대체로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한)이 해결되어 좋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그 시간을 사랑하는 건 우리가 매일 의식처럼 하루의 rose, thorn, bud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가족 간의 대화에 포맷이 있다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두 번 하니 금방 익숙해졌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서로 묻고 답해줍니다. Rose,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 혹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됩니다. Thorn 은 슬프거나 아팠던 순간, 육체적이든 감정적이든 상관없습니다. Bud는 내일 혹은 가까운 미래에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되고요. 그렇게 세 가지를 각자 이야기 하고 나면 우리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 이해하기가 이전보다 쉬워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아이가 rose를 이야기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습니다. 저 역시 하루를 살아 내며 그냥 흘려버린 한 순간이 사실 저의 rose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현재에 머무는 행복'을 잠시 경험합니다. 행복을 경험(인지)하는 연습을 이렇게 매일 간단하고 사소하게 해 나갑니다.
행복하기를 실천하기에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긍정심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탈 벤 샤하르의 Happier와 Eevn Happier입니다. 자기 계발서처럼 쉽게 읽히고 단순 명료하지만 매일 혹은 매주 연습해 보기에 아주 좋은 책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We can learn to be happy,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배울 수 있다, 입니다. 제가 하는 방법으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셔도 좋고, 책(Even Happier)에 나와 있는 대로 Gratitude Journal(감사 일기)을 써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처음에는, 안 해본 것들이라 어색하고 감사 일기를 쓰기 위해 경험을 쥐어 짜내는 것 같은 주객전도의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고 정말 쓸 것이 없어서 자신의 처절한? 현실을 비관하며 더욱 낙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마시고 조금만 더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몇 줄이 어렵다면 한 줄이라도, 그것도 힘들다면 단어의 나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쌓이는 하루하루의 경험이 축적되어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달라져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탈 벤 샤하르가 정의하는 행복, 'the overall experience of pleasure and meaning 즐거움과 의미의 총체적 경험'을 하고 계실 거예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의 악몽이 지배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현재를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실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저 역시 아직도 노력 중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일어난 일을 후회하고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살았던 과거와는 다르게, 많은 시간 현재 감정에 충실하고 주변에 감사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외에 나가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예전엔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흘릴까 예민하게 아이를 지켜보며, 십중팔구의 확률로 더러워지는 아이의 옷을 빨 생각에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정작 제가 먹던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이었는지,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로요. 지금은 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는 것은 덤입니다. 서은국 선생님이 말씀하신 '행복'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행복은 결국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한 것들을 좇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남은 옵션은 하나다. 모든 아이스크림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여기저기 묻혀가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내 이럴 줄 알았어, 거봐 엄마가 뭐라 그랬어'라고 핀잔을 주는 대신 '딸기 아이스크림 진짜 맛있다. 네 건 어때? 맛있어?'라고 물어보는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이런 제 자신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