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의 생일 파티. 두 달 전 일찌감치 계획된 홈파티였다. 워터슬라이드와 화덕 피자가 준비될 테니 타월과 수영복, 그리고 굶주린 배(?)를 가져오라는 공지가 있었다. RSVP(어원은 프랑스어. Please reply란 뜻으로 파티에 초대받으면 참석 여부를 파티 주최자에게 알려준다)를 보내놓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내게 파티라니, 그것도 영국인들이 잔뜩 모여있는 파티... 상상만 해도 가슴이 옥죄어왔다. 남편만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반대로 그 마음은 애초에 접어야 했다.
조지 엄마가 보내준 구글 핀을 내비에 찍고 도착한 곳은 집 같은 건물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한적한 시골 버스정류장이었다. 남편과 당황해하며 조지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우리 뒤로 거리를 두고 주차를 하고 있는 토비네 차가 보였다. 눈치껏 버스정차라인을 피해 주차를 하고 토비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토비로 말할 것 같으면, 4학년 중 체격이 가장 좋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며, 어른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할 만큼 눈치도 빠른 아이다. 아이의 학교는 Grade 3,4가 같은 교실에서 수업받도록 특이하게 학급편성이 되어 있는데, 전학 온 첫날부터 아이는 토비가 게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리더 역할을 한다며 늘 그의 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해왔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토비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한 끝에 결국 아이는 두 달 전부터 토비의 팀에 들어가 점심시간마다 재밌는 게임을 한다고 신나 했다.
근데 토비의 엄마가, 문제다.
토비의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이곳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이에게 많이 지시적이고, '난 너와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의 분위기를 풍기는 차갑고 드센 이미지에, 말도 단호하고 무섭게 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겉모습만으로는 그리 따뜻한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선입견으로 판단해 버리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거봐, 내가 생각한 대로잖아, 역시 아닌 건 아니야'라고 편견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제가 그랬다.
나의 어떤 점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던 것일까. 파티가 열리는 두 시간 내내 그녀는 눈에 띄게 나만을 쏙 피해 가며 다른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도, 먼저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조지의 친척들, 학교 밖의 루트를 통해 초대받아파티에 참석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근황을 묻는 등, 수줍은 조지 엄마를 대신해 마치 파티 호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와 이야기하고 있던 테디 아빠에게 말을 걸면서는 나를 보란 듯이 제외해(?) 당황한 테디 아빠가 나를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왜,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과거의 예민한 나라면, 그녀가 나를 배척하는 열 가지 이유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그녀의 머리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수백 번 반복하거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자나 깨나 그 생각을 하고, 납득할 만한 스크립트를 완성하기까지 예민함의 게이지를 계속해서 올려갔을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예민함은 일상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너 지금 너무 예민한데?'란 친한 친구의 뼈 때리는 조언을 듣고서야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현타는 와도 한동안은 그 예민함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젯밤 남편에게 토비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눈치라곤 전혀 없어서 눈치를 기르고 싶어 'The Power of Nunchi'란 책도 찾아보고, 눈치를 연습한다며 틈만 나면 가자미눈을 하고 내 눈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남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아무것도 캐치할 수 없었던 자칭 '눈치 닌자'인 남편은, 레깅스와 크롭탑을 입고 참석한 토비 엄마가 운동을 다녀왔나 보다,라며 눈에 보이는 것만 본 일차원 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한껏 올라가려는 내 예민함에 갑자기 찬물을 훅 끼얹는 남편. 나의 예민함이 발휘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 남편처럼 될까 봐 너무 무서운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둔해지는 느낌이다. 한편으론 예민할 기회가 없으니 삶이 조금 편해진 느낌도 든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시공간을 초월해 내가 어디에 있든 머릿속으로 다른 여행을 하고 있던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계속 피곤했던 일상이, 육체적 노동을 한 날만 피곤할 만큼 정직해졌다. 나를 이렇게 둔하게 혹은 편하게 변하도록 도와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토비엄마에 대한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숙면을 취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