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가 되는 순간들
내가 한때 K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그때 우리는 늦은 밤 사람 없는 버스를 타고선 뒤에 앉아 말없이 까만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침묵을 깨고 자신이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너는 충분히 똑똑하고, 아직 가능성이 있는데, 갑자기 왜…’라는 말이 생각으로만 맴돌다가, 어쩌면 정말 실패일지도 모를 우리의 현실이 지금 그의 입에서 확정되었다고 생각했다.
뭐라 말해야 할까. 그때 나는 그의 슬픔을 모른 척하며 "나는 지금 행복한데…"라고 답했다. 나는 내가 구체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게 있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불운이 내가 지금 갓 피워내고 있는 미래의 행복을 시들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패라는 말은 나에게 금기어와 같았고, 나는 그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그렇게 실패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에, 누군가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것에, 그렇게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것에. 행복이라고 믿었던 건 너무 연약했고, 쉽게 시들었고, 슬픔을 아는 사람은 나를 떠났다. 글을 쓰자. 행복의 형태를 상상하며 무엇이든 적어보자. 그래서 아무 소리나 뱉어봅니다. 응앙응앙. 흰 당나귀 울음도 내보고요.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고, 나를 오래전 장면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다. 실패를, 조용한 슬픔을 말하는 너에게 나는 이제 어떻게 다시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얼굴로 너를 바라봐야 할까. 그 밤을 어떻게 채우고, 영원히 헤어질 수 있을까. 끝끝내 답을 찾아 너에게 건넬 말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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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해. 다시-쓰기 없이 미래는 없다고.
나에게는 잃어버린 감정들과 나누지 못했던 인사들이 있었다.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위로하지 못한 채 지나간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언어화하지 못한 채 쉽게 넘겨버린 대화와 감정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폐허처럼 남은 그 시간들로 되돌아간다. 어차피 완성하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이미 실패가 예견되어 있지만. 그 모든 실패들과 쉽게 결별하지 않기 위해. 잃어버린 것들을, 잊힌 것들을 계속 이야기하기 위해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