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놓은 밥상보
나는 왜 인지 모르지만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두 손을 가만히 두고 있으면 허전하기 짝이 없어 티브이를 볼 때마저도 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오래전 십자수를 놓았었다. 처음부터 큰 작품부터 시작했다.
안경 위에 돋보기를 걸쳐 초강력 눈을 만들어 밤늦은 줄 모르고 수를 놓았다.
식구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나의 십자수 재료통은 점점 커져 이삿짐 박스 만하게 되었다.
편찮으신 어머님을 위해 한 달에 한번 신부님께서 방문하여 기도해 주셨다.
그때 예수님 고상이랑 초 등을 놓을 작은 밥상을 덮을 밥상보를 먼저 수놓았다.
어머님을 닮은 예쁜 장미꽃으로 골랐다.
작은 칸을 도면을 보며 일일이 색깔을 맞춰 메꾸며 수를 놓아 만들었다.
다 완성되고 어머님께 어머님 거라며 선물로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신부님께서 오시는 날이면 으레 것 세탁하여 다림질까지 한 장미 십자수밥상보를 꺼내어 정성스럽게 상위에 깔고 준비하고 신부님을 기다리셨다.
어머님 하늘나라 가시고는 이 밥상보를 써 본 적이 없다.
가끔 혹시 변색이 될까 싶어 빨아서 잘 말리고 다시 신문지에 둘둘 말아 보관만 하고 있다.
나는 지금 같은 맘이면 다시 다시 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저건 어머님 거니까. 저 밥상보를 보면 너무 좋아라 웃으시며 받아 들던 어머님 생각이 나니까...
딸들에게 준다고 시작한 중간크기의 병풍을 만들 수 있는 크기의 십자수도,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도
아직 미완성이다. 아마도 다시 시작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맘 깊은 곳엔 다시 꺼내어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내 눈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이 염려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십자수 통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수놓던 그 시절이 생각 나 웃음 짓기도 한다.
그리고, 말려도 허리 구부정하게 앉아 뜨개질하시던 내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다.
내가 점점 그분들의 그때의 나이가 되고 있음이다.