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비연애, 피연애

연애하지 않아도 괜찮을 권리

by 시은

최근에 개인적으로 <나는 SOLO>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게 사실 약간 길티 플레져다. 콘텐츠라는 프레임 내에서 타인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과 심리를 훔쳐보고 싶은 그런 거. 사실 연애가 재미있고 즐겁기도 하지만 별개로 비연애의 즐거움도 분명히 있다. 연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얻는 안정감, 친밀감이 연애로서의 행복이라면, 솔로라서 즐길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평온함의 기쁨이 비연애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비연애 분야 칼럼니스트 작가님의 북토크를 다녀왔다.


북토크에 모인 사람들 역시 최근 핫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꽤 본다고 했다. TV를 안 봐도 인스타며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그 방송 관련 짤이 올라오니까. 우리는 중간 중간 <나는 SOLO>, <환승연애2>, <체인지데이즈> 에서 등장하는 각자의 빡침 포인트들을 말하면서 우리가 실은 그 지점들을 즐기고 있다는 느꼈다. 물론 '우리 작가님'도 함꼐. 작가님의 최근 근황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같은 반의 남자애가 저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데요, 저는 그 친구가 안 좋아요. 그런데 고백을 한 것도 아니어서 뭐라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워요. 그런데 그 남자애가 저랑도 아는 친구한테 이런 말을 했대요. '내가 이만큼 했으면 OO이도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저는 그 친구가 나를 좋아한다, 는 걸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이런 얘기들, '**이가 너 좋아한다는데?' 이런 말, '이만큼 했다' 이런 말을 계속 전해 들으니까 어.. 내가 뭘 해야 하나? 근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 상황에서 제가 뭘 해야 하나 해서요.


나도 저 학생이랑 똑같은 일이 있었다. 고백을 한 건 아닌데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고 그 소문이 내 귀에 들어오게 된 일.


학생의 고민이 너무 완전히 이해가 되는 게, 차라리 고백을 하면 좀 민망하더라도 거절을 하고 끝낼 수가 있는데, 고백은 안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무얼 했는지, 뭐가 마음에 들었는지, 심지어 마주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언제 어떤 모습인 것을 보았는지를 누군가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인 남자는 정말 찍어낸 듯이 행동 패턴이 똑같다. 거의 20년 전 일인데. 전국에 무슨 프랜차이즈 학원 같은데서 이딴 방법을 '여자랑 연애하는 방법'이라고 가르쳐 주나 싶을 정도로.


내가 겪은 그 경험 속 남자도 저 사연 속 남학생과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내가 너 좋아해주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나한테 뭘 해준 거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가 날 좋아함으로 해서 내가 무슨 이득이 있었나? 전혀 아닌데.


아마 저 남학생도 질문자인 학생에게 '자신이 뭘 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만큼 했으면 반응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주변에 했을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봤을 때 남학생이 이 학생을 좋아한 게, 학생에게 무슨 이득이 생기는 일인가?




작가님이 답변을 했다.


-사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죠. 물론 그 남학생의 마음이 진심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일까요. 진심이라고 해서 누군가의 진심에 꼭 반응해줘야 할 필요는 없어요.

무조건 반응해줘야 한다는 건, 그 상대방을 낮춰 보고 있다는 거에요. 그 남학생의 마음이 진심인 것과 상관없이 질문자인 학생은 그 남학생이 싫을 수 있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지금은 누굴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미래에도 딱히 연애를 안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그 모든 선택지가 질문자의 것이고 학생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남학생은 지금 그거죠. #왜안만나줘


대부분의 문화권이 남성을 주체로 봄과 동시에 한 사람의 남성이 그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인정 받으려면 '여자를 한 명 거느려야 한다'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이 사실은 가부장제가 역사적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기도 하고 '여자가 한 명 옆에 있어야(거느려야) 정상(평균) 남자'라는 게 어느 순간 공식처럼 만들어지면서 연애 상대가 없거나 연애 못 하는 남성을 성적 약자화 하는 프레임도 최근에 생겼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연애를 못하면) 피해자가 된다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젊은 남성이 많아지면서 큰 문제가 되었었죠. 이 상황이 여성 혐오로 번진 계기에도 영향을 미쳤거든요. 당연히 남성이 주체로 되어 있으면 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자를 객체로 생각하겠죠. 그리고 주체인 자신의 마음이 진심이니, 객체인 여성은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가 무의식 중에 있는 거예요. 남성이자 우월한 위치(주체)의 내가 좋아해준다는 데 (객체인 네가) 감히, 왜 안만나줘, 가 되는 거죠.


연애를 해야할 20대, 30대 여성들이 연애를 안 한다, 그러다 보니 결론적으로는 결혼을 안 해서 출산율 운운 취지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연애하기 싫다거나 귀찮아서 비연애한다기보다, 연애하다가 그 남성과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아 이별하려고 하면, 그 끝에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꽤 많이 있었잖아요. 가장 최근까지도. 연애가 싫다가 아니라 연애가 무서운 거에요. 피하는 거죠. 연애, 그리고 이별 뒤가 복불복이에요. 이별 후가, 죽을지 안 죽을지 모르는 선택지인 거예요. 비연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피연애를 선택하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라도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 없는 한, 대부분 '사랑을 하고 있는 자'의 편을 든다. 누군가 사랑을 주겠다는데 안 받겠다고 하는 게, 매정한 것처럼 매도된다.


10년 전, 내가 전남자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고 있을 때, 신경 쓰이고 무섭다고 고민상담을 했을 때, 알고 보니 공감 능력이 없었던 그 직장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시은씨, 그렇게 잘났어? 그냥~ 받아주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


그 다음말이 뭐렸더라. 적당히 비싸게 굴어, 였나.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는 하지만 분명 걱정이라고, 무섭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 그녀 눈에는 어린 여자애의 밀당 정도로 밖에 안 비쳤나 보다. 그 뒤로도 종종 그녀는 '아직도 튕기고 있어?' 라는 식으로 내 상황을 물어보거나 내가 다시 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하면(이걸 왜 몇번이나 물어보는지),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그렇게 안 봤는데 여우네', '어려서 그런지 남자 재는 건가' 라며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녀의 화법이 다른 보통 사람들보다 교묘하게 가학적이고 유별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우선 우리나라에 '사랑' 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면 '오죽하면 그랬겠냐, 왠만한면 용서해줘라.', '하자 없으면 받아줘라.'하는 문화가 있다. 당사자의 공포나 불안함과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과 법이 나서서 대리 용서해주는 부분도 있다. 마치 연애하지 않을 권리는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그 사랑에, 먹으면 죽는 독이 들어 있어도 먹어야 하는 '까라면 까야 하는' 상하관계인 것처럼.


다시 돌아와서 작가님의 솔루션.


-무슨 사이가 되기도 전에 상하관계에서나 일어날 법한 '반응'을 기대하고 지금 이 상황을 불만스럽게 말하는 남자라면, 당연히 좋은 남자는 아니겠죠. 사실 되게 캐캐묵은 수법이잖아요. 서동요 수법. 어떤 여성에게, 그 여성에 대한 불리한 소문을 내서 경쟁자를 없애고 쟁취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상대방의 평판이나 마음은 신경도 안 쓰고.


뭘 어떻게해야 하냐, 라고 질문을 해주셨는데 '뭘 안 해도 되'지만 그냥 '넌씨눈' 방법으로 나가세요. 소문이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인데 하는 태도로요. 또는 '눈눈이이'라고 똑같이 해주는 거예요. 학생은 그 남학생 안 좋아한다고 소문을 내는 거예요. '나는 **이 안 좋아하는데.'이렇게.




아무도 궁금해하진 않겠지만 괴소문(나를 괴롭히던 소문이니까, 괴소문이라고 하자)에 시달리던 나의 상황은 아주 씁쓸하고 답답하게 끝이 난다.


수업 끝나고 나를 좋아한다고 소문을 낸 남자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었던 일이 있었다. 얼굴 마주친 김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절하면 민망할까 봐 따로 그를 불렀다. 나름대로 논리정연하게, 심지어 아주 예의바르게 만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를 모르잖아. 내가 진짜 잘 해줄게. 아직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거절을 해?


깊은 한숨과 함께,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자란 이런 남자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연애하지 않는 여자의 경우, 마음에 들지도 않는 남자라도 잘해준다고 하면, 일단은 사귀어 봐야 하는 게 여자의 의무라는 맥락의 개떡 같은 얘기를, 그가 선배라는 이유로 한참.. 이나 들어주었던 기억이 난다(하.. 잊고 있었는데).


논리정연하게, 예의바르게, 심지어 그와 단 둘이 일대일로 대화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그에게 내 감정에 대해,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던 짜증스런 기억. 그는 Yes 라는 대답 외에는 그 어떤 배려심 있고 예의 바른 말도, 말이 아니라 그냥 '무의미한 소리' 정도로밖에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그냥 무조건 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도 섞지 않았다.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못 들은 척 했다. 선배가 말하는데 대답하지 않는 버릇 없는 애라는 소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조금은 쓰였다. 생각해보니 그런 소문도 냈네. 진짜 개떡 같은 남자였구나). 같은 수업이라 어쩔 수 없이 같은 강의실으로 가야 할 경우에는, 갑자기 살 게 있다며 뒤돌아 반대방향인 편의점에 갔다가 한참 후에 들어갔다.


그 당시의 나는 오랫동안 어떤 연애도 하지 않았다. 내가 따로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다른 누군가와 사귀지도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와는 사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연애하지 않아서 행복했다.


우리는 연애할 권리도 있지만, 연애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20여 년 전의 나와 너무 비슷한 고민 속 여학생을 보며 작가님의 솔루션대로, 그녀의 바람대로, 잘 비연애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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