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파먹기 #번외
냉장고 파먹기 번외
흑미는 유색미의 일종으로 속은 희지만 겉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라색을 띠는 쌀입니다. 흰쌀에 적당히 섞어 밥을 지으면 기분 좋은 보라색을 볼 수 있어요. 보통 5~10% 정도를 넣지만 조금만 많이 넣으면 밥이 새까매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죠.
오빠 음식 잘하잖아
찰흑미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녀는 내가 만든 음식을 곧잘 맛있게 먹었는데, 찰흑미를 조금 많이 넣은 밥의 비주얼에 놀란 그녀가 자기보다 요리를 자주 해먹는 나한테 다시 선물한 것이죠. 내가 지은 첫 번째 흑미밥 역시 찰흑미를 조금 과하게 넣어 밥이 좀 까맣게 되었어요. 그걸로 말아낸 김밥 역시 그녀는 잘 먹더라고요. 그게 그녀와 두 번째 만남의 마지막 음식이었습니다.
2021년 10월에 만나,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그녀와 모종의 이유로 연락이 끊긴지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녀는 사라졌지만 통화보다는 카톡을 좋아해 주로 문자로 대화를 나누던 텍스트는 떠나간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았어요. 근 몇 달은 폐인처럼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 혼돈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많이 힘들더군요.
나름 쳐놓은 벽은 카톡 한 번에 무너졌고, 난 어느새 그녀를 위해 따뜻한 타마고 산도와 포테이토 수프를 만들고 있었어요. 이후 저는 그녀와 전 같은 사이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짓을 해버렸고, 또다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녀에게 받은 찰흑미는 무려 3kg. 쌀밥 1인분이 보통 150g. 찰흑미가 잘해야 15g 정도 들어가는 셈이니 하루 한 끼를 흑미밥으로 먹는다 해도 6개월은 꼬박 걸리는 양입니다. 잊으려고 아까운 찰흑미를 버릴 수는 없는 것처럼, 저도 이 감정을 소비해 내는데 또 한세월이 걸리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