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빼앗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입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고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3년을 보내고 그 경험과 관찰을 통해 책을 집필하여 로고테라피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로고'는 '의미'를 뜻하며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찾아 삶의 동기를 부여해 주는 심리치료기법을 말합니다. 프랭클 박사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와 목적이며 이것을 잃었을 때 실존적 좌절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견디기 힘든 역경을 이겨내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고, 니체의 말처럼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 '의미'는 개인적이고 고유한 영역입니다. 오직 각자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절대적인 답이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찾아 줄 수도 없으며 비교 대상을 갖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 중 내가 얼마나 만족하며 앞으로 나아갈지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정에 '실패'란 없습니다. 가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궤도를 수정하여 다른 길로 가면 되고, 너무 빨리 가는 것이 싫다면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가면 됩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1999년 저는 재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IMF로 부모님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동생과 공용 화장실이 있는 월세 12만 원짜리 방 한 칸에서 1여 년간 둘이 살았습니다. 동생의 등교를 돕고 EBS 시청을 한 뒤 독서실로 향했습니다. 점심은 집으로 돌아와 챙겨 먹고 다시 독서실로 갔습니다. 학원을 다닐 돈도 점심을 사 먹을 돈도 없어 그렇게 교육방송만 시청하면서 독서실에서 홀로 수능을 준비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생애 이렇게 열심히 살 날이 또 올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수능을 보고 돌아온 날 앓아누워 이틀간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원하던 대학(어린 마음에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다짐했건만)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이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십여 년이 흐른 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밤마다 누가 볼까 작은 싱크대 옆 환풍구를 막고 샤워를 해야 했던, 그 불안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위해 노력했던어리지만 씩씩한 제가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가 비록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노력하고 견뎌낸 스스로가 대견하고 짠했습니다. 용감하게 버텼고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 그 시절은 저에게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로고테라피는 과거를 돌아보는 치료법이라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쪽에 가깝습니다.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아내어 실존적 좌절을 이겨내고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죠. 그래서 저의 이야기는(시간이 흐르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 경우) 로고테라피에 꼭 들어맞는 사례는 아닙니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가 그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누군가 저에게 그때, 모든 과정이 의미가 있고 그래서 제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었다면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Positive psychology by Miriam Akhtar
프랭클 박사가 제안 한, 의미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루트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일이나 행위를 창조함으로써 의미를 찾기, 둘째,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의미를 찾기, 셋째,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태도를 통해 의미를 찾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명확하지만 세 번째 방법이 모호한 것 같다면 맨 위에 언급한 프랭클 박사의 인용구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 최악의 조건에서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갈지 인식과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 자율성만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선택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는 한, 그래서 어떠한 태도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하는 한 우리는이미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거창하고 번듯한 삶의 의미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비교와 경쟁에 익숙한 사람은 삶의 의미 역시 외부로부터 찾으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설정된 보여주기식 목적과 의미는 필요 이상 화려해지겠죠. 하지만 바깥으로부터 결정된 삶의 목적은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뿌리는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결정은 나로부터, 그래야 즐거움도 진심일 수 있습니다.
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요. 돌아보니 의미가 있었던 과거의 시간들에서, 앞으로 제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돕는 제 모습이 참 좋고, 결과에 상관없이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매일 과거의 자신과 사투를 벌이며 더 나은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는 제가 너무 좋고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모든 행위, 함께 먹고 자고 책 읽고 영화 보고 대화하고 같이 운동하는 이 모든 일상이 즐겁습니다. 좋은 어른으로 살면서 좋은 아이를 길러내는 일, 은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업이고요, 그래서 그 일을 해 내가는 과정 중에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들이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생의 어느 부분에 도달해 계신가요? 과거의 여정이 힘드셨나요? 앞으로의 삶은 조금 더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밟아온 과거의 계단들이 지금, 이곳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서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새로운 계단들이 생겨납니다. 방향을 정하셨다면 그 길로 쭉 걸어가시면 되고요, 그 방향이 아니란 생각이 들면 잠깐 멈추었다 다시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계단을 디디시면 됩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더 나은 답이나 정답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