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지니 Nov 05. 2019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매장들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매장들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닌 직원이 있는 화장품 샵이고

둘째는 영업직원들이 있는 백화점이나 마트의 와인샵이다.


왜 이런 매장들에 가면 마음이 불편해질까?




아이필 프리티의 르네는 말한다.

화장품 가게의 메이크업 전문가가 보이면 매장에 안 들어가게 된다고.

조각상 같은 미녀들이 날 바라보는데 난 여드름 투성이에 얼굴도 비대칭이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괜히 움츠러들고 비참해진다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화장품 가게를 갈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었구나!


무릇 나의 이런 감정은 화장품 가게에서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나의 소비 수준을 평가할 것만 같은 와인코너의 직원들

나는 와인을 좋아하고 심지어 와인 책 <몰라도, 와인>을 출간했지만, 여전히 백화점이나 마트 와인코너의 직원들은 불편하다.

와인은 가격 정가가 없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나처럼 와인 좋아하는 사람도 가격을 다 외우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다.

그럴 때 와인코너의 직원이 갑자기 등장해 첫마디를 건넨다.
" 가격대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

실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괜히 나의 소비 수준을 평가할 것만 같은 그들의 첫 질문.

머뭇머뭇 대답하면 "그것보다는 이게 어때요?" 하며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 몇만 원 차이 나는 와인을 들고 온다. 이게 이렇게 더 좋은데 이만큼 더 소비할 능력 없어요?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권유하기 일쑤이다.

나는 와인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 매장만 가면 위축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면, 영국은 어떨까?


영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마트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와인코너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영업 직원이 없다. 내가 영국에서 얼마든지 와인을 편히 구경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와인 코너에 계속 서성여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와인코너를 서성이며 구경할 수 있는 건 와인에 관련된 또 다른 경험의 일부이자 행복이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한국 와인 샵의 과도한 친절함은 왠지 불편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한 친절함이 와인을 구매하는 데 있어 좋은 경험보다는 부담스러운 경험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요즘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매장들도 예전처럼 영업직원이 따라다니면서 응대하기보다는 손님에게 조금 더 자율성을 주는 쪽이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또한, 무작정 추천하는 것보다는 소비자가 매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느낄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불편함이 없는 매장은 소비자가 느낄 심리적 거리감을 최대한 줄인 매장이 아닐까?


하나의 매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집약된 마케팅의 장이다. 어떤 매장을 방문하든 그 매장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해놓는 습관만으로도 많은 마케팅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이전 04화 백종원은 왜 항상 메뉴의 간소화를 주장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