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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Feb 05. 2021

게 바구니에 뚜껑이 없는 이유와 작가의 제 살 깎아먹기

나의 가치 대로 원고료를 받는 것은 유토피아일까

갑갑한 기분이 들어 낙산사를 가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뭔가 잘 풀리지 않고 갑갑할 때 나는 낙산사로 향한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낙산사 정류장에 내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너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기세 좋은 의상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거기서 조금만 다리에 힘을 내 보타전을 거쳐 길을 올라 한 없이 넓은 어머니의 품처럼 방문객을 품는 해수관음을 만나 인사드릴 때의 그 안도감이라니. 가톨릭 신자지만 이런 건 세상 모두에게 공통일 것이다. 

오늘은 풀리지 않는 갑갑함에 낙산에서 속초까지 걷는 길을 택했다. 유난히 찬 바닷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타박타박 발길을 옮겨봤다. 낙산에서 속초로 올라가는 정암 해수욕장, 물치 해변 등의 멋진 겨울 바다를 찍어보려 무겁게 DSLR도 들고 왔는데, 젠장… 메모리를 빼먹었네. 그래도 오랜만에 짠 바람내 맡으며 걸으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세 시간 남짓 걸어 어느덧 속초 동명항에 도착. 배를 채우고 한 잔 할 시간이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풍기는 냄새에 생선구이로 메뉴를 정했다. 그런데,  이 망할 노무 생선구이 고깃집 마냥 혼자 먹기가 어렵다. 속초 생선구이 원탑 88 생선구이는 당연히 No. 그 주변과 ‘갯배 st’라는 청년몰을 뒤져봤지만 혼자서 생선구이 1인분을 먹도록 허락하는 집은 없었다. 그냥 늘 가던 대로 해변의 신다신 해장국을 갈까 하고 있는데 어느 가게에서 문을 벌컥 열고 호객한다. '생선구이 1인분 돼요?’ 하니 너무 흔쾌히 OK를 외치며 들어오라네. 흘끔 메뉴의 사진을 보니, 그럴싸하다. 재차 1인분만 주문해도 되겠냐고 물어도 기분 좋게 오케이를 외쳐 1인분과 소맥 재료를 주문했다. 생선구이만 3만 원 예상했는데 오예 반값. 두근두근 기다리기를 10분, 비릿한 생선 기름이 타는 냄새와 함께 상이 차려졌다. 그런데…

장난하나. 1만 5천 원이나 되는 생선구이가 꼴랑 아기 손바닥만 한 가자미 한 마리와 내장이 반이나 되는 삼치 반도막…. 여러 가지로 기분이 안 좋았던 상태라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났지만 '거지 같은 세상에는 아무 말도 못 하면서 갈빗대에 붙은 기름 가지고 지랄하지 말라'는 기형도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떠올리며, 괜히 걸을 때의 좋은 기분까지 잡칠까 먹는 둥 마는 둥 계산하고 나왔다. 역시 가격이 싸다고 무턱대고 좋아하면 안 될 일이다. 


나 자신이 낙천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IMF 때 지원자가 많아 입대가 10개월이나 밀렸을 때도 ‘아싸 공식적으로 놀 수 있다!’ 즐거워하며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거 하며 즐기다 군생활로 뛰어들었다. 여차저차 한 일로 회사를 나오게 되고 월급을 못 받는 시간이 늘었어도 어떻게든 그 안에서 즐길 거리와 돈 벌 거리를 찾으며 즐겁게 나만의 경험을 쌓아갔다. 그런데, 코로나는 좀 힘들더라. 갑자기 일이 50% 이하로 줄어들기를 어언 1년. 작년엔 그래도 그럭저럭 버텼는데 올해 일이 더 줄다 보니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뭔가 다른 출구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어떤 프리랜서 재능 판매 플랫폼이 보이더라. 가입 처리를 하고 나 자신의 경력과 포트폴리오를 인증하고 원고의 종류에 따른 단가를 정해 나를 시장에 내놓으려고 준비하는데, 멘붕이 찾아왔다. 


와… ‘마케팅 콘텐츠 1만 원부터 시작!’, ‘자소서 5천 원에 써드립니다’… 글쓰기 구직란에는 저렇게 자신을 박리다매하는 텍스트 콘텐츠 작가가 넘쳐났다. 이건 마치 게 바구니를 보는 것 같다. 게를 잡아놓은 바구니에는 뚜껑을 덮어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의 한 놈이 더 높이 기어오르려고 하면 다른 놈들이 그 놈을 끌어내리니 굳이 뚜껑이 필요 없다나 뭐래나. 이 아사리판이 꼭 그래보인다. 다 같이 담합까지는 아니어도 적절한 원고료를 받으면 공정히 경쟁할 수 있을텐데, 자기 원고료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시장 전체를 끌어내리는 이 형상은.... 어떤 사람들 인간인지 알고 욕하게, 그 사람들의 구직 콘텐츠를 살펴보고 그들의 포트폴리오와 그동안 진행해온 작업을 살펴보고는 기분이 더 아스트랄해졌다. 

최저임금을 생각하면, 원고 한 편에 40분 정도면 쓴다는 건데, 이 원고가 정상적이겠나. 

첫 번째로, 그들이 이야기하는 저렴한 콘텐츠는 간단히 말하자면 흔히 이야기하는 트렌디한 콘텐츠의 '우라까이’였다. 인기 있는 콘텐츠들의 템플릿을 만들어 주문자의 상황과 몇 가지 마케팅 포인트를 덧붙여 틀을 수정한 후, 제공한 사진을 첨부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자기 표절스러운 짓은 당연히 글쓰기라 할 수도 없는 데다, 이렇게 개성이 말살된 글을 여러 개 실어봐야 마케팅이나 홍보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괜히 블로그 검색 순위나 떨어지지. 이것도 충분히 별로지만 내가 속상했던 건 다른 이유였다.


그 5,000원, 10,000원에 글을 써주겠다는 그 도떼기시장 같은 아사리판 속에 예시 글이 괜찮은 작가들이 있더라. 짧지만 명확한 타겟팅에 스무스한, 범작을 넘은 수준의 예시들을 보며 슬퍼졌다. 적은 돈 받아가면서도 퀄리티는 지키자고 마음먹었겠지만… 곧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흑화 되겠지…

리틀차이나가 생기고 몇 개월 후 짜장면 1,500원 집이 생기자 리틀차이나도 울며 겨자먹기로 2,500원으로 내려야 했다

천호동 구사거리 부근에는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 음식점이 마주 보고 있다. 두 가게 모두 가장 잘 보이는 것은 짜장면 2,500원, 짜장면 1,500원. 다른 한 가게는 아예 간판을 ‘짜장면 1,500원’으로 해놓았다. 집과 멀지 않아 두 가게 모두 짜장면을 먹어보았는데, 맛이 있고 없고는 차치하고 두 가게 모두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결국 어느 한쪽이 망할 때까지 저 둘의 경쟁은 끝나지 않을 테고, 저 경쟁의 승자인 가게도 짜장면을 다시 원가대로 받기 시작하면 어느새 가게가 기울게 뻔하다. 


오늘 내가 속초에서 겪은 일과 프리랜서 재능 판매 플랫폼, 천호동의 두 짜장면집의 경쟁이 코로나 19 시대의 프리랜서 작가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은 듯해 슬프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20주년 기념으로 열다섯 팀의 뮤지션이 낸 기념 음반 중, 정태춘 님이 부른 노래의 <바겐세일>의 가사와 드라마 <H.U.S.H>에서 임윤아가 연기한 이지수 기자가 면접에서 지른 ‘펜보다 더 무거운 게 밥입니다’라는 대사가 자꾸 마음에 밟힌다. 


에라이 씨팔 나도 세일이다. 세일. 
3000원도 좋고 2000원도 좋다. 
싸구려 싸구려 싸구려 싸구려
- 박노해  '바겐세일' @노동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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