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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May 09. 202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독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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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소녀시절엔 아직 문학적 소양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해맑기만 한 성격때문

이었는지 따분하고 지루한 책이었다. 이보라교수님 덕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게 되었다. 아마도 이전에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책이지만 솔직히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영어 점수에 기함을 한 뒤로 이상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국사,국어는 너무 재미있는데  세계사,영어는  내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외국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종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세몬,미하일, 마트료나 이름을  기억하다니!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것이겠지만  나에겐 특별한 일이었다. 그만큼  나는 이야기에 푹 빠졌던  것이다.


  작가는 책 속에서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세가지 질문은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어긴 천사 미하일(미카엘 대천사)을  추운 겨울 벌겨벗겨 세상에 내버리면서 질문한것이다.


  교회의 벽에 웅크려있던 미하일은 구두수선공 세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게된다. 왜 하필 교회였을까? 문 닫힌 교회로 서술된 글에서 그 시절에도 종교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베풀어진 작은 친절 하나가 때론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위대한 일이 되기도 한다.


  살면서 누구나 타인의 친절을 경험하게 된다.  때론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내가 아이들  키우며 늘 말하던 것 중  하나가

'측은지심''이었다.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한다.


  미하일은 세몬과 마트뇨나의 '사랑'덕에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두 사람을 형편없는 술주정뱅이 취급을 하다가 세몬의 "당신 마음속엔 하느님도 없는가? " 라는 말에 마음을  돌려 마지막 빵을  저녁으로 내주는  마트뇨나의 행동에  미하일이 첫 미소를 지었다고 했는데 (첫번째  질문인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기뻐서) 왜 벌거벗고 꽁꽁  얼어있는 그를 구한 세몬에게는 답을 찾지 못했는가 이다. 몇 끼를 굶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밤에 세몬이 아니었다면 미하일은 얼어 죽지 않았을까?.


  죽일듯 험상궃은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녀가  마음을 돌려  그녀가  가진 마지막  양식을 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여기서 잠깐 개인적인 경험을 말해보다면 한 번쯤  자신이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를 때 꼭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보시길 ㅡ진짜 미하일이 마트뇨나에서 느낀 기분을 바로 느끼게 될것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진짜 충격이었다.)


  5 년전쯤  이맘때 서울의  모교에 스승의 날 행사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행사 후 음식이 많이 남아서 돌아가는 길에 도시락을 서너 개 챙겼다. 밤 열두시 기차를 타기 전까지는 여유 시간이 꽤 남았다. 개표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뚤레뚤레 살피던중  뒤쪽에 앉아 있는 노숙인을 발견했다. 나는 종이 가방에서 챙겨온 도시락과 물 한병을 꺼내 들고 다가갔다.

  "이것 좀 드세요."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나는 기차를 타고 4시간 동안 가야했다. 빵 한 조각과 물 한 병을 내 몫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음식을 모두 건네주었다. 그들에겐 오랫만에 먹는 신선한 야채가 곁들어진 식사였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한결 가벼워진 손과 뿌듯함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귀가 할 수 있었다. 그 날 늦은 밤, 내 마음속에 측은지심(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2년 전  «불편한 편의점»을  읽을  때도 독고씨를 보면서

그때가 생각났었다.


  미하일이 6년 동안 수선 기술을 배우고 일을 하며 하느님이 내린 숙제를 하는 동안,  부부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누구나 말못 할 사정이 있다라는 배려심으로 그에 대해 더이상 묻지않게 된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을 6년 동안이나 넉넉하지 못한 살림속에서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이 또한 부부의 깊은 배려였으리라.


  시간이 흐르고 미하일의  솜씨가 소문이 난 덕에  세몬의   살림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약해 보이는  손님이  비싼 가죽을 가져와 '일 년을 신어도 까딱없는 장화'를 만들어 내라며 가공비마져도 외상을 하고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 이 때 두번째 미소를 지은 미하일은 장화를 만드는 대신 슬리퍼를 만든다. 이 모습을 보고 세몬은 큰 걱정에 빠진다.하지만 얼마 뒤 신발 주문할 때 같이 왔던 하인이 주인이 돌아가셨으니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미하일은 만들어놓은 슬리퍼를 하인에게 내준다.


  미하일은 왜 미소를 띤 걸까? 두번째 숙제인  '사람에겐 무엇이 없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천사였던 미하일의 눈에 손님의 뒤에 서있던 저승사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을 넘기지 못  할  그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모른 채 일년뒤까지 신을 신발을  주문한 것이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무당이 점보러 오는 사람들의  과거를  귀신같이 맞추는 이유가 사람뒤에 붙어있는 귀신(혹은  수호신)이 다 이야기를 햬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과거는 잘 맞춰도 미래는 그 귀신도 아직 살아보지 않아서 잘 알수록없다는 이야기.


  사람은 종종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며 산다. 미니멀리즘이  몇 년째 유행이다ᆞ당장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사는 것은 쉬운듯 보여도 의외로 쉽지않다. 인간의 본능엔 긍정적인 의미의 '유비무한'이 아닌 부정적인 의미의 '욕심 '이라는 녀석이 불쑥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팬트리를  가득 채운 휴지들,여분의 치약들, 일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물건, 일 년치의 세탁 세제등.

요즘  종종 내가 살아 생전 쌓아뒀던 물건들이 내가 죽은 후엔 가족들에겐 치워야 할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 한 이후로는  나는 더이상 1+1 물건을 사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 주인인 집에서 벗어나고자 노력중이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부인이 소녀 두명과 함께 구두를 맞추기위해 세몬의 집에 찾아온다. 쌍둥이 자매인 소녀중 하나는 다리를 절었다. 두소녀를 보고 미하일은 깜짝 놀라게된다. 두 소녀는 그가 하늘에서 쫒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미하일이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천사였을  때  두 소녀의 엄마를 데리러 왔다.  소녀들의 아버지가 라무에 깔려 사흘 전에 죽고 아이들이 태어냔지 하루 밖에 안되었을 때다. 두  소녀의 엄마는 "아이들은 엄마없이  살 수 없다." 며 아이들이 사람 구실을 할때까지만 자신을 살려달라고 했다. 미하일은 여인의 말에 설득 당해 그냥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오라는 명령과 함께

1.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세가지 진실을 알게될 때  다시 하늘로 올라올 수 있는 벌을 받게  되었다.


  땅으로 떨어진 그를 구해준 세몬 부부에게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장화를 주문한 손님에게서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소녀를 키워준  부인에게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알게된다.즉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고 할수 있지만 그 보다 한차원 높은 사랑,즉  하느님의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연인이 아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톨스토이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전하고 있다.


  당신은 미하일이 6년에 걸쳐 해답을 얻은 세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에 동의하는가? 작가 톨스토이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이 소설을 썼다.소설 속 등장 인물들을 통해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진리이다.


  군더더기없는 간결한 문체에  읽는  내내 깔끔한 냉녹차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  글을 쓸 때  가장 유념하는 부분이 '문장의 길이'이다. 앞으로 톨스토이의 글을 더 자주 읽고 배워야겠다.


  다시 한 번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글을 읽게 해주신 이보라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책장을 덮으며  이어서 로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눈물을 많이 흘릴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시작된 고전의 맛에  벌써 푹  빠져들었다  앞으로  날들이 기대된다.


ㅡ미카엘 대천사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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