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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ll dude Aug 03. 2020

쳇바퀴 인생 in 공기업

좋다냥?

다니고 있던 공기업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했던 주된 이유는 아래의 세가지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1. 유연근무제도

2.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른 성과급 수령

3. 이미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너


퇴사가 미뤄진 이유라고 했지만, 사실 1, 2번째는 누가봐도 공기업 근무가 가지는 우수한 혜택이기도 하다.


(1) 유연근무제도는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선택 조정하여 운영하는 근로제도를 의미하며, '시간선택제', '선택적 시간제' ,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으로 구분된다. 시간선택제는 공공기관에서는 원래 주40시간 근무시간을 정규업무 시간으로 정해놓았으나 주30시간 근무, 반나절 근무 등과 같은 일자리를 만들어 채용하거나 임직원 중 주30시간 근무를 희망하는 자를 뽑을 수 있다. 공공기관마다 다르지만 회사 정원의 약5%에 이내에서 채용할 수 있는 내부 규정과 지침이 기관마다 정해져있다. 선택적 시간제는 보육원, 초등학교 저학년 등 자녀를 둔 직원으로 자녀의 등하원 동반이 필요한 직원 또는 타당한 사유가 있는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출근 시간을 30분 혹은 1시간 늦춰 출근하고 그만큼 늦게 퇴근하는 시스템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공공기관들이 지방에 있다보니 금요일 퇴근 후 서울 등 집으로 돌아갈 경우 밤12시가 이미 되어 버리고 토요일 하루만 온전히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엔 다시 ktx나 버스를 타고 회사가 있는 곳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 슬픈 가정과 개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경우엔 {월요일 14시 출근 + 화~금요일 1시간씩 추가 근무하여 19시 퇴근}, 또는 {월~목 19시까지 근무 + 금요일 14시 퇴근} 이 두가지 옵션 중에 선택하여 주 단위로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평일엔 야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면 4일은 기존의 하루 8시간 근무보다 1시간 더 근무하는 대신 나머지 하루는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반나절을 활용할 수 있는 고마운 제도였다. 나도 가끔씩은 월요일에 늦게 출근하는 일정으로 신청했었다. 월요일 이른 오전의 여유를 만끽하며 커피를 손에 들고 SRT에 올라탔다. 회사에 도착하면 이미 여러가지 일들이 분주히 일어나고 있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괜히 지각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촉박한 사람마냥 데스크에 앉게 되는 것 같아 점차 사용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직원들이 회사 본사가 소재하고 있는 도시 출신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이 탄력적 근로시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회사 내부 평가시 부서별 유연근무제도 사용률이 일정 선을 넘어야 감점이 없어서 사용하는데 눈치를 보는 일은 크게 없었다. 초창기에만 해도 휴가사용과 마찬가지로 부장, 실장의 눈치를 봐야했지만, 엄연한 직원의 권리와 정부 지침과 내규로 정해진 제도여서 젊은 직원들일 수록 당당하게 사용하는 추세이다. 직원들의 탄력근무제를 적극 지원하느라 금요일에는 각 부서별로 부장들과 직원 1-2명만이 사무실을 지키는 광경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있던 부서의 부장은...희대의 한량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밤을 새우고 주말이 되어도 남아 일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도 자기는 와이프랑 애가 기다린다며 오후 2시에 사무실을 나가버리는 문제아였다. 좋은 제도를 이렇게 악용하는 양아치같은 직원들이 20201년이 다가오는 이 시대에도 종종 있는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공기업의 매너리즘을 가장 활성화시키는 독성물질이다.



(2) 매년 실시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라 S,A,B,C,D,E 등급으로 나누어 점수를 받고 이에 따라 가장 우수한 S등급부터 C등급까지 받은 기관들은 차등으로 성과급이 지급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2017년부터 2020년에 발표된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S를 받은 기관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은 A, B 등급을 주로 받았는데,  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한해 성과급으로 수령하였다. 근속연수가 길수록 연봉이 더 높으니 이 성과급도 더욱 크다. 공공기관의 성과급에 대한 이 제도 자체에 대하여 사실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의견도 가지고 있으나, 재직기간동안 나 또한 이 성과급을 지급받았으니 뭐라 말하기가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엔 나라는 작자는 일개 치졸한 인간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해마다 나오는 '성과급'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회사에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대비하여 주요 관리부서에서는 연중상시 기재부, 행안부, 상위 부처인 XX부 등에 제출해야 하는 별의 별 문서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맞춰서 작성한다. 예를 들어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우리 회사의 실적을 제출해야하면, 어떻게든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한두가지를 일자리 창출과 연관시켜 실적으로 말을 갖다붙이는 무대포 식의 문서 작성 요청 연락이 자꾸 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문서 작성은 경영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모 핵심부서가 작성해야 하는데, 핵심부서라는 이상한 자신감과 오만함으로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연관된 부서의 담당자에게 일단 작성을 해달라며 일을 떠넘긴다. 어차피 공로는 자기들이 다 채어가는 악랄한 인간들이 남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건 전문가급이다. 우리 부서 사업 챙기는 것도 일손이 모자라 너무 바쁜데, 남의 부서 업무까지 중압감에서 해결해야 하는 웃픈 현실에 이런 서류 작성은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약지로 아무 자판이나 세번을 탁탁탁 내리쳤다가 다시 Esc 키를 눌리며 짜증이 난 채로 머리를 굴려본다. 여전히 적당한 표현과 정확한 수치를 화면에서 입력하지 못한채 어영부영 밍기적 거리고 있는다. 겨우겨우 쥐어 짜낸 용어와 표현을 덕지덕지 붙인 문서를 악랄한 핵심부서로 전달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수정해서 제출한다.


 (3) 한 개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삭신이 쑤시는 피로가 쌓였다. 신입 시절 부서 회식을 하며 회사 내에서도 명철한 직원으로 소문난 C선배와 얘기를 나누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만 열심히 하고, 뒤에서 노래부르며 웃고 있는 베짱이 같은 직원은 너무 편하게 회사 생활하는 것 같다고 솔직한 나의 생각을 얘기를 하니 '너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마. 네 개인 일도 아닌데 적당히 하는게 최고야.'라는 말을 들었다. '너무 큰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라며 자기 앞에 놓인 맥주잔을 천천히 채우는 C선배를 그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적당한 책임감이라는 것이 진정한 프로패셔널인 것일까? 똑똑하고 자기 주장이 분명하기로 유명한 C같은 선배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라면 회사 내에서 유명한 베짱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걸까? 궁금했다. 부당한 일을 보고도 이 좋은 회사에서 왜 내가 총대메고 상부에 그걸 보고해야 하냐며 짜장면을 먹으며 야근을 함께 하던 부장은 책임감이란 것이 있을까? 책임감은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모든 부장들은 하나같이 '부장'이라는 타이틀에는 무던히도  연연해 하는 듯 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점점 막중한 책임감이라는 줄을 느슨히 쥐어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업이 진행되면 몸이 먼저 반응하여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곳에서 오로지 1, 2번의 이유만으로 회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곳이었다. 우선 나부터가 그랬고 주변의 많은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기력한데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내 자신과 주변의 동료들의 얼굴에는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이 없었다. 이정도면 아주 괜찮은 곳이라 생각하며 안주해버리는 마인드가 이끼처럼 온 몸에 들러붙어 있는 동료와 상사들이 주변에 많을 수록, 마치 넝굴이 담장을 넘어 옆집의 담벼락에도 진을 치게 되듯이 시나브로 나 또한 같은 타성에 젖어들게 된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 싶어 사표를 쓰고 나왔다.


누가 오래 참는가 하는 내기에서 나는 기권한 것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경제관념이 똑부러지지는 않는 철이 안든 인간이었다. 돈이 없어도 나에겐 돈이 전부가 아니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모으지도 못했고 손해도 본적도 많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에 따라 생활 패턴과 방식이 달라진다고 믿었었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든, 어떤 물질적인 재산과 자산을 가지고 있든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와 성과급, 돈의 맛을 알아버리고 결국은 돈의 파워에 굴복하고만 것이었다. 매일 퇴사를 꿈꾸면서도 매달 수령하는 급여는 나쁘지 않았고,  성과급은 내가 가지고 있던 대출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나가면 나한테 여기만큼 을 주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여 comfort zone에 갇혀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전의 모든 직장에서 나오고 싶은 생각으로 고민할 때 주변이들은 하나같이 나를 말렸지만, 생각보다 다음 기회의 문은 쉽게 열렸었다. 그럼에도 이 곳에서 사표를 제출하는 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하고, 긍정의 생각으로 이 두려움을 짓누른채 오히려 이것을 도움발판으로 여기고 새로운 시작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히려 십수년전의 첫 직장을 그만 둘때가 더 쉬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기 때문에 세상의 찌든 때가 덜 들어서 호기로웠다고 해야 할까? 머리가 굵어지고 산전수전을 겪어볼 수록 점점 더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항해는 무조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돈의 노예가 되어 결국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눅눅하게 젖어버린 장마철의 빵처럼 맛없는 하루하루하루를 보내며 쳇바퀴에 갇힌 삶을 살던 비만냥이었다면, 지금은 런닝 휠에서 뛰쳐나와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에서 마음 껏 뛰어다니는 자유의 길냥이가 된 것이다. 길냥이의 삶에 있어 아직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더욱 왕성한 나의 자유의지로 활동하는 매일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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