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May 26. 2023

9화 My Wheel of Well-being

연습은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저를 살린 건 책과 일기였습니다. 불안할 때마다 책을 꺼내 읽었고 슬퍼서 미칠 것 같을 때는 일기를 쓰며 감정을 가라앉혔습니다. 사춘기 시절 부모에 대해 주저리 써 놓은(좋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었겠죠) 일기를, 엄마가 볼까 무서워 면이 맞닿게 풀로 붙인 뒤 일기장에 자물쇠를 채워 두었는데(90년대 초 문구점에서 쉽게 구입 가능했던 비밀일기장), 엄마는 그 일기장 열쇠를 박살내고 풀로 붙여놓았던 페이지를 뜯어 제 일기를 읽었습니다. 그렇게 해 집어진 저의 감정 쓰레기통은 학교에서 돌아오니 책상 위에 보란 듯이 전시되어 있었고 뒷감당이 너무나 두려웠던 저는, 그 이후 한마디 말도 없이 저와 눈도 맞추지 않고 냉랭함을 유지하는 엄마의 비위를 맞추느라 한 달 넘게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정말 무서웠지만 그래도 일기 쓰기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안 쓰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폭발할 것 같던 화도, 스스로를 해 할 것만 같던 절망도, 심연 속에 가라앉는 것 같았던 슬픔도 모두 일기를 쓰고 나면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정을 객관화한다는 걸 몰랐던 그 시절에도, 어린 저는 그렇게 자구책을 마련하여 살아보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유행한 열쇠일기장 사진출처 amazon uk


감정의 소용돌이안에서는 중심을 잡기 힘듭니다. 생산적인 생각을 하기도 힘들고 무엇이 나에게 이로운지 판단하기도 힘들어요. 감정에 압도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감정들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 보시길 바랍니다. 혹은 내 감정을 대변해 줄 글귀를 읽거나 노래 가사를 듣는 것도 괜찮습니다. 요동치는 마음이 언어화되는 순간 우리에겐 거리를 두고 그 감정들을 관찰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 감정들이 옳았는지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폭발할 것 같던 큰 에너지의 감정들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감정으로 꽉 차 있으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한꺼번에 다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안에 쌓여있는 감정찌꺼기들을 조금 걷어내어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 필요한 요소를 찾기 위한 여행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에서 제시한 Health and Wellbeing Wheel이라는 모형이 있습니다. 8가지 영역인 건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영국 긍정심리학자 Miriam Akhter의 Wheel of Well-being이 더 이해하기 쉬워 Miriam의 모형을 차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형을 해 보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를 알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돌아봐야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할 영역은 어디인지, 혹은 다른 영역에 비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영역은 어디인지, 또 어느 영역에서 우리가 지금 잘해 내고 있는지 등등 모형을 통해 자신의 삶을 크게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각 영역의 만족도를 0점에서 10점까지 주시면 되고 중심 0에서 멀어질수록 점수가 높아집니다. 두 가지 항목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Spirituality는 우리 인생에 어떤 의미 있는 활동들이 있는지 돌이켜보고, 명상이나 정적인 활동을 통해 마음의 고요를 경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Resilience는 회복탄력성인데요,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곰곰이 돌아보시고 자신이 인생의 난관들을 헤쳐나갈 때 상심 후 얼마나 건강하게 빨리 회복하는지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자신만의 Wheel을 완성하셨다면 이제 눈에 띄게 낮은 점수 혹은 높은 점수 영역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 어느 부분이 잘 작동하는지, 더 초점을 맞추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파악해 보는데 아주 유용한 도구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셨으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각각의 영역을 쪼개어 구체적으로 표를 만들어 볼게요. 저는 현재 만족도가 낮은 자기 계발 영역에 관한 차트를 만들었습니다.

Hannah 의 Wheel of Well-being & Life planning chart 25.05.2023

이렇게 만드신 표는 잘 보실 수 있는 곳에 붙여두시고 자주 봐주세요. 처음부터 완벽하고 구체적인 표를 만드신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매번 표를 볼 때마다 수정을 하기도 하고 썼던 걸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수정을 해 가며 제 상황에 맞게 수시로 계획이 바뀌어가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떤 식의 계획과 수행이든 괜찮습니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이 중요합니다. 연습은 반복이고 습관입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해 나가시면 됩니다. 한동안 잊어버리고 못하셨어도 다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직접 만든 차트 스스로에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살아가다 보면 지켜지는 (자신과의) 약속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으니 좌절하지 마세요. 그냥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해 나가시면 충분합니다.



일 년 후의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변화 속에서 살고 계실까요? 지금 구체적인 계획들을 매일 실행해 나간다고 해서 일 년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간을 정하셔야 동기부여가 더 잘 되는 분도 있으실 테니 그렇게 본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계획을 세우시면 되고요, 저는 기대와 실망사이에서 널뛰는 기분을 감당하느니 처음부터 실망할 일을 적게 만들자는 생각이 크기 때문에 기간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기간이 정해진 코스를 수강하는 경우는 제외). 대부분의 계획은 장기전, 그래서 지치지 않고 반복하고 업그레이드해 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그 와중에 즐거움도 잃지 않으시길 바라고요. 사실 정말로 즐거운 건 '과정'이니까요. 




마지막이야기 10화 행복한, 아이 기르기

                                    행복한 아이, 기르기


 

이전 08화 8화 삶이 나에게 주는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