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강물처럼>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기품은 우리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는 방식을 존중하는 데서 온다. 바른 자세가 불편하더라도 가식적이거나 인위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어려우니까 진짜다. 품위는 순례자의 길을 영예롭게 한다.'
-파울로 코엘료 , < 흐르는 강물처럼> 중 '기품에 관하여'
인생의 후반은 멋지게 살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좀 막연한 느낌이었는데 파울로 코엘료가 쓴 글을 읽다가 '기품'이란 단어를 발견했다. 바로 이것이다.
나는 기품 있는 삶을 살고 싶다.
파울로 코엘료는 기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무릇 행동과 자세에 기품이 있어야 한다. 기품이란 훌륭한 취향, 우아함, 균형과 조화의 동의어다.'
행동과 자세에 '기품'이 있으려면 훌륭한 취향을 가져야하고 우아하고 삶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고자 하는 기품은 겉모습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주로 소통을 하는 것은 언어이지만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바디 랭귀지'라고 하지 않던가. 기분이 울적할 때는 등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지고, 어깨가 쳐진다. 기분이 좋으면 날아갈 듯하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던가. 이런 나의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도 무언의 언어로 전달된다. 특히 나 자신의 마음과 행동은 긴밀하게 소통하기 때문에 행동은 마음으로 바로 연결된다.
우울할 때 자세를 바로 잡고 눈을 맑게 뜨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충전된다.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할 때, 기분이 들떠 있을 때 몇차례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바로 잡으면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품은 몸과 마음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우러나온다.
기품을 거만함이나 속물근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품은 '우리의 거동을 완벽하게 하고, 발걸음을 굳건히 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세'인 것이다.
중용(中庸)에서는'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라고 했다. 이런 경지를 ‘신독(愼獨)’이라고 한다. '숨겨져 있는 것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없고(莫見乎隱), 아주 작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莫顯乎微).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스스로 삼간다(故君子愼其獨也)'에서 나온 단어이다.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삼가는 것은 수신, 즉 개인 수양의 최고 단계이다. 이런 경지라면 기품은 저절로 우러날 것이다.
나를 돌아본다. 걸음걸이부터 몸 가짐, 마음가짐, 생활 태도 등 모두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혼자일 때엔 더 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세를 바꾸고, 머리를 쉬게 하고, 가슴을 펴고, 세상을 마주하라'고 한다. 참 훌륭한 조언이다. 몸을 배려하는 것은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며 이는 양쪽 모두를 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를 찾으면 자연스레 기품을 갖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