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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7. 2023

7화 손 닿는 곳에 놓아두면 좋은 책

The Book You Wish Your Parents Had Read

2014년 3월 런던센트럴. 신혼이었던 저는 남편과 한 예술가의 토크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그레이슨 페리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현대예술가, 작가이자 여장남자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이 없이 참석한 토크에서 처음 본 그레이슨 페리의 모습은 사실 충격적이었습니다. 중년의 남성인 페리는 두꺼운 메이크업에 가발을 착용하고 여성복장을 하고 무대에 섰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개최된 토크에서 남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는 자유롭고 따뜻하며 유쾌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처럼 보였습니다. 토크는 즐거웠지만 이후 딱히 그의 작품(세라믹공예, 태피스트리)들이나 전시회를 기웃거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 5년 후, 그의 아내이자 영국에서 20년 넘게 활동 중인 심리치료사 필리파 페리의 책을 접했습니다. 영국으로 이민 오며 거의 대부분의 책을 팔거나 남을 주거나 했지만 이 책을 포함해 몇 권은 제 가방에 넣어 왔습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해서 내가 꿈에 그리는 엄마가 책으로 환생하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거나, 실수로 관계를 망칠까 봐 두려워 조바심 나거나, 어떻게 하면 내 아이에게 따뜻하고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그럴 때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물론 이 책이 양육의 진리,는 아닙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지름길도 아니고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들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죠. 제게 이 책이 갖는 의미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책을 통해 제가 배웠던 것들, 과거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The Book You Wish Your Parents Had Read. 부제는 and Yor Children Will be Glad That You Did. 당신의 부모가 읽었으면 좋았을 책(내 부모가 이 책을 읽었고 나를 다르게 대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읽었다는 사실에 당신의 아이들이 기뻐할 책.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부모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아이가 떼를 쓰기 시작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울기 시작하면 보통 우리는 그 부정적인 감정들을 없애주려고 노력하는데 에너지를 씁니다. 아이에게 불편한 것들을 알아서 제거해 주고, 짜증을 거두어야만 원하는 걸 들어준다는 협박을 하거나 우는 아이 앞에서 무기력해지거나 오히려 더 화를 내는 수많은 실수들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페리에 따르면,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들은 표출하는 순간이야 말로 우리가 아이들에 대해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사실 즐거운 순간에는 복잡한 감정프로세스가 필요하지 않잖아요. 내가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왜 그런지 들여다보고 그 감정들에 적당한 이름을 붙이고 동물적인 반응을 인간적인 사고의 과정으로 이끌어 올려 나에게 이롭도록 대처하는 과정, 우리는 그 성숙한 '감정해결과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이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때 회피하거나 거부하거나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아이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도록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저 억누르려고 하면 당장 나는 편해지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했을 때 혼나거나 외면당하거나 맞은 기억이 제 안에 깊은 상처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소심하고 예민한 저는 '올바르게 처신하는 법'을 재빨리 터득해서 일찌감치 부모의 말을 절대 거스르지 않는 착한 딸이 되어 그 모습으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살아보려고 한 순간, 제 안의 모든 상처와 과거의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밖으로 흘러넘쳤습니다. 저는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매 순간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 일은, 밤사이 다섯 번씩 깨는 신생아를 돌보는 것만큼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어요. 저에게는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번에 잘할 수 있어, 다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부모가 필요했었습니다. 그 역할은 제 남편이었고 제 상담선생님이셨고, 그리고 이 책이었습니다.



페리의 책이 좋은 점은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해야 한다, 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요. 우리가 어떻게 길러졌는지 의식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렇게 놓친 기회들은 어느 순간 소중한 아이들에게 하는 실수들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며, 나와 똑같은 '슬프고 사랑이 더 필요한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이죠. 그럼 내 아이에게 어렵고 힘든 숙제를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심하게는 자기 인생에 만족하며 순간의 감정에 충실히 살아갈 기회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내 아이라고 뭐 다르게 살아야 돼?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별로 안 계실 거예요(없을 거란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내 아이가, 나보단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덜 힘들게 살아가길 바라실 겁니다. 그 출발이 내가 내 과거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이와는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이 일이 내 아이와의 관계를 향상해 나가는 데 아주 중요한 첫 단계입니다. 내 안에 억압되어 있는 욕구불만의 아이(어린 자신)를 인식하고 달래줘야 내 앞의 아이를 제대로 봐줄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상처가 크지 않고 무탈하게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체로 행복한 양육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겠죠. 하지만 저처럼 매일 노력하며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도 뿌듯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아이가 조금 더 놀겠다며 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절대 징징거릴 수 없었던 제 어린 시절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 아이는 슬슬 징징거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냅니다. 심호흡을 하고 같은 말은 반복해 왜 평일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지 설명해 줍니다. 그래도 볼멘소리를 계속하던 아이는 결국 입이 댓 발 나와 문을 쾅 닫고 욕실로 들어가 버립니다. 여기서 제게 선택권이 생깁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그대로 아이에게 험한 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상황을 악화시켜 아이의 태도를 바로 잡고 감정을 묵살해 버리느냐, 아니면, 또다시 심호흡을 하고 '더 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미 여러 번 얘기했듯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고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한번 더 이야기해 주느냐.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결정을 따라와 준 아이를 칭찬해 주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고요, 극적인 드라마(울고 소리 지르다 극적으로 타협) 연출도 몇 번 있었고, 아무리 좋은 말로 설명해도 아이가 계속 졸라대기도 했고요. 아이와의 실랑이로 기분이 이미 상할 대로 상한 제가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진심으로 해 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천번의 심호흡과 마음속 되뇜이 필요했어요. 근데, 그게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이니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른인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요. 그래도 제 내면의 힘을 믿고, 순간순간 끌어 오르는 감정을 잘 추스르는 자신을 칭찬해 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닥터페리가 에필로그에도 썼듯이, '실수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실수로부터 배워나간다'면, 그렇게 제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된다면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에게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번역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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