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몰래 작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이제 용기를 내어보자.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거창하고 대단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글감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단지 그렇게 보지 못할 뿐이다. 예를 들어 ‘밥’이라는 주제어를 떠올려보자.
“밥이 무슨 글의 소재가 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글이란 뭔가 고귀하고 품격 있는 것을 써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밥만큼 우리 삶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밥을 둘러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감 찾기
‘밥’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부엌, 냄비, 밥솥, 된밥, 진밥, 고두밥, 탄밥, 누룽지, 숭늉, 비빔밥, 제삿밥, 냉동밥, 햇반, 컵밥, 도시락. 김밥. 볶음밥, 국밥, 짜장밥, 잡채밥, 짬뽕밥, 냄비밥, 솥밥, 가마솥, 장작,식혜 등등 떠오르는 단어가 생각보다많다는 사실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단어들 중에서 내 인생과 관련된 단어는 몇 개나 될까? 누구나 한두 개쯤은 관련된 추억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밥 짓기’라는 키워드에 얽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첫 밥 짓기, 그리고 삼층밥
나는 아홉 살에 처음으로 밥을 지었다. 그날 엄마는 외출 중이었고, 남동생들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엄마가 언제 돌아오실지 알 수 없었다. 배운 적은 없지만, 엄마가 밥 짓는 모습을 기억하며 흉내를 내기로 했다.
하얀 쌀뜨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쌀을 씻었다. 냄비에 쌀과 물을 넣고 곤로 위에 올렸다. 시간이 지나자 밥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얼른 뚜껑을 열었다. 내가 지은 밥은 ‘삼층밥’이었다. 물이 부족하고 불이 너무 강해서 냄비 아래쪽은 새까맣게 타버렸고, 윗부분은 덜 익어 설익은 쌀알이 오돌오돌 씹혔다. 냄비 쪽의 밥은 갈색이었다. 가운데만 그나마 먹을 만했다. 남동생들과 조심스럽게 가운데 밥을 퍼서 한 숟갈 떠먹었다. 가운데 밥은 하얀 밥이었지만 밥에서는 탄내가 진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날의 밥 한 그릇은 내게 커다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내 손으로 밥을 지어 먹일 수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동생들에게 밥을 해먹인 나에게 칭찬을 해주셨다. 비록 삼층밥이었지만 말이다.
추억 속 또 하나의 밥 이야기
고등학생 때 일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늘 야자가 있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야 했다. 지금이야 급식이 있어 도시락을 싸지 않지만 그때는 날마다 반찬을 싸는 것도 엄마들의 큰 숙제였다. 우리는 꿈 많은 여학생이기도 했지만 식성이 좋은 여학생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은 점심밥을 비벼 먹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 대여섯 명이 각자 싸 온 반찬을 양푼에 다 넣고 비벼먹은 것이다. 교실에 스텐 양푼을 하나 가져다 놓고 점심시간이 되면 김치에 된장찌개. 상추, 오징어채무침, 멸치 볶음등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듬뿍 넣고 쓱쓱 비벼서 숟가락 가득 밥을 버서 먹었다.
가끔은 우리들이 먹기도 전에 다른 친구들이 한 입만 한 입만 달라는 통에 우리가 먹을 밥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렇게 김치며 상추가 가득한 밥을 볼이 터져라 넣고 먹던 생각을 하니 코끝에 참기름 냄새가 나고 밥알과 야채가 씹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생각하면 풋풋하고 정겨운 추억이다.
이것이 나의 첫 밥 짓기인 삼층밥과 점심시간의 양푼 비빔밥에 얽힌 이야기이다. 위에는 짧게 끌을 썼지만 좀 더 살을 붙이고 그때의감정들을 적어나간다면 충분히 짧은 수필 한 편이 완성될 것이다.
글쓰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우리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이 글이 된다. 특별한 문학적 소재가 아니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경험’을 쓰면 된다는 점이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용기를 내어 쓰기 시작하면 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부터 시작하자. 뻔뻔하게, 과감하게, 그리고 즐겁게.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