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은 Nov 01. 2020

결국 내 삶은 내가 원하던 삶과 같은 문장이 되었다.

배열 순서는 다르지만

나는 20대 때, 충무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래서 가진 돈을 박박 모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죽도록 노력한 8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나리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직장에서 평범하게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인이 되었다. 말하자면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내가 목표로 하던 삶에서 실패했다는 뜻이다. 나는 성공할 줄 알았고, 솔직히 실패하면 우울하고 좌절감으로 절망할 줄 알았다. 쪽팔려 죽을 것 같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심지어 슬프거나 후회스럽지도 않다.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창피하지도 슬프지도 후회스럽지도 않다. 그것 때문에 시간과 돈을, 어떻게 보면 낭비한 셈인데 말이다.


어쨌든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 아니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잠을 쪼개서 노력했고, 아파도 노력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손은 글을 썼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졸릴 때도 글을 쓰기 위해 일어났다. 정말 미친 듯이 노력했다. 글이 막혀도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 정도로 노력을 해보고 나니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 정말 최소한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어쩌면 겨우 이 정도뿐인 내 능력의 한계를 이제야 제대로 마주 하게 된 것뿐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타임머신이란 게 있어서 지금의 나에게, 그 시절의 나를 만날 기회를 준다면 한번 꼭 안아주고 싶다. 잘했다고, 도전해줘서 고맙다고. 원래 살고 있던 그 평온한 삶에서 이탈해서 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줘서, 후회하지 않게 해 줘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어쨌거나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내 모습은, 말하자면 내가 꿈꾸던 '글 쓰며 사는 삶의 그림'은 이런 그림이었다.

글을 잘 쓴다. 그래서 그걸로 충무로에서 밥벌이를 한다.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은 '이런 그림'이다.

충무로에서 밥벌이를 한다. 그래서 그걸로 글을 잘 쓴다.


글로 생존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생존이 해결된 인생은 잘 굴러가고 있고, 밥벌이를 잘하고 있는 덕에 굶지 않고, 매달의 카드값에 전전긍긍하지 않느라 편안해서 글도 꾸준히 잘 쓰고 있다. 물론 높은 월급은 아니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충무로에서 일하면서 말이다.  


작가가 되지 못한 작가 지망생 인간의 삶에서, 밥벌이 이후가 꼭 글을 써야 하는 인과 관계의 필요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대단한 글쟁이, 혹은 엄청난 작가처럼 '글은 내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 써지는 날보다 머리를 쥐어짜는 날이 더 많지만 글을 쓰는 게 좋으니까, 그래서 쓴다. 안 쓰는 삶보다 쓰는 삶이 더 좋으니까. 소소하게 '글'에 대한 덕질 하는 마음 비슷한 느낌으로.  


어쨌거나 성공한 삶이든, 지금 내 삶이든 문장으로 보면 그 둘은 쌍둥이처럼 거의 똑같다. 희한하게도.

이전 12화 칭찬 대신 뜨겁게 욕을 먹을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