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가치

<세상의 용도>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 주리라. 여행자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 니콜라 부비에, <세상의 용도>

코로나 19로 발이 묶이면서 여행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역마살 때문인지 워낙 방랑벽이 있어서 어디로든 떠나기를 좋아한다. 국내에선 좋은 풍광을 찾아서 산과 사찰, 고택을 찾아다니길 좋아했고 해외로 갈 때엔 미술관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도시를 답사하기를 취미로 삼았던 터이다. 가보고 싶은 곳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언제 다시 예전처럼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 안타깝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면 가고 싶은 것의 목록을 만들어 보면서 방구석 해외여행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시칠리아, 아일랜드, 뉴질랜드 트래킹, 캐나다 록키, 아이슬란드, 피요르드, 파리, 뉴욕, 런던, 바르셀로나, 포르토..

니콜라 부비에(1929~1998)는 제네바 대학에서 문학과 법을 전공하고 산스크리트어와 중세사에 관심을 가졌다. 1953년 친구인 화가 티에리 베르네(1927~1993)와 함께 피아트 자동차를 타고 인도로 출발했다. 그 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저술 작업을 했다. 1982년 파리 비평가상, 1995년 그랑프리 라무즈상을 받았고, 2004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그의 전집을 발간했다. 원 없이 여행하고, 여행하면서 쓴 글은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니 '행복한 산책자'임에 틀림없다.

'세상의 용도'는 니콜라 부비에의 글에 티에리 베르네가 간간이 삽화를 그려 넣은 여행기이다. 그들은 스위스 제네바를 출발해 일 년 반 동안 유고슬라비아, 터키, 이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까지 여정을 거친다. 우여곡절이 많지만 낯선 곳, 낯선 길을 여행하면서 세상의 '지혜'들을 보고 배우며 느낀 것들이 담겨있다.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다. '세계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 색깔을 띤다.' ' 나는 이 아폴론적인 풍경에 도취되어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한 시간을 보냈다. 자질 구레한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는 모루처럼 단단해 보이는 이 거대한 흙과 바위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익숙한 것으로부터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인데 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니콜라 부비에는 말한다.

'당신을 파괴할 권리를 여행에 주지 않는다면 여행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꿈이다. 여행은 마치 난파와도 같으며 타고 가던 배가 단 한 번도 침몰하지 않은 사람은 바다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여행은 '파괴'의 'ㅍ'에도 못 미쳤던 것 같다. 충분하게 시간을 내지 못했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여행을 나설 때 그런 것은 버리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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