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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Apr 01. 2020

아빠도 좀, 지쳤어

그때는 이해 못 해 드렸지만 이제야 조금 알겠다

저번 주 토요일, 영화 <스타 이즈본>를 보러 갔는데 55분 만에 사운드가 나오지 않아서 환불받고 집에 왔다.


중요 주제는 아니긴 한데, 주인공인 잭이 앨리에게 이렇게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에게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 거죠.




고2 때였나, 고3 때였나.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제 좀 지친 것 같다고. 아버지도 그냥 좀 혼자 살고 싶다고. 어머니와 이혼하면, 혹시 아버지와 살 생각이 있느냐고.


나는 그때 분노로 가득 차서 대답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는 순간, 죽을 때까지 나를 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엄마 호강 한 번 못 시켜줬으면서.. 그런 생각 하실 거면 제 인생 나가리 되는 한이 있어도 아빠 안 보고 살 거예요. 


무슨 말을 저렇게 했을까. 겨우 3.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나. 공부를 아주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았었는데.


혼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그냥 좀 혼자 살고 싶다'는 아버지의 고백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와 이혼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 안 볼 거고, 도움도 안 받을 거라고, 그래서 대학을 못 가고 그래서 변변하게 취직도 못하고 망가진 삶을 살더라도, 아버지는 안 보고 살 테니까 그럴 자신 있으시면 이혼하시라고, 아주 차갑게 말했다. 나는 왜 화가 나면 흥분하지 않고 차가워질까.


그리고 얼마 동안 아버지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고, 말도 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들은 일은 없다. 다만 몇 주 뒤에 아버지가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그만 화 풀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두 분은 지금도 부부로 살고 있다.


이혼하려던 마음을 바꿔먹으신 것이 꼭 나 때문만은 아니시겠지만 다른 많은 사건들을 통해 나는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


어머니는, 그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나마 부정하려 했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어쨌거나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는데.




얼마 전 설에, 집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뵀다.

      

그리고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나의 방문에 아버지는 무엇이라도 잘 챙겨 먹이고 싶어서 집에 무슨 음식이 있는지, 나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계속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할 때마다, 그 모든 걸 챙겨야 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이전부터 그랬겠지만 그게 올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나로 인한 어머니의 가사노동.


사랑하지만 챙겨 먹이는 부분에 있어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버지와, 사랑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해주는 어머니.

 

아버지는 냉장고의 어디에, 혹은 베란다 어디에 어느 음식이 있는지 잘 모르니 그걸 다 알고 있는 어머니가 움직여서 챙겨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챙겨 먹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어머니의 냉장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럴 수가 없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먹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가기 싫다. 가기 싫어하는 내가 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싫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머니 마음속에 오랜만에 오는 자녀의 방문이 반갑고, 챙겨 먹이고 싶은 사랑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마음이 전혀 없어도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어머니는 하기 싫어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나에게 넌 도대체 왜 ‘매일’ 밥을 먹냐고 ‘매일’ 물어봤구나.


내가 처한 두 가지 현실이 동시에 보였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 눈빛으로부터 세상 보람되고 뿌듯해하는 것과 나를 먹이기 위해 챙기는 어머니의 움직임과 말투에는 나 때문에 자신이 '귀찮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가벼운 혐오.


설이고 뭐고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는 세상 불편한 식사. 그 식사를 하며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고마움을 더 많이 느꼈는지, 나 때문에 어머니를 귀찮게 했다는 데 대해 죄책감을 더 많이 느꼈는지 모르겠다.


다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이 어머니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외할머니가 아버지를 사위로 선택했고, 그 당시엔 부모님 말을 거역하는 게 불가능했던 분위기였으니까.


그녀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버지나 나, 그리고 내 동생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녀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분명 우리들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은 데에도 우리들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 역시 우리가 요구한 삶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이제 좀 지친 것 같다는 말. 혼자 살고 싶어 하면 나쁜 사람이냐는 물음. 


자신의 그늘 아래 먹여 살릴 사람이 3명이나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는지. 더럽고 치사해도, 가족 때문에 일을 절대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까마득했을지.


지치면 안 되는데, 지치는 걸 막을 길이 없는 게 얼마나 지치는지.


그때는 왜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이 원망스러웠을까. 사실 아빠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빠도 지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지쳤다는 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였을 텐데.


밥벌이해보니, 지치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겠다. 나도 그때 18살밖에 안 되었으니 아빠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빠 나이 그때 겨우 48살이었구나.


모르겠다. 나를 미워하는 엄마도 불쌍하고 나를 사랑하는 아빠한테도 죄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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