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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cis Dec 19. 2020

우리는 늘 마약을 즐깁니다

초콜릿처럼 꺼내먹어요

2018년 가을, 제주에 살던 대학 동아리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회사 일로 장례식에 갈 수가 없어 계속 마음에 두고 있던 중 결국은 시간을 내어, 형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도보로 납골당에 방문하는 코스로 도보 여행을 기획했다.

파도가 미친 듯이 쳐서 데크 위로 물을 쏴~ 뿌려댄다

처음 가본 1월의 제주는 삭막했다. 블리자드 같은 눈보라가 싸대기를 날리고 손끝과 발끝은 차게 식어 얼얼할 정도. 바다는 해변 데크까지 파도가 넘어와 소금기를 뿌려댔다. 그래도 고지 중턱을 올라 목장이 보이면서 서서히 눈보라가 그치고 제주의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과 같은 날 찍은 게 맞음 주의

그때부터 날 괴롭힌 건 추위가 아닌 허기. 미리 가방에 쟁여놓았던 김밥과 커피는 이미 동이 났고… 꼬르륵꼬르륵 걷던 중 한라 수목원 부근에서 갑자기 고소한 냄새가 났고 마침내 토스트 트럭이 천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 사진을 보면 지금도 침이 고이고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요놈이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토스트의 냄새가 어찌나 섹시하던지… 먹기도 전, 튀기듯 구운 식빵의 고소한 버터 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한 입 물자마자 새콤한 양배추 샐러드와 달달한 설탕 알갱이, 짭짤한 햄과 고소한 치즈, 계란 프라이와 생각지도 않았던 사과가 함께 씹히는 그 맛. 아.. 바로 이거다. 몸에 안 좋은 이맛.  ‘사장님 여기 마약 넣었어요?’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우리는 그 마약이 뭔지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이미 다 중독자일거고.. 


길거리 토스트는 버터로 구운 빵에 설탕과 케첩, 버터 등 몸에 좋지 않은 소스를 듬뿍 넣은, 흔히 이야기하는 정크푸드다. 하지만 추운 길거리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출출한 그 시간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 토스트만큼 맛있고 든든한 음식을 찾기도 쉽지 않다. Time, Place, Object, 이른바 TPO라는 마약은 음식 맛을 좌우하는 큰 요소. 이제 여기에 추억이라는 또 다른 마약까지 더해지면 뭐 이건 끝판왕이지. 

자, 짜고 맵고 단, 맛이 없는 저급한 음식. 아차산역 '신토불이' 떡볶이 대령합니다

어떤 음식 칼럼니스트는 지금도 ‘떡볶이는 맛이 없는, 저급한 음식이다’, ‘대중이 문화의 현혹에 선동되어 ‘추억 보정’이라는 이름으로 맛없는 것을 맛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네티즌과 대치하고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떡볶이처럼 영양학적 밸런스를 완벽히 무시하고 자극 일변도로 달리는 음식도 별로 없지. 우리가 추억 보정이라 뭉뚱그린 그런 것들을 제외한다면 뭐하러 음식을 부러 찾아먹기까지 할까? 그냥 영양제 알약과 파우더 같은걸 갈아서 대충 먹고 치우지.

2017년, 홍대 3대 명절 경록절 현장. 이때 먹은 고량주와 제임스 제머슨이 정말 맛있었지.  이런 때가 다시 올까....

우리가 맛집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것을 레시피까지 보며 요리해먹는 이유는 그 음식을 먹으며 혼자, 또는 지인들과 기억과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맛과 향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으러 가는 길, 요리하는 과정, 그날 식당의 풍경 등 다양한 것을 경험해 추억의 도서관에 잘 분류해 넣게 된다. 잘 갈무리된 기억들은 Zion.T의 노래 가사처럼, 어떤 음식이나 상황, 장소나 함께 한 사람이 그리울 때 초콜릿처럼 꺼내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떡볶이에 핸드메이드 길거리 토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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