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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r 04. 2023

Locus of control

내가 왜 예민한지는 모른다. 그렇게 태어난 건지 길러진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어쨌든 내겐 거의 촉수가 있는 듯 세상이 시시각각 느껴진다. 냄새로 소리로. 눈이 나빠 시각적 공격은 덜한데 그마저도 혹시 시각 감각에 분배되어야 할 예민함이 다른 감각으로 옮겨 간 건가 싶을 정도로 후각, 청각이 예민하다.


촉수가 바깥으로 향해 있으니 삶은 늘 버겁다.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로만 사는 것 같다. 눈치를 살피고 상대를 걱정하느라 정작 나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는데 둔감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쉬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고 나면 과도한 피로가 몰려오거나 불필요한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자책과 원망이 남아 깊은 잠을 자기 어렵다.


Locus of control, 사회심리학에서 처음 제시된 개념으로 현재는 성격심리학에서 개인의 특성을 연구하는데  지표로 사용된다. '통제위치(소재)'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개인이 환경적인 외력에 대항해 사건의 결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정도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적통제위치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통제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스스로 믿고 노력하는 생산적인 삶을 살 확률이 높다. 어렸을 때부터 상황 파악을 못하면 사랑받지 못하는 불안정하고 일관되지 못한 환경에서 큰 내가 내적통제위치를 가질 수 없었던 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외적통제위치를 갖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도 변하는 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부모의 기분이 좋으면 나도 살만하고 부모가 화를 내면 세상이 끝나는 듯한 공포를 경험한다.


남편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다. 기분이 나쁠 때가 있지만 금방 중심을 잡는다. 화를 쌓아두지 않고 불만을 즉시 얘기하고 털어버린다. 누군가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하더라도,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기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의 하루를 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래서 바깥으로 뻗어있는 촉수가 없다. 모든 예민함은 자기 자신을 향해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알고 있고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다. 나를 위한 판단과 결정을 우선순위로 하고도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살아온 아이는 얼마나 충만한 인생을 살까. 지금의 남편처럼 눈치가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지.


바깥으로 한껏 예민해져 있는 촉수들을 거두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 본다. 나는 지금 낮잠이 필요하니 청소기는 나중에 돌릴 테다. 오전에 먹다 남겨 둔 초코파이마저 먹으며 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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