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울증 환자의 나쁜 습관
외주 업체와 메시지 중
은재는 별안간 상처를 받았다.
은재는 업무적이거나 공적인 메신저를 보낼 때
굉장히
신경을 쓴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적절한 어휘와
적당한 이모지를 사용해서
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오늘 외주 업체는
은재가 묻는 말에
간단히
"수정할 거 있으세요."
라고 답장을 보냈다.
은재는 거기서 크게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은재의 이러한 반응에
친구 중 하나는
"찐따 같다"고 말했다.
은재는 그 말에
또 한 번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은재는 굉장히 "찐따" 같았다.
은재는 자신이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일화가 떠올랐는데,
첫 연애를 할 당시 남자친구가 연락이 두절 되면
은재는 불안해져서
이래 저래 상황을 만들어가며 수많은 메시지를 보냈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게 아닐까, 부터 시작해서
다른 여자와 있다는 난잡한 생각까지 했다.
결국 화가 많이 나서 투덜거리는 은재에게
당시 남자친구는
"망상 좀 하자 마"라고 했었다.
그때 은재는 자신은 작가이고 상상력이 풍부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지금의 연애도 은재는 망상으로 불편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애인과 인사만 하는 여자인 친구나
애인과 사적인 연락을 하는 여자인 친구에 대해
문란한 상상을 하며
그 사람을 미워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애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애인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은재는 멋대로 이런 망상했다.
그런 여자가 조수석에 앉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여자가 애인의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아니.
그냥 옆에 앉는 게 싫은데?
은재는 알고 있다.
이런 망상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도 무척 피곤하게 만드는
망가진 상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망상에 타고난 성격이
지금처럼 결국엔
"사람들이 차갑다"고
"모두 나를 상처준다"고
생각하게 하며
은재 스스로 상처를 낸다는 것을.
은재의 애인은 이런 은재에게
간단히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 말에 은재는 '내가 문제구나' 하고..
또 망가진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은재가 그렇게 느끼지 않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아~ 그냥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였다.
아, 근데 그게 나한테는 너무 어렵다고!
게다가 세상은 착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는 개인적인 정언(=망상)도
다른 망상으로 인한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은재는 세상은 착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는 생각(=망상1)을 정언처럼 믿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때
"왜 저렇게 차갑게 말하지?"
"내가 잘못한 건가?"
이런 망상(=2)을 하게 되고
결국 이 정언(=망상1)이 소금이 되어 상처(=망상2)를 더 따갑게 한다는 것이다.
은재는 뉴스에 나오는 악인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은재에게 상처를 주고 지나간 수없이 많은 친구들과 남자들도
결국엔 악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은재의 소설뿐 아니라 글엔
원초적인 악인이 없다.
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은재는 초식 동물이다.
결국엔 육식 동물에게 살점이 뜯기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자에게 사냥 당한
사슴의 눈이 떠오른다.
동그랗게 빛이 나는 동공은 이내 빛을 잃을 것이다.
또 한 친구는 은재에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그런 상황을 많이 겪다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말한다.
훌훌 털어넘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은재는 그 말이 무섭다.
얼마나 더 상처 받아야 하지?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버린다.
애초에 이미 그릇이 다른 것이다.
나는 그른 것이다.
은재에게 망상은
한계 없이 늘어나는 거미줄 같다.
게다가 닿으면 찐뜩하고
잘못하다간 걸릴 수도 있는.
은재는 상처 받지 않고도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은 부서질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