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 중 나를 깨우는 한 문장
'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
- 미셸 투르니에, <예찬>
매일 한 꼭지씩 우리 내면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덕성을 다룬 좋은 문장을 중심으로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나서 오늘이 55일 째다. (이렇게 잘 셀 수 있는 것은 같은 날 100일 목표로 아침 걷기를 시작한 덕분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은 공복 유산소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
문장을 지어낼 수 없으니 좋은 문장을 찾기 위해 책장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책들을 오랜만에 꺼내 읽어보게 된다. 전에는 싱겁게 느껴져서 읽다가 덮어둔 책들이 다른 관점으로 보면서 저자의 의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느낌이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예찬'이다. 파리 소르본에서 철학과 법학을 전공한 투르니에의 철학적 소양이 듬뿍 묻어나는 글들은 우리가 조금만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면 이 세상에 예찬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예찬을 하려면 우선 많이 알아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고,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관찰을 할 때는 가슴으로 느끼고 그것을 적절한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한다. 투르니에는 '나무'에 대해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땅에 발목이 잡혀있는 모든 식물이 필경 시달리도 있을 강박관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라고 썼다. 그게 뭐가 궁금할까?라는 생각부터 들지만 투르니에는 자신의 집 뜰에 심은 두 그루의 전나무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 나무들이 똑바로 자라지 않았는데 그것은 나무들이 서로를 증오하기 때문이란다. 나무는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거의 무한대의 공간을 주위에 확보해 딱 한 그루만 따로 심어 놓았을 때 멋지게 자란다고 한다.
사유의 시작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이란 인간의 본능이다. 아담과 이브에게 지혜의 열매를 따먹게 시킨 것이 바로 호기심이며 그것은 발견하고 보고 알려는 욕구, 예찬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예찬은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윤기를 더해 준다. 예찬하는 만큼 내 삶은 풍요로워진다.
투르니에는 말한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