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나는 조삼모사가 웃기지 않다

아침밥과 저녁밥의 문제

by 시은

예전에 조삼모사에 대한 일화를 패러디하여 유행한 웹툰 짤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웹툰은 원작의 의도를 의도치 않게 훼손했다. 원작의 인간인 저공이라는 캐릭터는, 타협도 모르고 의견 조율을 시도하지 않고 멋대로 의견을 관철시키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원래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국 시대 송나라에는 수십 마리의 원숭이를 키우는 저공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매우 좋아하여 처음에는 여러 마리, 훗날에는 수십마리를 키우게 되었는데 키우는 원숭이가 늘어남에 따라 원숭이의 먹이가 많이 필요했다. 그는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결국 저공은 고민하다가 원숭이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했다.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는 네 개를 주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원숭이들은 저녁까지 참기가 힘들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저공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아침에는 도토리를 네 개 주고 저녁에는 세 개를 주는 건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에는 도토리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




고전에서는 이 이야기가 어차피 하루에 먹는 도토리의 수는 같은데, 아침에 1개 더 준다는 말에 기뻐하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만은 않다.


이 이야기와 결이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 E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내가 저녁은 못 차려줘도 아침은 차려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사실, 나름 ‘나의 배려심’을 드러내려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은 아침밥에 대한 로망은 없다며 자신은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가면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찌개를 끓이다 퇴근한 자신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결혼 판타지가 있다고 했다.


음… 그 당시의 나는 내 저녁밥을 차리는 것도 싫었다. 퇴근하고 들어가서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서 밥 차려 먹는 것도 귀찮았고, 반찬 꺼내기 싫어서 라면 하나 끓여먹는 것도, 먹고 난 이후에 설거지 하는 게 싫어서 사 먹고 들어가는 날이 5일 중 2일이었다.


당연히 결혼해도 저녁을 하기는 싫을 것 같았다. 싫었던 일이 결혼을 한다고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고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 집에 가서 다시 저녁을 차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도 있었다.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나도 좀 쉬고 싶은데 돈도 안 주고 남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에 왜 로망이라고 이름 붙이는가. 개빡치게.


그리고 아침과 다르게 저녁은 준비하려면, 메뉴에 따라 장도 보고, 재료 손질도 해야 하고, 끓이고 해야 한다. 고기를 사면 핏물을 빼야 할 것이고, 야채를 사면 씻어야 하고.

밥만 해도 그렇다. 맛있는 밥을 하려면 최소 씻고, 앉혀서 뜸들이고 하면 밥솥이 한다고 해도 어쨌든 1시간은 걸린다.

그렇게 먹고 난 후, 설거지도 해야 한다.


퇴근하고 저걸 해야 한다고? 로망은 무슨. 노망 났나.


막말로, 공유랑 결혼할 수 있대도 저녁밥 차리는 게 결혼 조건에 들어가면 그 결혼 안 하고 만다. 그 정도로 저녁밥 차리는 게 싫다. 너무 막말인 거 같긴 한데 그정도로 저녁 차리는 게 싫다. 퇴근 후엔 제발, 쉬고 싶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저녁은 못한다고 했다. 노력할 생각도 없었다. 음식을 잘 못 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잘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사실 아침은 내가 간단하게 먹고 나가고 싶기 때문에 먹는 김에 같이 차려줄 수는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는데 그가 저녁밥 운운하자 아침밥도 차려주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선 내가 차린 아침밥이 결혼 생활 로망까지도 아니고.


나는 ‘내 저녁 로망’은 퇴근 후 같이 사먹고 들어가는 것이고 그럼 누구도 저녁을 치우지 않아도 되고, 집에 가서는 씻고 TV 보면서 맥주나 한 캔 하는 거다, 라고 말했다.




그는 수긍하는 듯 했으나 이후에도 우리의 미래, 혹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중에 결혼해서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가면 니가 집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찌개를 끓이다 퇴근한 나를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하잖아? 와, 나 진짜 행복할 것 같아.”


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게 싫다고 했는데, 그걸 또 혼자 상상하며 행복해한단다.


나는 그게 싫어, 싫다고. 누가 뭐래도 저녁은 차리기 싫다. 난 결혼을 하든 말든, 어지간하면 저녁은 사먹을 생각이었다. 퇴근해서까지 또 ‘일’을 하긴 싫었다.


나의 불행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그의 로망을 계속 듣자니 결국 정이 떨어졌다.


이 문제를 가지고 다투다가 어느 날은 그가


‘하다 보면 행복해질지 누가 아느냐.’

‘왜 해보지도 않고 싫다고 하냐.’


고 나를 다그쳤다.


네? 뭐라구요?


웃긴 건, 내가 해줄 수 있는, 아침을 차려주는 것엔 나의 배려가 들어가는 것이고, 그가 원하는(그의 로망이라는), 저녁을 차려주는 것엔 내 노동력의 착취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아침을 차리든, 저녁을 차리든 그의 노력은 없고 나의 노력만 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을 차리든 저녁을 차리든, 그는 ‘내가 차린 밥상’을 받는 것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하겠다’는 건 없었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결국 남자친구의 노력은 안 들어가는데, 그럼 내가 해주겠다는 대로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가 그와 결혼하기 싫었던 이유, 그래서 결국 헤어진 이유에는 다른 이유들의 지분들도 있지만 이 ‘아침밥/저녁밥’의 문제가 가장 컸다.




조삼모사의 아침밥/저녁밥으로서의 도토리 갯수는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저공이 아침밥과 저녁밥의 양을 바꿔서 말했을 때 원숭이들이 수긍한 건 멍청해서 속은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아침 활동량이 많은 동물이라 아침에 도토리를 조금이라도 더 먹는 게 나아서 였을 수도 있다.


내 생각엔 한참을 고민하다가 머뭇거리며 살짝 바꾼 제안을 하는 저공의 노력이 안쓰러워서, 그리고 여기서 무얼 더 해 줄수 없어서 슬퍼하는 주인의 표정을 보고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아닌 걸 알면서도 수긍한 것 같기도 하다.


식량 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저공은 치열하게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계속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노력했다. 주인의 고민을 들은 원숭이들도 주인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한발 물러났다.


막말로 ‘동물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송나라 시대였다. ‘원숭이들 각자의 생명’이라기보다 단지 ‘인간의 재산의 항목’에 가까웠을 원숭이들을, 이제 키우기 버겁다며 냅다 숲에다 버릴 수도 있었지만 저공은 그러지 않았다.


저공은 원숭이들의 생존권을 쥔 주인의 위치였지만, 주인의 권위를 이용해 말도 없이 어느날 줄인 양의 식사를 주면서 이제부터 이만큼만 먹으라, 고 통보하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워져 앞으로는 이만큼만 줄 수 밖에 없는데 괜찮겠는지 먼저 물어봤다.


그리고 원숭이들 역시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땐 저녁까지 허기를 참기가 힘들다며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왜 이전에 먹던 양만큼 안 주고, 멋대로 줄이기로 한 거냐고 주인을 나무라지 않았다.


조삼모사에서 중요한 건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려는 관계’ 사이의 의견 조율, 소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공은 처음에 말한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제안을 조금 수정한다. 그리고 원숭이들은 다행히 두 번째 만에 제안을 받아들인다.


조율이란 이런 것이다. 상대방도 나도 의견을 내고 상대방의 서로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


만약에 그때 E가 ‘그래. 그럼 퇴근 후에 매일 저녁 사먹고 들어가자.’ 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정이 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가 못 이기는 척, 나에게 저녁 안 차려도 된다고 했으면 그냥 눈 딱 감고 좀 더 연애하다가 결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로망인, 저녁밥을 차려야 하는 게 ‘기본값’인 결혼 생활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단순히 아침밥/저녁밥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려는 관계’ 사이의 의견 조율이 없는 게 문제였으니까.




그나저나 저때 ‘그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내가 먹겠다는 선택지는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 나는, 평일은 각자 알아서 먹지만 매 주말이면 남자친구가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고 있다. 3년간 한번도 내가 밥을 차려본 적이 없다. 설거지도 그가 거의 다 한다. 둘다 아침밥을 안 먹지만, 가끔 내가 아침 먹고 싶을 때 내가 준비하고.


생각해보니 ‘니가 하기 싫다면 저녁은 내가 차릴게.’하며 E가 배려를 해줄 수도 있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나도 저녁밥을 하긴 싫지만, 그 와중에 그에게 저녁밥을 차리게 할 생각은 못 했던 건 내가 너무 착해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됨됨이가 절대 그럴 인간이 안 될 것 같아 보여서 도저히 그런 상상이 안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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