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포기와 뒤로 미루기
첫 수기를 쓴 지
두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제 은재는 이제까지 쓴 글을
모두 정리했다.
에피소드의 형식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글의 흐름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당연한데
꽤나 중구난방으로 쓰인 수기들을 보니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었다.
이건 글 자체에 대한 감상.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이 있었다.
이건 은재의 삶에 대한 감상인데,
그건 바로
지금 은재가
세상 망가진 루틴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달 전, 수기에선
은재는 이런 루틴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다.
첫 째로 일어나서 1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운동에 대해서는 다른 에피소드로 다룰 것이니 설명을 생략.
둘 째로 씻는다.
샤워를 하거나 비누로 세수를 한다.
귀찮아서 씻지 않는 일은 없도록 한다.
셋 째로 점심을 먹는다.
끼니를 챙기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넷 째로 몇 개의 할 일들 중 하나를 정해 오후를 보낸다.
공부일 때도 있고
소설을 쓸 때도 있고
소설 릴스를 만들 때도 있고(인스타그램 @dbsdbwls_에서 그 예를 확인할 수 있다)
모 사이트에 기고할 글을 준비할 때도 있다.
다섯 째로 저녁을 먹는다.
주로 엄마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먹는다.
여섯 째로 또 다른 할 일을 9시까지 한다.
일곱 째로 고양이들의 나이트 케어를 한다.
양치를 시키거나
밥그릇 설거지
똥간 치우기 등등.
여덟 째로 세수를 하고
저녁과 취침 전 약을 몰아서 먹는다.
(은재는 매일 저녁 약을 잊는다)
그리고 취침.
-[나의 푸름은 시나브로 심록을 닮아]의 "집에 나갈 수 있을까?" 중 일부
이 루틴은
지금의 은재에게 꽤나 낯설었다.
두 달 동안 참 많은 부분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은재는 현재 운동을 포기했다.
달력을 보니
한 달 정도 되었다.
2년 동안 은재는
운동을 하다 말다하는 것을 꾸준히 하면서
10키로를 감량했다.
운동을 꾸준히 했을 땐
주 4회 이상 운동을 하면서
매일 식단표를 써 식단을 조절하고,
몸무게는 강박이 생기지 않게
일주일에 한 번만 쟀다.
살이 빠지는 것이 신기해서
운동에 재미를 붙였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특히 올해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푸름에 운동이 좋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운동은 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은 친구였다.
정말 무력했던 순간에 운동을 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한 달 전만 해도 그 덕을 많이 봤다.
하지만 지금의 은재는
운동을 할 정도의 의지가 없었다.
정말 온몸이
물 먹은 솜 같이
아직 마르지 않은 세탁물 같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더웠다.
올해 여름은 무자비하게 더웠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꼭 쓴 맛 같았다.
또 달라진 점은
위와 같은 루틴들을 쉽게 미뤘다는 것이다.
특히나 고양이의 나이트 케어를 미뤘다.
9시가 아닌 10-11시로 미루곤 했다.
그렇게 미룰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식하게 할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은재는 7월 초,
자격증 필기를 붙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8월부터 재택 근무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격증 실기를 8월 안으로 붙어야 했다.
그래서 은재는 맹목적으로 실기 공부를 했다.
머릿속에 "실기 공부를 해야 한다"는 문장밖에 없어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한 2주 정도 공부를 하고
7월 말이 되어서 실기 시험을 봤다.
그리고 다가온 8월.
재택 업무를 시작했고,
그것 또한 맹목적으로 임했다.
이번에도 머릿속에 "일을 해야 해"라는 문장밖에 없었다.
그런 맹목적인 공부와 업무는
하루의 루틴을 가난하고 고되게 만들었다.
은재는 어느 날엔
연일 계속해서 새벽 3시까지 업무를 하다 잠이 들었다.
그러느라 두 달 전,
은재의 루틴은 모두 망가져있었다.
그리고 은재는 느끼고 있었다.
점점 자신의 일상이 잘못 만들어진 시소처럼
위태롭다는 것을.
은재는 절실히 운동을 함으로써
일상에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추가 지났음에도
날은 시원해지지 않고
요란하게 내리는 비로 습했고
이 맹목성의 속도, 어쩌면 ADHD의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은재는 오늘도 비가 올 것 같이
가라앉은 하늘을 보며 다짐한다.
가을이 되면
선선한 가을이 되면 다시 운동을 하자.
그래서 하루를
말똥말똥하게
다양한 할 일들로 채워 알차게 보내자.
은재는 다짐하며
또 미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