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전학을 생각하게 할만큼의 일
친구는 그런 것이었다.
무리에 끼지 못하면 낙오되고 도태되고 말것이라는
생존의 법칙을 아이는 체득하고 있었다.
무리에 끼려고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아이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무려 엄마가 경찰인)
줄지어 나쁜놈이라고 말하는 쪼무래기 2 정도로
전락하고 있었고
넘어진 친구를 일으키기는커녕
입에 모래를 차 넣는 친구들 사이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그 애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꼬봉은 친구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어려웠다.
아이도 머리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친구가 아니라 종속의 관계고
순응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깨질 계약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어진 날들은 하루는 좋고
하루는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대장질을 하는 아이는
하루는 내 아이를 1로 내세우며
다른 아이를 따돌렸고
하루는 다른 아이들을 내세우며 내 아이를 따돌렸다.
내 아이는 대장의 기분에 따라
하루는 재잘재잘 떠들며 하교하고
하루는 어깨가 축 쳐져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하교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제대로 맞은 적도 없고
아직 이렇다 할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고
내 아이가 우울하니 해결해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왕따놀이였고
분명히 9살 내 아이에게는 생사의 기로에 선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풀이 되던 문제는
의외로 너무 쉽게 풀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던 어느날 쯤
아이는 세상 없는 밝은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엄마 나는 이겼어요. 이제 나는 부하가 아니에요.”
이야기는 이랬다.
그날도 대장은 심사가 뒤틀렸는지 내 아이를
따돌렸단다.
그날은 내 아이도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모르는체 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대장은 그 모습에 더욱 화가났는지
다른 아이를 시켜 내 아이를 넘어뜨리고 때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내 아이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자기를 넘어뜨린 친구를 두고
곧바로 대장에게 달려가
“너 왜 나를 넘어뜨리고 때리라고 시켜”
하곤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단다.
2학년 아이의 입으로 과장된 이야기로는
내 아이의 주먹이 핵주먹처럼 날아가
대장의 얼굴을 가격했고
대장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내 아이가 마치 번개맨처럼
날렵하게 날라
복부를 가격, 대장이 울면서 항복했단다.
(철저히 내 아이의 이야기를 고증한것이니
실은 그저 엎치락 뒤치락 했을수도 있겠다)
선생님은 그 간의 사정들을 짐작했는지
내 아이의 선빵을 몰랐는지
그저 아이들간의 다툼으로 생각하고
서로 화해하라고 했단다.
대장이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내 아이가 전화를 건내받아
당당하게
이러저러해서 내가 먼저 쳤다. 정말잘못했다.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사과를 했단다.
‘자기 아들이 누구를 시켜서 자기를 때리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니 아들을 주동자로 지목, 때렸다‘
라는 내용.
대장의 엄마는 어땠을까.
때리라고 부름을 받은 아이도
전화에 대고 시인했다 하니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라 솔직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 일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고
내 아이는 그날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대장에게 선빵을 날리면서
또래사이에선 뭔가 모를 아우라가 생겼는지
아무도 덤비지 않았고
내 아이가 깨뜨린 권력이 모델이 됐는지
그 뒤로는 대장에게 번번히 애들이 대들기 시작했단다.
폭력으로 해결되 버린 사태가
마음에 안들지만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내 아이가 해결했다는 것이다.
내가 개입하지 않고
내 아이가 깨닫고 해결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내 아이는 더 큰 왕따와
더큰 권력을 만날지도 모른다.
때로는 왕따로 때로는 꼬봉으로 혹시 대장으로 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자기가 해결한 한번의 경험이
내 아이에게 남았기를 바라본다.
또 그 경험으로 내가 다음 번에는
조금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