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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유진 Sep 04. 2024

제발 전화하지 마세요

콜 포비아

"나머지는 저나*로 설명드릴게요!"

(=전화*)


외주를 받기 위해 클라이언트와 연락을 취하던 중

은재는 저 답장을 보고

경악해서

정말 경악해서

메시지를 클릭하여 확인하지도 않았다.


오늘로

'안읽씹'을 한 지 일주일 째다.


은재는 그리 솔깃한 외주 제안이 아닌 것에 감사하면서

왜 전화를 요구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속내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은재는 전화가 너무 싫었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은재는 전화가 싫고

전화가 무서웠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무조건 받지 않고

광고성 전화도 받지 않는다.

(은재는 요즘 세상이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게 광고성 전화인지 아닌지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으니까!)

그리고 모르는 번호도 웬만해선 받지 않고

메시지로 "누구세요?"라고 보낸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반드시 전화를 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은재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는데

가려고 계획한 가게들을 폭파시키는 힘이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은재가 해당 가게를 가려고 할 때 휴무도 아닌데

가게가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애인은 은재가 가게에 전화를 해서

오픈을 했는지 물어보고 가자고 하곤 했다.


어...


은재는 그럴 때 가게 전화번호를 찍어

애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런 은재가 배달 주문을 하는 전화나

길을 묻는 전화나

주차 공간을 묻는 전화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더 심할 땐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만나면 더 할 나위 없이 떠들어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매번 전화를 무서워했던 것은 아니다.

은재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땐

전화도 자주 받아야 하고

응대도 해야 해서

(특히나 메뉴가 나오면 큰 소리로 번호를 불러야 했다)

그때는 전화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심해진 우울증으로

좋지 않게 일을 그만 두고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전화도 애인이나 가족하고만 하다보니

다시 전화 자체가 공포스럽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람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전화를 무서워했더라?


전화가 와서 벌벌 떨었던

가장 오래된 순간을 떠올리자면

첫 연애를 했을 때다.


첫 연애를 했을 때

당시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오는 것을,

휴대폰 화면에 그의 이름이 떠있는 것을 공포스럽게 보며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왜 전화했어?"


타이밍이 안 맞아 전화를 못 받은 척

메신저로 그렇게 물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왜 은재는 이토록 전화를 두려워하는 걸까?


구글에 '콜 포비아'라고 검색해보자 한 인터뷰가 나왔다.


 심리학자들은 전화 통화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일으킨다고 설명합니다. 의사소통의 90% 이상이 '비언어적 요소'에 의해 일어난다는 분석이 있는 만큼 커뮤니케이션은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데요. 전화는 100% 구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건강의학에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게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신조어가 주목을 받을 땐 사회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는 사회불안의 증상일 수 있거든요. 디지털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이 많이 변했는데요. 그 중심에는 '텍스트'가 있습니다. 

우리는 텍스트로 상대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도 전혀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더욱 편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엔 한 시간을 통화하고도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고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지금은 "자세한 내용은 메시지로" 하자고 합니다. 사회 흐름과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소통 방식이 변화하게 되는데요. 전화 공포증은 텍스트 기반 소통이 익숙한 젊은 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콜 포비아'가 세대를 구분 짓는 현상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성격적인 영향도 큽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거나 전화로 큰 실수를 하거나 비난을 받았을 때도 전화 공포증이 생길 수 있고요. 자신이 말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내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안 좋게 들리는 건 아닌지, 전화를 거는 시간이 부적절한 건 아닌지 이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하는 경우, '콜 포비아'를 겪을 수 있습니다.


-YTN 사이언스 '콜 포비아, 혹시 나도?' 중 일부 인용


글이 길지만

전화를 두려워 하는 마음은


시각적인 것의 배제.

전화라는 수단이 주는 본질적인 한계 때문이다.

전화를 할 때엔 상대의 표정이나 제스쳐를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보다 더 정확한 의미 파악이나

분위기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텍스트에 익숙해진 세대.

텍스트가 주는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완벽주의 성향이나 비난에 취약한 성격적 문제.

완벽주의 성향일수록 구두보다는 텍스트를 선호할 것이다.

수정할 수 있고

충분히 검토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비난에 취약한 성격을 가질수록

시각이 배제된 전화에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게 보이는 대상은 오로지 나뿐이고

그러므로 모든 상황이, 정확하게는 비난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또 비난에 취약한 성격일수록 비난을 잘 예상한다!

(그리고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시각이 베재된 채 오로지 청각만 의존하는 전화 상황에서

종잡을 수 없는 비난을 예상하며 불안해하는 것이다.


전화는 텍스트로만 써도 스트레스다.

지금 이 순간, 오지도 않는 전화가 싫어지는 은재였다.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은재의 경우

특히나

완벽주의의 성향과 비난에 취약한 성격 때문에 전화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은재는 누군가와 전화를 할 때,

전화를 거는 것 자체도 두렵지만

애초에 무슨 말실수를 할까봐 걱정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은재는

사실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글을 쓰는 것 보다도) 말하는 걸 잘 하지 못하니까

말의 연장선상인 전화도 무서워하는 게 당연했다.


기사에서는 조금씩 전화하는 양을 늘려가면

콜 포비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은재는 그 방안이 우스웠다.

대개 콜 포비아인 사람들은

전화할 대상이 별로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반증하듯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자꾸 전화를 하라는 것은

상대는 무슨 죄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 또한 콜 포비아적인 사고 같았지만.


사실 콜 포비아는 정확한 병명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붙여진 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병은 실체하는 게 아닌 걸까?


실체하지 않으니

이 두려움은 거짓된 것, 허울일 뿐일까?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걸.


은재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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