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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4 다소 황당한 설날-차례상을 안차리시겠다고요

설음식을 다했는데 차례상을 안차리신다는 어머니

by 다올


설 준비를 하려 이틀 전에 시댁에 왔다. 그렇다고 할 일이 태산같이 많은 것을 아니다. 시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라 대부분 당신께서 일을 다 하신다. 올해 육십 살이 된 큰 시누이도 어머니께 일일이 물어보고 하신다. 그나마 12월 초에 어머니가 허리 골절 시술을 하는 바람에 이번 설 준비의 일부를 시누이와 내가 할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전을 부친다. 시누이는 이번에 생선 찌는 것을 담당했다. 갈비도 재었다. 어머니는 설이 되면 생선묵(껍질을 끓여서 식혀 묵을 만드는 것, 보통 박대의 껍질을 삶아서 만든다) 을 꼭 만드시고 식혜도 맛있게 만드신다. 나물은 시금치와 고사리 두 가지만. 탕국도 한솥 끓이셨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설날 아침에 일어나 안녕히 주무셨냐고 인사를 하고 상 차릴 준비를 하려 했다. 그런데!!!

“귀찮아서 상 안 차릴 란다.”

‘엥?이게 뭔소린고?’

결국 오늘 차례상을 차리지 않았다. 갑자기 그렇게 결정하신 걸까? 생각해 보면 과일을 꺼내 놓지 않으시긴 했다. 늘 미리 소쿠리에 배며 사과 밤 곶감 등을 꺼내 놓는데 그게 없긴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 뭐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물으니

“암 것도 필요 없다. 준비 다혔다.”

“야녀, 그냥 와라.”

어제 전을 부치는데 달걀이 부족하다며 한 판 사와라 하시길래 나간 길에

“딸기도 한 팩 사 올까요?”

물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그럼, 어제부터 상을 차릴 마음이 없으셨던 걸까?

병풍을 치고 목기를 내리고 음식을 담아 상을 차리고 중간에 밥을 새로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찜찜했다. 제사 음식인 줄 알고 준비했던 음식들과 갈비를 익혀서 한 상 차려 아침을 먹었다. 우리 어머니는 떡국을 끓이시지 않아서 설날 아침이지만 콩밥을 먹었다.

상을 치우고 어머니께 세배했다. 눈이 너무 와 성묘도 생략했다. 눈 때문에 산속에 있는 산소까지 걸어가기는 무리였다.


차례도 생략, 성묘도 생략, 추석과 설 때 남편은 동창회를 1시에 하는데 열 시쯤 동창회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참석이 불가하다 한다. 처가 가야 하는데 길도 미끄럽고 밀릴 것 같으니 빨리 출발해야겠다고 말한다. 보통은 때라면 모임에 다녀오고 시누이들과 애들이 오면 밥을 함께 먹는 것이 보통의 설 모습인데 오늘은 영 다르다.


어머니께서 전과 식혜, 그리고 생선과 생선묵과 갈비 잰 것을 챙겨주신다. 챙겨주시는 음식을 들고 차에 넣고 시동을 걸었다. 눈이 많이 와서 앞 유리의 눈을 치우고 눈이 녹기를 잠시 기다렸다.

집에서 나선 시간이 역시 반, 출발하는데 눈발이 날렸다. 계속 눈이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걱정과 달리 눈은 곧 그쳤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과 상관없이 남편은 자신이 정한 길로 차를 몰았다. 남원을 거쳐 함양 대구 안동을 거쳐 가는 길을 선택했다. 장수를 지나는데 얼마나 눈이 많이 왔던지 좌우로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새해 카드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다. 밤새 얌전히 내린 눈은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얹혀있었다. 나무가 아니라 산호처럼 보였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닷속의 하얀 산호.


진안을 지날 땐 하얀 모자를 뒤집어쓴 마이산이 보였다. 사진을 잘 찍고 싶었는데 금방 산 너머로 사라졌다. 겨우 한 장 건졌다. 길은 막히다 풀리다 하였다. 장수를 지나면서 반대편 길은 꽉 막혀 주차장이 되었다.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눈이 부셨다. 다행히 눈이 내리지 않아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휴게실에도 차들이 가득하다. 평소라면 차를 주차하지 않았을 장소에 차를 잠시대로 화장실을 다녀온 뒤 서둘러 출발했다.


대구쯤 왔을 때 정말 신기하게 눈의 흔적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넓다니까 하는 생각을 한다. 뉴스에서는 유례없는 폭설로 축사가 무너지고 창고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속도로 마다 충돌사고가 나 부상자가 생겼다는데 친정 가는 내내 사고 한 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풍기쯤 왔을 때 차가 제법 밀리고 있었다. 남편은 유독 차가 막히는 것을 싫어한다. 결국 풍기나들목을 나와 국도를 선택했다. 잠시 우체국에 들러 돈을 찾았다. 찬바람이 뺨을 스친다. 길에는 사람도 없고 가게 문도 대부분 닫혀있다.

길이 깊어질수록 집들도 안 보이고 가끔 보이는 집들의 마당엔 발자국조차 없다. 친정아버지도 어제 내내 눈을 치우셨다는데 치워도 치워도 계속 눈이 덮였다고 했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인적 드문 길엔 눈이 녹아 살얼음이 된 곳이 종종 있었다. 작년에 눈길에서 몹시 혼난 적이 있어서 걱정이 앞섰다. 선비길을 지나 김선달 길을 지나 친정집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겨우 도착해 집 입구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치워놓으신 눈이 길 양옆으로 수북이 쌓여있다. 집에 오는 자식들 걱정에 얼마나 애를 쓰고 눈을 치우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죄송스러워진다. 집을 챙겨 친정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섯 시 반이 지났다. 이번 친정 방문길은 좀 지루했다. 장작 여덟 시간이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어머니는 얼른 떡국을 끓여주셨다. 드디어 떡국을 먹었다. 나이도 한 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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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만들기로 했다. 결혼 전엔 신정 전에 만두를 만 개 정도 만들었다.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해봐야겠다. 오랜 운전에 지쳤는지 남편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차에서 보낸 하루다. 어머니께서 내일 만들 만두 속을 준비하자고 하시다. 얼른 가서 도와드려야겠다.

차례도 성묘도 가지 않은 이상한 설날이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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