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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21. 2020

모든 글은 쓰는 방식이 달라요

제가 못 쓰는 게 아니구요

모든 글은 쓰는 방식이 다르다. 그중에서도 내가 ‘공부’한 글은 ‘시나리오라는 서사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혹은 공감할 만한 주인공이 어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하고, 그걸 개연성 있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해결하는 과정을 글로 그리는 것이다. 미성숙했던 캐릭터가 성장하고, 그런 그 주인공 앞에 적절한 타이밍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사건이 등장하고, 너무 어렵거나 그렇다고 너무 예상 가능하지는 않게 그 위기를 헤쳐나가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내가 공부한 분야의 글이다.


이건 회사에서 사용되는 글이 아니고, 일상에서 사용되는 방식의 글도 아니다. 사실 다 같은 한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단지 글을 쓴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부탁을 아주 무례하고 집요하게 받은 적이 있었다.




20대였던 어느 날, 엄마가, 같은 절에 다니는 절친한 친구가 선원(절을 다른 말로 선원이라고 명칭을 붙인 곳)에서 느꼈던 일들을 수필로 써서 절 사보에 실어야 하는데 니가 좀 대신 써달라고 하셨다. 써주면 안 될까, 도 아니고 써달라고 하셨다.


사실 나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그 부탁을 받아온 것 자체가 문제였다.


영화 시나리오와 수필은 완전히 다르다. 아니, 그냥 각 분야에 사용되는 글은 모두 다르다. 그런 식으로 치면 나는 가전제품 팔 때 들어가는 설명서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 직업인도 따로 있다. 한국말이라는 가장 상위 카테고리가 같을 뿐이지, 무조건 다 ‘글’이라고 묶으면 안 된다.


나는 엄마에게 친구분의 글을 대신 써드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일과 개인적 경험인 수필을 쓰는 일은 다르다고, 그리고 인생을 얼마나 살았는지에 따른 개인적 경험량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말씀드리고, 내가 인생에서 배우고 느낀 것보다, 그 아주머니가 더 많은 걸 인생에서 배우고 느끼셨을 테니 직접 쓰시는 게 맞다고 말씀드렸다. 무엇보다 수필은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그 경험을 한 당사자가 쓰는 게 맞는 거라고 말씀드렸다. 맞고 틀린 게 없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개인적인 마음을 글로 쓰는 거라고.


엄마는, 이미 부탁 들어주기로 했는데 거절하면 어떡하냐고, 넌 책도 많이 읽으면서 그깟 글도 못 써주냐고 했다.


나는 재차, 수필은 누가 대신 써주는 글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물론 쓰기 싫기도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글이기도 하고 엄마에게 말씀드린 이유 외에도 영상 관련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내면, 마음을 묘사하는 글을 쓰기 싫어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긴 있다.




영화 시나리오와 수필은 진짜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한 남자가 믿었던 아내의 불륜과 대형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던 회사 동료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사랑과 일에 있어 각각 배신을 당했다는 서사가 있다고 치자.


영화 시나리오로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 좀 거칠게 말해 분노의 양치질을 하거나, 과음을 하거나, 갑자기 아내의 화장대를 쓸어버린다거나, 홧김에 문짝을 주먹으로 친다거나 하는 식의, 눈에 보이도록 연출 가능한, 행동을 묘사하는 형태의 글을 써야 한다.


수필, 혹은 소설은 동일한 상황에 놓인 남자라고 하더라도 남자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남자가 얼마나 배신감에 입이 쓰고, 피가 거꾸로 돌 것 같은 느낌인지, 그동안 아내와 웃고, 울던 그 시간에 대해 얼마나 허무하게 느끼는지, 기회 앞에서 친구를 이토록 가볍게 배신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한다든지 하는 마음을 묘사해야 하는 글인 것이다.


그런데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내면에 대해 쓰다 보면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부분을 지우고 싶은 마음을 참기 어렵다. 쓰다가도 곧바로 지우고 싶다. 연출 못할 내용을 글로 쓰고 있으면 아직 만난 적도 없는, PD와 감독이 내 시나리오 원고를 집어던지며 욕을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연출하라고 쓴 거야? 어? 너라면 이거 카메라로 찍을 수 있겠니?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쓰라고, 어? 추우면 따뜻한 데서, 더우면 에어컨 틀 수 있는 실내에서 편하게 글 쓰면서, 더우면 쪄 죽겠고 추우면 얼어디질 것 같은 현장에서 뺑이 치는 사람들 생각해서, 쫌, 제대로, 네?’


내가 너무 악당처럼 묘사한 건지, 저 모습이 실제의 반의 반도 안 담은 것인지 모른다. 안 겪어봤지만 후자일 것 같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 작가 선생님은, 방송국 PD들이 자신에게 받을 빚이 있는 사채업자처럼 자신을 쪼아댄다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거절하는 상황에서, 이 글과 저 글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는 것도 예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과 수필을 쓰는 게 얼마나 다른지까지, 그리고 내가 마음을 묘사하는 글을 왜 쓰기 싫어하는지는 말씀드리진 않았다.


나도 계속 공부하는 입장이었고 각각의 글에는 그냥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겨우 설명할 정도인 것이지, 내가 뭐라고 알량한 지식으로 전문가 흉내를 내기는 싫었다. 무엇보다 내가 긴 내용의 말을 조리 있게 잘 못한다.


어쨌든, 그분 스스로가 자신의 글을 더 잘 쓸 거라고, 그분께 그렇게 말을 전해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히 이해를 하셨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게다가 난 좀 순진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내 거절에 아예 덫을 쳐놓고 나를 불렀다.




 1-2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내가 너무 집에만 있는다면서 엄마가 절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수필 대필을 부탁한 친구’분을 마주쳤다.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그분이 말했다.


-얘, 너 내 글 쓰는 거 못 써주겠다고 했다며?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앞의 상황 설명 다 빼고 결과적인 부분만 놓고 보자면, 그분 말대로 나는 ‘요청한 글을 못 써주겠다’고 한 게 맞다.


-아주머니, 그게 아니구요. 아주머니가 써달라고 하신 그 글, 절에서 그동안 일하시면서, 봉사하시면서 느꼈던 점, 좋았던 점들을 쓰시는 거라면서요. 제가 그걸 어떻게 써요. 제가 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제가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인데.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이런 건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잖아요.


-너, 글 쓴다며. 학비도 꽤 비싸게 들여가면서. 영화 시나리오는 몇십 장짜리 글인데 그냥 가벼운 수필 1-2장 써주는 게 어렵니? 왜? 돈 주면 써줄래?


엄마도 옆에서 아주머니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 나를 힐난했다. 그날 그 상황이 엄마가 내 거절 의사 전달에 실패해서 나온 것인지, 아직 작가도 아닌 같잖은 내가 1-2장짜리 글을 안 써주고 유세를 부린다는 생각에 일부러 거절할 수 없도록 대면을 위해 두 분이 설계를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결국 수세에 몰린 나는 글을 써드리겠다고 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아주머니에게 이곳에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되었는지 인상적인 일은 어떤 게 있었는지, 그때 어떤 느낌이었고 무슨 생각이셨는지 여쭤보았다.


-얘, 그런 거 머리 빠지게 생각하고 정리해서 다 말해줄 거면 내가 직접 쓰지, 왜 너한테 시키겠니? 니가 적당한 상황을 잡고 생각해서 상상해서 써달라는 거잖아.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수필을 왜 상상해서 써야 한단 말인가.


아무 정보도 없이 도대체 무슨 글을 써달라는 말인가.


수필이건 영화 시나리오건 아니 뭐가 됐든, ‘글감’은 주고 써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모든 글의 기본은,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 +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자료이다.


글을 스스로 쓰기 싫어하고 있고, 글감도 안 주면서 도대체 무슨 글을 써달란 말인가.


그 아주머니의 싫은 티를 감당해내며 어찌어찌 정보의 조각들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몇 개의 정보를 던져주고 난 아주머니는 정작 중요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말해주시지 않고 일하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뜨셨다.


무슨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2-3일 끙끙거리고 써서 메일을 보내드렸다.




며칠 후 내가 쓴 글 읽어봤다며 전화가 왔다.


-너, 글 쓰고 책 많이 읽는 애 맞니?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 안 하는데. (어디 몇 구절 읽어주시고는) 나는 이런 적 없는데. (또 몇 구절 읽고) 이 일은 있던 일인데 이런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는데. (...) 진짜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하나도 안 들어갔네. 너 진짜 글 쓰는 애 맞니?


-...


-얘, 그냥 내가 쓸란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이랑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니.


설명을 드릴까 하다가 관뒀다. 기승전-내 잘못으로 이미 짜인 판이었다. 이런저런 설명도, 귀를 막고 안 들으려는 사람에겐 소용없다. 나는 씁쓸하게, 만족할 만한 글을 못 써드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이 아주머니에게 글을 써준 이후, 엄마는 나에게 재능 타령을 참 많이 했다. 니가 진짜 재능이 있는 게 맞느냐고. 도대체 뭘 배우는 거냐고.


어딘가에 이 아주머니가 원하는 그런 미친 재능의 소유자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잘 쓰는데 배우지 않고도 수필도 잘 쓸 수 있는 사람.


왜 있지 않은가. 회사에서 사무적인 기획서만 잘 쓰던 사람이었는데 그냥 어느 날 심심해서 써본 웹소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갑자기 인기를 끈다거나 하는 류의 인간. 우리가 소위 사기캐라고 부르는 그런 부류.


안 안타깝고, 나는 그런 부류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말이 통할 방법은 없다. 거절만이 답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무리 몰아붙여도 아닌 건 거절을 해야 하는 거라고, 그때 생각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비난만 들었다.


나는 친구가 헛소리하면 절교를 단호하게 잘하는 편인데,

이 분과는 절교하기도 애매한 사이라서 불가능하다. 내

친구는 아니니까. 법으로 막은 것도 아니지만 묘하게 불가능한 일이 있는데 이런 경우가 그런 경우 같다. 친구 말고 엄마 친구랑도 절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아주머니랑 절교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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